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부사관 글/해병하사 권동일

베트남 정글전 실록 - 스콜(Squall) 20 - 구정공세 (3)

머린코341(mc341) 2015. 9. 19. 18:41

베트남 정글전 실록 - 스콜(Squall) 20 - 구정공세 (3)

 


 

대대본부에서 싣고 온 김치와 맥주로 모처럼 식사다운 식사를 하고 난 다음 중대장에게 잠시 바람 좀 쐬고 오겠다며 반승락을 받고 M16소총을 든 채 시가지로 나왔다. 

 

완전 어둠이 찾아든 호이안시 일대에는 비상 통행금지 사이렌이 '왱~왱~' 거리는 여운을 남기며 울어대고 있었다. 곧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M16소총에 실탄을 재장전하고는 인적이 끊긴 어두컴컴한 시가의 강 쪽을 향해 걸어갔다. 무엇에 홀렸는지 모른다. 아무래도 정신이 이상해졌는지 아니면 무엇엔가 끌려간다는 생각을 하며 계속 걸었다.

 

무언지 자꾸 앞으로 걷게 만들고 있었다. 오늘밤에 아니 지금 이 순간에 적의 대 공격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에 뱅뱅 돌았지만 발걸음은 계속 강 쪽으로 향했다. 칠흑같은 어두운 밤, 인적이 끊긴 공포 분위기의 도로를 두려움 없이 단신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이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 마지막으로 인적이 없는 어두컴컴한 시가지를 구경해 보고 죽겠다는 무의식 중의 생각이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밤의 정적은 너무나 깊었다. 금방 건물 한 귀퉁이에서 무언가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도로 중앙부분으로 걸어갔다. 멀리서 헤드라이트를 켜고 지나가는 짚차가 보였다. 주위는 여전히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순간 전방 20m 정도 지점에서 월남군 근무자가 총을 겨누고 수하를 했다. 인도도 아니고 도로 중앙으로 걸어오고 있으니 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사격은 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멈추어 손을 들고 "또이 따이한 R.O.K.M.C (나는 한국 해병대다).!" 소리쳤다.

 

"라이 라이 (오라)."

 

손을 들고 근무자 가까이 가니 도로 한 중앙에 철조망을 쳐 놓고 근무하는 월남군이 보였다.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의 행동과 말투를 보고 알 수 있었다.

 

손으로 강 쪽을 가리키면서 "V.C 꽤골락 (베트콩 죽이러 간다)." 하니 그 쪽으로 가지 못한다면서 손을 내저었다.

 

"또이 따이한 R.O.K.M.C 넘버원."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고는 강 쪽으로 계속 걸어갔다. 찬 강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걸으면서 또 생각에 잠겼다. 내가 왜 이곳으로 가고 있을까? 정말 죽기 전에 호이안 시가라도 구경해 보겠다는 것일까? 지금 당장에 적들이 공격해 오면 어떻게 대처하나? 별 생각이 들었으나 이상하게 두려움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정신이 들자 긴장이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M16소총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강 쪽에 위치한 건물들이 죽 늘어선 도로로 들어갔다. 시가지는 완전 소등이 되어 불빛이 있는 곳은 한곳도 보이지 않았다. 시가지는 음침한 분위기였다. 흡사 영화에 나오는 항구의 밀수도시 같은 아주 기분 나쁜 느낌을 주는 강변도로였다. 괜히 이곳까지 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킨 김에 계속 앞으로 나갔다.

 

긴장이 찾아들면서 M16소총을 잡은 손이 땀으로 축축해졌다. 불빛이 보였다. 거리는 50m 정도, 가까이 가니 상점이었다. 월남군인 세 명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가 빈 테이블에 앉았다. 상점 집 앞 진열대에는 여러 가지 잡화가 진열되어 있었다.

 

"자웅 (안녕하십니까)?"

 

월남 여자가 인사를 하면서 가까이 왔다. M16소총을 왼 손에 움켜쥔 채, 맥주를 먹고 있는 월남 군인을 경계하면서 맥주를 요구했다.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이더니 월남 병맥주 2병을 가져왔다.

 

"노, 유에스 캔비어." 하면서 손을 내저었다.

