★해병대 부사관 글/해병하사 권동일

베트남 정글전 실록 - 스콜(Squall) 18 - 구정공세 (1)

머린코341(mc341) 2015. 8. 1. 14:36

베트남 정글전 실록 - 스콜(Squall) 18 - 구정공세 (1)



바탄강 110고지 중대진지를 떠나서 여단본부 외각방어임무에 임한지 오늘로 일주일째. 청룡부대는 추라이에서 호이안으로 이동한다는 작전명령이 있고 난 후부터 청룡부대의 대부분은 호이안으로 이동하고 추라이에는 여단본부와 2개 중대(우리 중대 포함) 병력만 남았다.


여단 외각방어를 하기 위해 오기 전의 110고지는 수개월 동안 정들었던 고지였다. 110고지는 나를 전투원으로 길러 주었고 전쟁의 초보자를 귀신잡는 해병으로 만들어 주었다.


중대를 떠나기 전 110고지 중대진지를 미 육군에 인계했다. 110고지의 중대진지 현황과 바탄강 일대의 적정 상황을 자세히 인계하고 미 육군의 환송을 받으며 헬리콥터에 오를 때에, 다시는 올 수 없다는 생각에 선뜻 오르지를 못했다.


외각방어(여단본부) 진지에 있는 새 진지를 인수하고 중대가 여단본부에 도착해 보니 중대에서 주어진 방어진지가 너무나 광범위했다. 개인간의 초소거리가 너무 넓었고 야간 순찰구역도 할당이 너무 많았다.


추라이 지역의 V.C들이 비록 해병대의 활약으로 완전 소탕이 되다시피 했지만 광범위한 지역을 방어하자니 자연 하루도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여단 상황실에서 무전 연락이 왔다.


호이안 지역으로 먼저 이동한 부대들이 호이안에 주둔한 V.C들과 월맹 정규군들의 공세에 부딪쳐 하루도 쉴 사이 없이 교전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군이 고전하는 이유는 호이안 지역 일대가 모래밭이어서 벙커를 구축하기에 곤란을 받고 있으며 거기에다 고지는 고사하고 조그마한 야산도 없어 위치 분별에 큰 어려움이 뒤따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V.C들이 추라이와는 판이하게 다른 전술로 대항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여단 상황실로부터 아군이 고전하고 있다는 무전 연락을 받고 아직까지 이동하고 있지 않은 우리들에게 근심거리를 안겨 주었다.


그렇지만 호이안 상황은 이동 후에나 걱정할 뒷일이었다. 추라이에 있든 호이안으로 이동하든 어느 곳을 가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다만 추라이에 있을 때라도 심한 걱정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추라이 주민들은 우리마저 곧 호이안으로 이동한다고 하니 청룡 따이한 없이는 하루라도 불안해서 이곳에 살 수 없다고 하며 아우성이었다. 추라이를 떠나지 말아 달라고 마을 촌장이 와서 애원하는가 하면, 일부는 걸어서라도 호이안까지 가겠다고 짐들을 꾸려서 자동차로 도보로 길을 나서는 것이 매일 눈에 띄게 늘었다.


매복, 정찰, 순찰 등으로 쉴 사이 없는 외각방어 작전이 계속 되었다. 여단 상황실에서 새로운 무전연락이 왔다. 호이안에서는 추라이에서 보기 힘들었던 V.C와 정규군들의 61m/m박격포, 82m/m박격포와 그 외 각종 포탄의 낙하가 많아 작전에 애로를 주고 있으니 호이안 지역의 지형을 분석하여 익히고 대 박격포전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하라는 내용이었다.


중대는 틈이 나는 데로 호이안 지역의 지도로서 지형을 숙지하고 대 박격포전에 대한 즉각 조치와 판단법 등을 교육했다.


대대본부에서의 지뢰와 부비트랩 교육 때도 보곤 했지만 여단본부에서도 새벽 도로정찰 중 매번 보는 것이 있었다. 특이한 월남인들의 용변 모습이었다.


