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역사/해병대 전통·비화

해외 출전<1편> - 태로이 매복작전

머린코341(mc341) 2016. 11. 23. 23:29

해외 출전<1편> - 태로이 매복작전

 

  꽝나이 북방 약 10키로 지점에 위치하는 1번 도로변의 ‘테로이’4부락은 월맹이나 중공으로부터 해상으로 수송되어 바탄칸반도에 양육(揚陸)된 공산군의 군수물자나 병력을 서부 산악지대로 이송하는 통로상의 길목이었다. 그런데 아군이 이 부락에서 매복을 하게 된 것은 용미리 2호작전을 마친 후(7월 19일) 이 부락의 월남민병대장으로부터 아군에 의해 노획된 그 장비를 인양, 수송하기위해 동원된 약 1개 중대 규모의 적 병력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테로이 4부락을 거쳐 원대로 복귀한다는 제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제보를 받은 현지 부대(1대대)에서는 여단본부에 보고를 한 다음 1중대(장, 유현태 대위)에 그 길목에 매복대를 매복시킬것을 지시하여 1중대 3소대가 그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그 날 저녁 민간인들의 통행이 끈긴 일몰 후에 매복대(2개 분대)를 이끌고 은밀히 매복지점으로 진출했던 박종환 소대장은 작전계획에 따라 2개 분대의 병력을 물이 말라 있는 개활지의 개천에 일열로 배치한 다음 각 분대별로 가지고 간 크레모어 지뢰를 계획된 지점에 매설하는 것을 일일이 점검하고 확인했다. 그리고 소대장과 각 분대장, 분대장과 각 조장들과 조원들 간을 연결하는 기도비익용 신호줄을 짐검하는 등 작전지휘를 위한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선 숨을 죽인 채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밤하늘엔 별도 유난히 총총했고 달빛도 밝았다. 그러한 밤에 개울에 몸을 숨긴 대원들은 뚫어질 듯 훤히 트인 도로 위를 응시하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9시 45분경 대원들이 응시하고 있는 도로상에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분명히 눈에 띄지 않던 야자나무 한 그루가 생겨나더니만 잠시 후 또 한 그루의 나무가 생겨난 대 이어 2~3분 후 구름이 달을 가렸을 때는 한 두 그루씩의 나무가 아니라 열 그루, 스무 그루씩 차츰 무더기로 나타나 그 수효가 200~300그루에 달하였고, 일단 도로 위에 집결한 그 무리들은 10여 명의 척후병을 앞세우고 1열 종대로 아군의 매복지점으로 서서히 접근해 왔다. 도로와 매복지점과의 거리는 약 300야두 그 거리가 200야드에서 다시 100야드로 좁혀지는 동안 척후병들은 간간이 정지해서 풀잎으로 벌레소리 같은 소리를 내었고, 소리를 내는 동안에는 행군대열이 정지하고 있었다.

  소대장 박종환 소위가 떨리는 손으로 크레모어 지뢰의 점화스위치를 힘껏 누른 시기는 적의 선두 척후병이 매복지점 10야드 전방까지 접근했을 때였다. 쾅1 쾅!‥‥ 전방에 매설해 놓은 2발과 그 뒤쪽에 매설해 놓은 2발이 한꺼번에 터지는 소리는 처절하게 요란했고, 그 순간 바로 코앞으로 다가와 있던 수 명의 척후병들은 일제히 허공에 솟구쳤다간 떨어졌다.

  그리고 그 폭발음을 신호로 아군병사들의 총구가 일제히 불을 뿜자 그 전방의 적들은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쓰러지거나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기에 바빴고, 사기가충천한 아군 병사들의 총구는 더욱 맹위를 떨쳤다. 요격에 성공한 소대장 박종환 소위는 지체 없이 중대장에게 무전연락을 취해 전과확대를 위한 조명사격과 퇴로 차단을 위한 포격을 요청했고, 요청을 받은 중대장은 81밀리와 60밀리 박격포의 조명탄을 쏴 올리는 한편 105밀리와 4.2인치 포대에 요청하여 퇴로를 강타함으로써 아군 병사들로 하여금 우왕좌왕하는 적병들을 약 2키로미터까지 추격하여 상당수를 사살하는 전과를 거두게 했다. 그리고 추격전을 벌일 때 중대장은 2소대(장, 오석열 중위)의 일부 병력을 차단부대로 투입하는 한편 중대기지에 잔류하고 있는 3소대의 예비분대를 1번 도로로 우회공격을 감행하게 하여 본대와 합류시켰다.

  추격전을 벌이는 와중에 특히 2분대의 김태웅 소총병은 큰 웅덩이 속에 10여 발의 Ml6소총 실탄을 발사하여 5명의 적을 손들고 나오게 했고. 그들이 나온 후 웅덩이 속에 수류탄을 집어 던진 함영록 일병과 이영식 일병은 그 웅덩이 속의 은신처를 수색하여 다섯 구의 시체와 다섯 자루의 소화기를 끌어내었다.

  그 이튿날 동이 튼 후 추격전을 벌인 지역을 수색한 결과 32의 적 시체를 확인함에 따라 아군은 적 사살-32, 포로4(여자3) 각종 화기 16정을 노획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그 32구의 시체는 가매장을 해 두었다가 21일 테로이촌 촌장을 비롯한 700여 동민들과 1중대 장병들 다수가 참석한 가운데 화장에 의한 합동장례식을 거행했다.

  이 테로이 매복작전은 국내외의 보토매체에 의해 크게 보도가 되었고, 그 날(20일) 아침 6시경 헬기를 타고 현장으로 비래하여 박종환 소대장에게 악수를 청하며 작전의 성공적인 수행을 극구 치하했던 주월 한국군사령관 채명신 중장은 "매복대는 여하이 운용되어야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좋은 교훈을 주었다. "라는 말을 남겼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傳統과 秘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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