 

이곳 음식이나 술은 함부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미국 캔 맥주는 조그마한 아상이 있어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캔 맥주를 받아들고 이상이 없는지 주의깊게 살피고 난 뒤 단숨에 들이켰다. 정신이 확 들면서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주위에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캔 맥주 세 개를 마셨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따이샤우 (왜)?"

"따이한 감온옹 (한국사람 감사합니다)."

 

우리가 자기네를 도우러 왔으니 이 정도야 서비스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전쟁 속에 영업도 잘 되지 않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5$를 건네주고 "또이 상마이 리리(내일 또 오겠다)." 하고 밖으로 나오니 "감온옹" 하면서 허리를 굽히고 인사를 했다.

 

오른쪽으로 건물을 사이에 두고 도로가 뻗어 있었다. 그 길을 곧장 가면 미군부대(맥 브이)가 있다. 낮에 남 병장 시체를 찾을 때 보아두었던 것이다. 맥브이 P.X에 가기 위해 그 도로를 따라 걸어갔다. 미군부대 정문이 보였다. 정문 가까이 가니 근무를 서고 있던 월남군 한 명이 총을 들이대었다.

 

당황해서 "또이 따이한" 하고 소리쳤다. 정문에서 미군과 월남군이 합동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계속 총을 겨누고 있기에 미군 근무자에게 "R.O.K.M.C" 라고 소리쳤다. 미군이 반가운 얼굴을 하며 뭐라고 말을 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맥브이 P.X, 비어 드링크." 하니 싱긋이 웃으며 "오케이" 하고는 손짓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미군 통신병. 중대에 파견나와 수개월 동안 생사고락을 같이 하다가 귀국 명령을 받고 차량편으로 가다가

지뢰 폭발로 귀국 도중 전사 -미군 부대(맥브이)에서

 

맥브이 부대 안에서는 미군들이 분주하게 무엇인가 차량에 계속 실으며 야간작업을 하고 있었다. 미군 병사 한 명을 붙들고 "P.X, P.X" 하니까 P.X가 있는 쪽을 손으로 가리켜 주었다. "땡큐" 하고는 P.X가 있는 곳으로 가서 안으로 들어갔다. 20평 남짓한 P.X 내에는 의자마다 미군들이 앉아 맥주를 마시며 웃고 떠들고 있었다. 요행히 빈 의자가 있었다.

 

캔 맥주를 사 들고 가서 마셨다. 아무리 먹어도 취하지 않았다. 맥주를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니 구석 테이블에서 혼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던 중대에 파견 나온 미군 통신병(앵그리크맨)을 발견했다. 손을 흔들면서 오라고 "웰컴, 웰컴" 했다. 합석해서 또 몇 캔의 맥주를 마셨다 (당시 각 중대마다 미군 통신병이 파견 나와 있었다. 미군 통신병의 임무는 헬리콥터와의 무전교신과 펜톰기 요청, 미군부대와의 연락 들을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중대와 같이 진지에서나 전투지에서나 생사고락을 함께 하였다. 그때 P.X에서 만났던 미군 통신병은 보름 뒤 귀국명령을 받고 차량 편으로 다낭으로 이동하던 중 도로에 매설해 둔 지뢰폭발로 전사했다).

 

맥주를 마시고 난 다음 P.X 안에서 미군 통신병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나는 작전시나 평시나 항상 소형 카메라를 방탄복 조끼에 넣고 다녔다. 시계를 보니 21시 30분이었다.너무 늦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죠니워카 1병을 사 가지고 맥브이 P.X를 나왔다.

 

"어디 갔다 오냐!"

 

중대 상황실로 오니 중대장이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죄송합니다. 맥브이 P.X가서 한잔하고 왔습니다."

 

사과를 하며 양주병을 내놓았다. 중대장은 내가 한참이나 돌아오지 않아 V.C에게 죽은 줄 알았다면서 웃었다.

 

중대 상황실에서 꾸벅 꾸벅 졸며 24시 00까지 근무를 하고 난 뒤 다음 근무자에게 근무인계를 하고 그 자리에 웅크린 채 잠이 들었다.