이들은 이곳 저곳 구석진 곳에 가족들이 빙 둘러앉아 용변을 보았는데 그 모습이 흡사 개 같아 볼 때마다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대대로 내려오는 풍습인지 아니면 아무런 감정이 없는지 그들은 매일 아침 도로정찰 때마다 궁둥이를 까고 둘러앉아 용변을 보았다.


하기야 일본에서는 가족탕도 있고 남녀가 같이 목욕을 한다는 얘기도 주워 듣긴 했지만, 그러고 보니 그 동안 숱한 작전 때마다 촌락 탐색을 해 보았지만 화장실이 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


물론 대도시나 중·소도시의 월남인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이건 숫제 남녀가 한자리에 모여 앉아 용변을 보다니 점잖은 동방예의지국 사람으로서는 보기에 민망할 뿐이었다.


여단 외각방어를 한 지 12일째, 도로 정찰대와 매복대를 보내고 난 다음 상황실로 들어갔다. 상황실에는 경상도 출신 김해병이 혼자 무전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김해병, 연락 온 것 있냐?"

"없었심더."

"심심하겠다."

"따분하고 지루해 죽겠심더."

"재미있는 이야기 있으면 해 봐라."

"내가 뭐 이바고할 줄 압니꺼? 편지밖에 안 기다립니더."

'누구에게서 오는 편진데."

"약혼한 가시난데 우짼 일인지 편지를 해도 답장이 안 옵니더."

"화가 많이 나는 모양인데 편지 답장 안 오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야. 자주 써 봐. 그러다 보면 답장이 오겠지."

"안 그래도 오늘 또 쓸라케심더. 작전하사님은 결혼 했심니꺼?"

"임마! 아직도 총각이야 총각."


김해병과 잡담을 하고 있는데 찝차 소리가 나서 밖에 나가 보니 차량 편으로 보급물을 싣고 왔다. 향도병으로 부터 중대본부의 편지를 받아 들었다.


"야 김해병, 너 아가씨에게서 편지 왔다."

"농담 마이소. 편지 안 온다고 하이 놀릴라고 그라지예?"

"그럼 이 편지 내가 보관한다."

"진짭니꺼? 가시나 이름이 뭐라고 쓰였습니꺼?"

"김희숙."

"맞심더, 내 껍니더 주이소. 이놈의 가시나가 되게 질기게 편지 안 하디 우짠 일이고."


편지를 받아들고 싱글벙글 하면서 계속 읽어 내려갔다. 편지를 다 읽고 난 김해병이 밝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작전하사님예, 우리 가시나가 귀국하는 날 결혼 하잡니더. 결혼날짜 잡는다고 그 동안 편지 못했다고 미안하다 안 캅니꺼. 약혼은 월남 오기 전에 했심더."

"그래, 귀국해서 김해병 결혼식 때 국수 먹으러 가야겠네?"

"국수 뿐입니꺼? 막걸리도 많이 있심더. 그런데예 결혼식 날짜를 귀국하는 날 부산 3부두에서 하자고 하면서 귀국 날짜를 정확히 알려달라 안 캅니꺼."

"그래, 그것 참 볼 만하고 이색적이겠는데, 김해병! 귀국은 언제쯤되냐?"

"한달 밖에 안 남았심더."

"그럼 김해병 길혼식 때 난 참석 못하겠네. 난 아직도 4개월이 남았는데, 김해병은 좋겠다."

"그럼 귀국해서 우리 집에 놀러 오이소. 주소 가르쳐 주께예."

"그래, 훗날 귀국해서 고국에서 만나자. 재수 없으면 월남이 내 무덤이 될 것이고"

"그런 소리 마이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작전하사님은 꼭 살아 갈 겁니다. 내가 보증합니더."

"그래 고맙다."

"그라고예, 가시나가 월남 기후가 얼마나 덥냐고 묻는데 뭐라고 씁니까? 작전하사님이 기똥차게 하나 써 주이소"

"좋아 종이하고 팬을 가져와."