 

'짜장~ 짱~ 짜장~' 하는 고음의 포탄 낙하 소리에 눈을 떴다. 시가지 일대에 떨어지는 정규군의 61m/m와 82m/m 박격포 포탄낙하 폭발 소리였다. 비상 전투 사이렌이 포탄 폭발소리와 함께 '왱~~왱~~왱~~'하며 밤이 깊은 호이안 시가지 일대에 울려 퍼졌다. V.C와 월맹 정규군의 대대적인 공격이 시작되는 모양이었다. 적의 박격포탄은 쉴 사이 없이 주위에 떨어져 '짱~ 짱~ 짜장~'하는 폭발 소리를 내며 터졌다.

 

중대는 비상 상태로 유개 엄체호에 배치 붙었다.

 

"포탄이 날아오는 방향과 적의 포진지를 확인하라."

 

각 소대에 지시가 내려졌다. '짜장~' 하는 소리와 함께 중대 상황실 옆에 떨어지는 박격포탄은 흡사 상황실 벙커 위에서 터지는 것과 같았다. 쌓아 놓은 사낭의 흙들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벙커 안은 화약냄새와 흙먼지 투성이로 변했다. 시계를 보니 02시 00분이었다. 정통으로 상황실 벙커 위에 떨어지면 임시로 만든 상황실이 무너질 것이 뻔했다. 상황실 위에는 겨우 사낭 한 겹씩을 덮어 놓았으니 낙하되는 적의 포탄을 견디기는 무리였다. 계속 떨어지는 포탄은 그칠 줄 몰랐다. 대대 상황실에 보고했다.

 

"계속 비오듯 쉴 틈 없이 포탄이 낙하되고 있음. 적의 포진지를 포착하는 대로 포지원 요청하겠음. 현재까지 피해 무."

"잘 알았음. 적의 공격 징후이니 경계 철저히 하라."

"알았음. 오버."

 

시가지 강 건너 쪽에서 날아온 포탄의 탄착점으로 적의 예상 포진지가 포착되자 O.P장 (포병대대 연락장교)의 포병대대 포사격 요청이 시작되었다. 포지원을 요청하려면 벙커 밖으로 나가서 적의 포탄이 날아오는 방향을 관측하여 적의 포진지를 확인한 다음, 요청한 아군의 포가 정확히 낙하점에 떨어지는 것을 확인해 가면서 포를 유도해야만 했다.

 

비록 벙커 주위에는 적의 포탄 낙하가 계속되고 있었지만 적의 포진지를 알고 난 지금 상황실 벙커 안에서 포를 유도할 수는 없었다. O.P장은 무전기를 들고 벙커 밖으로 나가 포를 유도하기 시작했다.

 

"중대 1발 효력사."

 

적의 포탄 낙하가 계속되는 속에서 O.P장은 포 유도지점을 확인하면서 포를 유도시켜 나갔다. 그러던 O.P장이 5분도 되지 않아 낙하된 포탄 파편으로 부상을 입었다. 피를 흘리면서 통신병에게 부축되어 벙커 안으로 들어온 O.P장은 적의 포진지가 한 두 군데가 이니라면서 O.P하사관에게 무전기를 인계하고 응급 치료를 받았다.

 

O.P하사관은 O.P장을 대신하여 벙커 밖으로 나가 새로운 좌표를 포병대대에 연락하며 포를 유도시켰다. 비오듯 낙하되는 적의 포탄은 아군의 포사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되었다. '짱~ 짱~ 짜장~' 하는 폭발 소리는 듣는 사람의 간장을 태웠다.

 

"적의 공격이 있을 것이나 계속 전방 경계를 철저히 하라."

 

각 소대에 재반복하여 주의를 환기시켰다. 시간은 흘러 03시 00분. 무려 한 시간 동안 낙하된 포탄은 수백 발이 족히 넘을 듯 싶었다. '짱~' 하는 소리를 내면서 상황실 귀퉁이에 한발이 명중되었다. 벙커 한쪽 귀퉁이가 무너지면서 사낭에 담았던 흙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뚫어진 구멍으로 별빛이 보였다. 이제 끝장이구나 싶었다.

 

허물어진 구멍을 철모와 방탄복으로 막았다. 상황실 안은 흙먼지로 뒤덮였다. 호흡이 순조롭지 못하고 맥박이 멎는 것 같았다. 몸을 웅크리고 앉아 무전기로 각 소대의 이상유무를 채크해 봤으나 아직 적은 보이지 않는다는 보고였다. 시간이 그토록 지루하게 느껴진 것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날이 밝으면 멎어지겠지.

 

'짱~' 상황실 벙커가 뒤흔들리면서 동시에 또 한발의 포탄이 벙커 위에 명중되었다. 포탄 낙하와 함께 벙커 뒤가 뚫어지면서 상황실 안은 다시 흙먼지 투성이로 변했다. 쪼그리고 앉아서 당하고만 있으니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신이여, 빨리 날이 밝도록 해 주소서."

 

마은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포탄 낙하만 없다면 적 2개 대대 병력 아니라 2개 사단 병력과도 굴하지 않고 맞교전을 벌여 볼 수 있을 텐데, 차라리 적이 빨리 공격해 왔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다. 그러면 비오듯 쏟아 붓는 포탄세례는 멎어지겠지.

 

총 한번 쏘아보지 못하고 죽는 것보다 차라리 나가서 죽는 것이 한결 나을 것 같아 포탄이 머리 위에 떨어지든 말든 벙커 밖으로 나갔다. 날아온 포탄들은 '짱~ 짱~' 소리를 내면서 줄지어 터지고 있었다. 장진되어 있던 1탄창의 실탄을 허공을 향해 '따르륵~' 쏘아 버렸다. 마음이 한결 나았다.

 

O.P하사관은 비오듯이 쏟아지는 적의 포탄 낙하도 개의치 않고 계속하여 '중대 1발 효력사' 하면서 포를 유도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다치지 않고 있는 것이 신기하게 보이면서도 정말 고맙게 생각되었다. 자기 몸도 돌보지 않고 어쩌면 저렇게 태연하게 포를 유도시킬 수 있을까? O.P하사관 옆으로 갔다. 주위에는 계속 포탄이 낙하되어 폭발하고 야자수 나무와 바나나 나무가 '뚜둑~ 뚜둑~' 소리를 내며 곳곳에서 가지 째 꺾여져 나갔다. '꽝~ 꽝~' 하는 폭음과 함께 건너다 보이는 옆 건물이 부서져 내렸고, 쨍그랑거리며 유리창 깨어지는 소리가 날카롭게 기를 진동시켰다.

 

강 쪽에서 무수한 예광탄이 줄지어 하늘을 수놓으며 날고 강 건너 상공에는 낮과 같이 밝은 조명탄이 비추고 있었다. 적의 대공격이 시작되어 인접 중대와 교전이 붙은 모양이다. 기관총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상황을 보건대 아마도 적은 강을 건너는 모양이었다. 강 쪽을 경계하는 초소마다 예광탄이 줄을 이어 날았고 폭음도 그치지 않고 계속 되었다.

 

적의 박격포탄은 쉴 틈 없이 여전히 낙하 되었다. 상황실로 들어갔다. 시계를 보니 04시 15분, 적의 공격이 있다면 이 시간을 더 넘기지는 않을 것이리라.

 

"경계를 철저히 하라. 강변 쪽으로는 적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중대를 향한 적의 공격이 예상된다,. 전방에 나타나는 물체는 무조건 사격하라."

 

각 소대에 다시 지시했다.

 

"꽝~ 꽝~  꽈꽝~~"

 

요청된 아군의 포는 강 건너 일대와 공동묘지 뒤 숲속 일대의 적 예상 접근로지점 일대에서 요란한 폭음과 함께 연이어 터졌다. 그 순간 '꽝~' 하는 소리와 동시에 상황실 반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먼지와 화염에 쌓인 상황실 안은 아수라장이 된 채 어두컴컴한 암흑으로 변해버렸다.

 

사낭이 떨어지면서 켜 두었던 램프 불을 덮쳐 버린 모양이었다. 이제 정통으로 한발만 더 벙커 위에 떨어진다면 벙커 안은 곧 무덤이 될 판이었다. 적이 빨리 공격해 오던지 아니면 날이라도 빨리 밝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1초가 1시간이나 되는 것 같은 포조한 순간들이 숨막히듯 계속 흘렀다. 뛰어나가려 한들 나갈 곳도 없었다. 02시 정각부터 시작된 포탄 낙하는 05시 30분이 되자 비로소 멎었다.