-희숫씨 이곳 더위가 어떠냐고요? 햇볕이 작열하는 고국의 삼복 더위에 두터운 외투를 입고 물돌이를 인 채 한 시간 정도 지내보면 고국에서 희숙씨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월남의 기후를 직접 맛 보실 것입니다.-

"김해병 맘에 드나?"

"진짜로 고맙심더."

"우리 또 편지 쓰자."


무전기에 신경을 쓰며 종이와 펜을 찾아 들었다. 고국에서 자나깨나 못난 자식 때문에 걱정하고 계실 부모님과 형제들을 생각하며 모든 전우들도 건강히 잘 싸우고 소자 역시 맡은 임무에 충실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편지를 썼다.


외각방어 14일째, 도로 정찰대와 함께 도로 정찰을 나갔다. 주민들은 고대 중국의 풍습에 많은 영향을 받은 듯 했다. 그들은 대부분 검은 옷을 즐겨 입었고 촌락에는 간혹 중국인들이 보일 때도 있었다.


가는 곳마다 목탁 두드리는 소리와 염불하는 소리가 들렸다. 주민들을 볼 때마다 맨발의 왕자 '아베베' 생각이 났다. 주민들이 맨발을 하고 있는 모습은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맨발 생활을 했기 때문에 주민들의 발바닥은 군화 밑창보다 더 튼튼해 보였다. 발가락의 생김새는 흡사 오리발을 닮았고 그래서 우리들은 그들을 오리발이라고 불렀다.


가시밭이나 정글지대도 100m 경주하듯 뛰어 다녔고 원숭이보다 더 날렵하게 나무에 올라갔다. 재주가 좋았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특이한 냄새가 있었다.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모를 월남인 특유의 냄새였다.


외각방어 15일째, 여단 본부로 부터 중대가 위치하고 있는 뒤쪽 촌락을 탐색하라는 작전명령이 떨어졌다. 구슬땀을 흘리며 마을 일대를 탐색했으나 촌락 주민들 외에는 V.C를 만날 수 없었다.


마을을 탐색하고 철수하는 도중, 마을에 서 있는 처음 보는 신기한 열매가 달린 나무를 보았다. 열매는 야자보다는 작았다. 호기심에 열매를 따서 돌맹이로 깨트려 보았으나 좀체 깨어지지 않았다. 열매를 들고 마을을 벗어 나오다 아오자이를 입은 월남 처녀와 아이들을 만났다.


"자우꼬(아가씨 안녕하십니까)?"

"자웅(안녕하십니까)?"


처녀 역시 인사를 해 왔다. 손에 들고 있던 열매를 주고 싶은 생각이 나서 열매를 아가씨에게 준다고 '프리센트(선물)' 하니 얼굴을 찌푸리며 손을 내젓고는 알아듣지 못하는 월남어로 무어라고 이야기를 했다.


"따이샤우(왜)?"


역시 처녀는 손짓으로 받지 않겠다는 표시만 했다. 남의 성의를 너무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어 강제로 안겨주고 난 다음 중대의 뒤를 따라갔다. 그 처녀는 열매를 받아 쥐더니 얼굴을 찡그리면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아가씨의 찡그린 얼굴을 생각하면서 귀대하던 중 여단본부 앞을 지나고 있는데 "수박 좀 사시오" 하는 월남인의 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췄다. 수박 몇 덩이를 정렬해 놓고 손가락으로 수박을 가리켰다.


"한국말 잘 합니까?"

"예, 조금 합니다."


찡그리던 아가씨의 얼굴이 생각났다. 마침 수박장사 뒤에는 조금 전에 열매를 땄던 나무가 있었다.


"저 나무는 무슨 나무입니까?"


수박장사는 싱긋이 웃었다.


"나무 이름은 뚱단이라고 합니다."

"저 열매도 먹습니까?"

"예 먹을 수 있습니다만, 저 열매는 주로 선물용으로 합니다."

'어떤 곳에 선물을 합니까?"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연인에게 열매를 선사하기도 하고 약혼을 언약할 때 신부에게 주는 풍습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수박 한 덩이 주시오. 한국말 참 잘 합니다."

"한국사람에게 장사하려고 배웠습니다."