 

"포탄 낙하가 멎었으니 적의 공격이 있을 것이다. 전방을 철저히 경계하라."

 

각 소대에 연락했다. 정말 피가 말라 버릴 것 같은 지루한 순간들이었다. 낙하된 적의 포탄은 몇천 발은 될 성 싶었다. 상황실 밖을 나오니 주위의 건물과 담은 군데군데 무너지고 부서져 있었다. 주위에 줄지어 서 있던 야자수와 바나나 나무는 대부분 가지가 갈라지고 꺾여져 있었고 땅바닥에는 낙하된 포탄자국이 무질서하게 움푹 움푹 파여져 있었다. 포탄의 몸체는 폭발과 함께 파편이 되어 날아가 버리고 탄두(신관) 부분만 땅바닥에 벌집처럼 박혀 있었다.


전쟁은 어린 생명마저 앗아갔다.

 

몸서리치게 지루했던 적의 포탄 낙하로 중대는 O.P장과 대원 15명이 파편상을 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소나기 같은 포탄 낙하로 중대의 1/5 정도가 사상을 입지 않을까 밤새 걱정했었는데 피해가 적은 것은 불행중 다행이었다. 10분 정도 흘렀으나 적의 공격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적은 강 줄기와 시 와각지 숲속에서 재공격하긴 했으나 계속된 포병대대의 포사격과 시 외각지에 구축되어 있던 10중대와 11중대의 견고한 방어망에 부딪쳐 밤새 우왕좌왕 하다 수 없는 희생자만 내고 만 것이었다. 결국 적의 재공격은 실패로 돌아갔고 살아남은 패잔병들은 도주하기에 바빴다.

 

중대는 차단 임무에 들어갔고 3대대 각 중대는 밤새도록 들볶던 적의 잔류병들을 소탕하기 위해 탐색작전에 들어갔다. 3대대는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전과를 올렸다. 확인 사살의 숫자와 생포되는 적의 숫자가 계속 불어났으며 그 외에도 장비와 화기류 등 크나큰 전과를 획득했다. 이로써 호이안시를 공격, 점령하겠다던 V.C와 월맹 정규군 2개 대대는 아군의 견고한 방어망에 부딪쳐 소수의 패잔병들만 남긴채 와해되어 버렸다.

 

전쟁은 건물을 파괴시켰다.

 

중대는 산산이 부서져 폐허가 되어버린 시 외각지 격전지에서 인접중대와 합류한 다음 시가지의 뒤편에 위치한 공동묘지에 임시 숙영지를 정했다. 이틀에 걸쳐 호이안시 외각지 일대의 촌락들을 탐색했지만 적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이번 구정 공세때 호이안시를 향해 포사격을 했던 포진지와 중화기 진지들이 아군의 포탄에 허물어져 있었고 포탄과 실탄과 틴피들이 수없이 그 주위에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대나무와 바나나 나무가 무성한 숲속에는 적들이 옮겨 놓았는지 곳곳에 V.C와 월맹 정규군의 시체더미가 쌓여 있었다. 숫자조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시체들은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형언키 어려운 악취를 풍겼다. 어떤 시체에는 이미, 처음 보는 이상한 벌레들이 우글거리고 있어 구역질 나게 했다. 전쟁의 참 비극과 전흔, 그것은 곧 폐허와 허무와 죽음이었다.

 

월맹 정규군 2개 대대 병력의 구정공세로 죄없는 주민들이 희생되었다.

어머니가 어린 자식을 안은 채 죽어있고, 그 옆에 어린딸도 죽어 있다.

 

위 사진 가족의 아버지

 

시체를 치우기에 분주한 월남군. 허물어진 건물 속에서 깔린 시체를 찾아내어 치우고 있다.

 

공동묘지에서 멀리 떨어진 촌락까지 샅샅이 탐색해 보았지만 허물어진 초가집들만 앙상하게 남아있을 뿐, 주인 없는 돼지와 닭들만이 먹이를 찾기 위해 이 구석 저 구석을 뒤적이고 있었다. 바다 쪽 마지막 촌락까지 탐색을 끝낸 중대는 대대본부로부터 철수의 작명을 받았다.

 

중대가 철수하던 도중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V.C들이 소화기 사격을 가해 왔다. 중대는 신속하게 사격이 날아온 좌측방향으로 배치를 붙었다. 사격지점이 바나나 나무로 우거진 외따로 떨어진 숲속임이 확인되자 중대는 숲 일대를 포위해 가면서 일제 사격을 가했다. 수분 동안 사격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잠시 후 포병대대에 요청한 V.P탄(지상에서 약 20m되는 공중에서 폭발되는 포탄)이 날아와 숲속 지점 일대의 허공을 줄지어 가르며 터지기 시작했다.

 

"명중, 효력사."

 

무전기를 통해 포병대대 상황실에 연락이 되자 비오듯 날아온 V.P탄들이 바나나 숲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포병대대의 V.P탄 사격이 계속되자 적은 저항할 뜻을 버렸는지 한발의 총알도 날아오지 않았다.

 

포탄 사격이 끝남과 동시에 1개 소대는 좌측, 1개 소대는 우측으로 해서 공격을 감행했다. 한 두발의 저항사격이 날아오더니 일제히 사격을 하면서 공격해 들어가자 그 소리마저 그쳐 버렸다. 1소대로부터 전과 보고가 들어왔다.

 

"V.C 3명 확인사살, 칼빈 2정, S.M.C 1정 노획"

"계속 탐색하라."

 

총소리가 계속하여 여기저기서 울렸다.

 

"V.C 도주, 계속 추격 중."

"추가 확인사살 5명, SMG 1정, 칼빈 3정 노획. 계속 탐색하겠음."

"V.C 1명 생포, 중상임."

"알았다. 끌고 오라."

 

중대 전술망은 각 소대의 전과 보고로 쉴 사이가 없었다. 탐색이 끝난 결과 총 전과는 V.C 21명 확인사살, S.M.G 5정, 칼빈 13정 외 수류탄,  R.K.T 포탄, 장구류 노획 다수 등이었다. 생포된 V.C는 30세 정도된 월맹 정규군이었다. 심한 출혈로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고 고통스러워 하는지라 고통을 덜어주고 난 다음 숙영지를 향해 계속 진출했다. 숙영지 근처에 다달았을 때 V.C 1명이 도주하여 동굴로 들어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중대는 잠시 기동을 멈추었다.

 

시간이 흐른 뒤

"V.C 1명 사살, 방망이 수류탄 20발, 철조망 파괴통 5개, 칼빈 1정, 실탄 다수 노획." 이라는 무전이 왔다.

 

공동묘지에 있는 숙영지에 이르니 김연상 여단장이 중대를 방문해 일일이 대원들과 악수를 나누며 호이안 시가전에서의 전과와 구정공세 방어전에 고생이 많았다고 치하했다.

 

김연상 여단장은 호이안 시가전에 전과와 공로가 많았다면서 여단 참모들과 같이

공동묘지에 있는 중개 숙영지까지 와서 전공을 치하하고 있다.(↓표는 저자) 

 

광남 성청에서(저자)

 

호이안시 광남 성청에서 필자

 

 ************************************************************

 

이 몸 데려 가소서

 

신이시여 이 몸 데려 가소서

날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신이시여 이 몸 데려 가소서

내 기꺼이 웃으며 당신을 따르리라

 

신이시여 차라리 이 몸 데려 가소서

내 기꺼이 당신의 사랑을 알리라

 

신이시여 날 반겨 주소서

내 당신 곁에 가 공손히 엎드려 감사 드리리다

 

신이시여 내 피 진하지 않다면

내 몸뚱아리 기꺼이 바치리라

 

당신은 무엇이 부족해 아직도 웃고 있소

내 피

내 몸뚱아리 그것도 모자란다면

내 마음도 내드리리다.

   

출처 : 청룡부대 1대대 3중대 작전하사 권동일 선배님의 월남전 참전수기 "스콜(Squall)"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