수박을 가지고 외각방어진지로 오명서 열매를 가슴에 안고 울상이 되어 버렸던 아가씨의 얼굴이 생각났다.


평화스럽게만 보이는 촌락의 숲속에도 V.C의 총구가 숨어있다.


호이안으로 이동하던 날의 아침이 밝아왔다. 이동준비에 바쁜 중대는 일부는 새벽부터 V.C가 사용할 수 없도록 외각진지를 파괴시키고 일부는 헬리콥터장으로 이동할 짐을 날랐다.


추라이는 내 생애 영원히 간직될 잊혀지지 않을 이름이 되어 버렸다. 다시는 찾아볼 수 없는 추라이 그리고 바탄강, 월남에 평화가 찾아 온다면 먼 훗날 다시 올 수 있겠지.


추라이 주민들이 호이안으로 같이 가겠다고 이른 새벽부터 헬리콥터장으로 계속 모여들었다. 그렇지만 주민들과 같이 이동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주민들에게 호이안으로 가서 전투를 하고 호이안이 평정되면 다시 추라이로 온다고 이야기했지만 믿지 않았다.


"작전하사님예, 헬리콥터 타면 호이안으로 똑바로 갑니까?"


무전기 옆에 쭈그리고 앉아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던 김해병이 입을 열었다.


"임마, 통신병이 그것도 몰라? 곧장 우리가 가야할 호이안으로 간다."

"호이안은 추라이보다 적정이 심하고 하루에도 수 십 발씩 포탄이 떨어진다면서예?"

"왜, 귀국 못하고 호이안에서 죽을까봐 겁이 나나? 여하튼 각오를 단단히 해야지, 모두들 추라이와는 다른 정신으로 무장해야 될 꺼야. 귀국날짜 몇 일 남았나?"

"13일 남았심더."

"걱정 마. 살아서 귀국해 가지고 부산부두에서 멋진 결혼식을 할 수 있을 터이니."


김해병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 잡념 가지지 말고 무전이나 잘 청취해라. 진투지역은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야.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안 죽어, 알겠나?"

"잘 알겠심더."


헬리콥터는 계속 뜨고 앉고 하며 짐을 싣고 떠났다. 이제는 주민들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아쉬운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따이한 넘버원, 따이한 넘버원" 하며 손을 흔들어 환송을 했다.

 

월남의 어촌


우리들을 실은 헬리콥터는 요란한 소음을 내면서 떴다. 손을 흔드는 추라이 주민들의 모습이 까만 점이 되며 멀어져 갔다. 우리도 까만 점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추라이 방어지역을 한바퀴 돈 헬리콥터는 호이안으로 날아갔다. 새롭게 시작될 새 진지의 모습을 눈에 그려보며 헬리콥터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밀림 속의 집들이 보였다 사라지고, 도로를 걷고 있는 사람들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구름 한 점 없는 바탄강 쪽에는 정들었던 110고지의 진지도 시야에 들어왔다. 우뚝 솟은 산과 밀림들, 길게 뻗어 있는 바탄강. 모두가 이국의 맛을 새롭게 느끼기에 충분하여 과연 저곳에서 그렇게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지 의문이 갔다.

망각을 일꺠우기라도 하듯 바탄강 쪽에서 기총소리와 포탄의 폭발소리, 헬리콥터 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미군과 V.C간에 교전이 붙은 모양인지 소리는 이내 들리지 않았다. 강줄기와 우거진 밀림과 개활지만 보이는 상공을 지났다. 얼마나 왔을까. 지도를 펴 보았다. 호이안 상공이었다.

 

월남의 어촌


헬리콥터가 내릴 지점에는 푸른 연막이 바람을 타고 번지고 있었고 호이안 바닷가 쪽에서는 기관총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며 붉은 연막이 검은 연기와 함께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호이안 시가지와 호이안 비행장이 함께 보였다. 주위를 두리번거려 보았지만 조그만 고지 하나 보이지 않았고 개활지와 밀림만이 끝없이 우거져 있었다.


중대는 여단 헬리콥터장에 내렸다. 긴장 탓인지 더위 탓인지 이마에는 어느새 땀방울이 맺혔고 헬리콥터가 일으킨 바람에 모래와 먼지가 날아올라 얼굴을 덮어 씌웠다.


여단본부에 내린 중대는 곧장 따갑게 내려 쪼이는 햇빛을 받으며 대대본부 외각방어 진지를 향해 이동했다. 대대본부진지나 외각진지나 전부가 백사장이었다. 마침내 호이안에서의 전투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상황실 벙커에 오니 김중위님의 부모님께서 교대병 편으로 보냈다면서 누룩으로 막걸리를 담는다고 야단이었다. 맥주만 흔해 빠진 월남에서 막걸리라니, 고국에 있을 때는 눈만 뜨면 P.X에 가서 마셔댔던 막걸리를 이곳 월남 전선에서 담그고 있다니 기대가 컸다.


이동의 피로 때문인지 눈꺼풀이 감겨 왔다. 잠깐 누워 있을까 하고 침대에 누웠는데 인접한 포병대대에서 포사격을 시작했는지 고막이 터질 것 같은 폭음이 들려왔다. 포구에서 포탄이 나갈 때마다 벙커 주위에 떨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꽈꽝~  꽈꽝~  꽈꽝~ "


포사격의 진동으로 천막과 침대가 뒤흔들렸다. 솜으로 귀를 틀어막고 눈을 감았다.


"출동" 하는 소리에 일어나 보니 "1개 소대 긴급 출동준비" 라는 대대 본부 상황실로부터의 무전연락이었다. 저녁 무렵에 미국 팬텀기가 V.C의 포사격으로 격추되었다더니 그곳으로 출동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아직 이곳 지리도 익숙하지 않은데, 더구나 야간이라 곤란한 점이 많지 않을까 중대장에게 보고한 다음 2소대를 출동준비 시켰다.


상황실로 재차 날아온 무전은 D-엔반에서 다낭 쪽으로 10㎞ 가다보면 KAP2라고 하는 곳에 미군 1개 소대가 주둔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적정이 그치지 않고 계속되어 그 미군부대에 중대의 1개 소대가 배속된다는 것이었다.


출동준비가 끝난 2소대는 트럭에 탑승하여 미국(KAP2) 소대를 향해 출발했다. 미군소대의 임무와 그곳의 적정이 어떠한지는 몰라도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기만 바랐다. "작전하사관님!" 하고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작전병이 내일 아침 도로정찰에 관하여 대대본부로부터 내려온 좌표를 주었다.


지도를 펴서 대대 상황실에서 온 좌표지점을 그려보았다. 도로정찰의 코스는 대대본부로 부터 D-엔반까지의 1개 분대 도로정찰과 대대본부로부터 호이안 시가까지 1개 소대 도로정찰 계획이었다. 화기소대장과 중대장에게 보고했다. 중대장은 정찰 작전명령을 보고 받고 1소대장을 불러서 도로정찰계획을 설명했다. 소대장이 돌아가고 나니 곧 자정이 되었다.


06시 정각에 출발했던 도로 정찰대는 아무 상황 없이 귀대했다. 아침식사가 끝난 중대는 -중대(1개 소대가 KAP2에 배속되고 없음)로서 새로이 주간정찰 임무를 부여받고 D-엔반을 향해 호이안에서의 첫 작전에 들어갔다. 대대본부를 출발한 지 20분 정도 되었을까, 선두 소대에서 어떤 월남 여자가 편지를 주고 갔다면서 봉투를 가지고 왔다. 봉투 속에는 삐라가 들어 있었다.


"따이한 너희들은 무모하게 양놈에게 속아서 먼 이역 전선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 부모형제가 있는 따이한으로 돌아가라" 는 내용의 한글로 쓰여 있었다.


"방금 편지를 주고 간 여자를 잡아라."


중대장이 소리를 질렀다. 몇 명씩 조를 이룬 소대 일부가 여자가 사라진 시장 입구로 들어갔다. 시장은 장사꾼으로 붐비고 있었고 그 틈속으로 걸어가고 있는 여자를 추적하여 붙들었다.


"주위에 방해자가 있을지 모른다. 주의해서 경계하라."


1소대장이 대원들에게 주의를 시켰다. 시장의 주민들은 아직 청룡부대와 익숙하지 않은 터라 이상한 눈초리로 우리를 보면서 여자를 붙들고 있는 곳을 이중 삼중으로 애워싸며 모여들었다.


시장 상인들은 죄없는 여자를 잡아가는 줄 알고 격분했는지 손가락질을 하면서 따이한 어쩌고저쩌고 했다. 여자를 쉽게 끌고 오기가 힘이 들었다.


대대본부에 상황을 보고했다. 대대본부에서는 여자를 포기하고 27중대가 현재 상황이 급하니 빨리 대대본부로 복귀하라는 명령이었다.


여자를 놓아주고 대대본부로 복귀하니 작전장교(지화익 소령)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전장교는 지도를 펴 놓고 호이안의 새로운 적정을 설명하면서 현재 27중대가 호이안 xxx xxx 지점에서 V.C의 대병력과 교전중이니 중대는 현 지점에서 ......모래 백사장......비행장...... 거쳐서 즉시 호이안 시가로 출발하라는 작전지시와 함께 우리가 기동해야할 기동로의 좌표에다 붉은 점을 찍어 주었다.


중대는 작전장교가 점찍어 놓은 좌표를 보면서 대대본부를 출발했다. 대대본부를 벗어나 진출한 지 얼마가지 않아서 백사장이 이르렀다.


사막과 같이 길고 넓게 뻗은 백사장을 개인거리를 확보한 채 2열 종대로 경계하며 대대본부에서 지원 받은 전차 3대를 앞장 세우고 호이안 시가를 향해 계속 진출했다. 기동중에 대대본부에서 다시 무전이 왔다.


-중대가 기동하는 현 위치 우측 숲 밀림지대에는 V.C들이 은닉해서 아군에 피해를 줄 가능성이 많으니 경계를 철저히 하면서 기동하기 바람-


중대가 기동하고 있는 백사장 현 위치에서 우측 숲까지의 거리는 700m, 좌측 숲까지의 거리는 500m 정도 되었다. 중대는 대대 작전지시에 따라 백사장의 중앙 부분으로 기동했다.


격전지임을 알려주듯 전방의 호이안 시가 상공에는 검은 연기가 곳곳에서 치솟고 있었고 폭음과 기총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백사장으로 기동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안했다.


대대본부의 좌측 숲을 끼고 기동하겠다고 했더니 우리 중대와 평행을 유지하면서 26중대가 같은 방향으로 기동하고 있으니 안심하고 상호 협조를 하면서 진출하라고 재차 명령을 내렸다.


또한 대대본부의 우측 숲에는 V.C가 있어 교전이 붙을 우려가 있고 그러다 27중대의 지원이 늦어질 수 있기 때문에 백사장 중앙으로 기동로를 택했다며 지체하지 말고 계속 진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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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전지의 환상

 

화약냄새와

포성이 울리는 격전지-

피 비린내가 코를 찌른다

 

얼룩무늬 작업복은

피와 흙에 범벅이 되고

치열한 격전이 그칠 줄 모른다

 

"딱쿵- 따르륵-"  "꽝-"

수류탄을 던지고

민첩하게 엎드린다

 

절규

빗발치는 총알이 날아오는

적진을 헤치며 뛰어든다

적탄이 마구 쏟아 붓는다

폭음이 천지를 진동한다

숨막히는 시간이 흐른다

 

해는 동녘하늘에서 고개를 내밀고

아침 햇살 속에서

얼룩무늬 작업복은 검붉은 피를 뚝뚝 흘린다.

 

자욱한 포연 속에 시체 냄새가

이맛살을 찌푸리게 한다

 

전쟁의 비극

또 다른 의미의 고독을 맛본다

 
출처 : 청룡부대 1대대 3중대 작전하사 권동일 선배님의 월남전 참전수기 "스콜(Squall)"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