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740기 김동훈

실무생활-7 낙오하면 죽는다.

머린코341(mc341) 2019. 10. 5. 10:38

실무생활-7


낙오하면 죽는다.


이 양반들아 당신들이 이 배낭을 매고 이 거추장스러운 단독무장에 병기까지 든 채로 낙오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할 수 있겠나?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지만 쫄병에게는 비명도 사치다.


몇십분의 행군을 통해 사단 남문을 빠져나갔다. 아... 이 얼마만에 보는 "사제"의 풍경인가..


초 겨울로 들어서는 바깥의 세상은 찬 기운으로 가득하지만 군복을 입지 않은 민간인을 본 순간 괜히 울컥했다.


언제 끝이 날지도 모를 까마득한 군생활은 암담하기 그지 없다.  일병만 되어도 요령이 생기는지 모두들 아무렇지도 않게 묵묵히 걸었다.


고참들은 가벼운 배낭을 매고 산보를 만끽했다.


한발자욱 한발자욱 걸을 때 마다 속에서 욕이 튀어 나오고 무릎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재발 발바닥에 물집만 잡히지 않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무색하게 어느 산을 기어오르기 시작할때 부터 아니나 다를까 발바닥은 신호를 보내왔다.


걸을 때 마다 따끔따끔 한 것이 이미 물집이 잡혀 오고 있는 것이다. 남들보다 유독 빠르고 크게 잡히는 발바닥 발 뒷굼치 물집! 아... 정말 미치겠다.


산길을 오르는데 숨이 머리꼭대기 까지 찼다.


당연히 속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었는데 뒤에 걷던 선임의 욕지거리가 계속 날아온다.


"빨리 가라고 씨**아" 야 김동훈 빨리 안가? 이 개**가 기합이 빠져가지고..."
"네 빨리 가겠습니다."


선두에 선 병력의 속도가 늦어지면 중반이나 후미에 선 병력들은 지체가 되기 시작한다. 힘든 산길일수록 잦은 멈춤은 더 피로도가 높다 그냥 본인의 속도로 꾸준히 걸어야 하는데 자꾸 걷다 섰다를 반복하니 고참들도 슬슬 신경질을 내기 시작했다.


뒷통수에서 인계사항이 남발되었다. 내용은 선두 속도 늦으면 오늘 밤 뒤진다는 내용이었다.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산을 기어 올랐다.


11월의 쌀쌀한 날씨도 아랑곳 않듯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한참을 계속 기어오르다 10분간 쉬어 구령이 떨어졌는데 선임들이 다가오더니 귓속말로  개썅욕이 날아온다.


다시 행군이 시작되었고 드디어 어느 산의 정상에 올랐고 다시 내려가는데 이게 기가막힌다. 내리막길에서 겪는 물집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발바닥은 쉼 없이 마찰이 일어나고 물집은 영역을 넓혀간다. 차라리 힘든 오르막이 그리울 만큼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인상을 써도 안된다. 그냥 아무일 없다는 듯이 걸어야 한다.


지옥을 걸어도 이만큼의 고통이 없을 것 같았다.  두어번 쉬고 산을 내려와 긴 둑방길에 들어섰다. 추수를 끝낸 들판이 을씨년 스러운게 꼭 내 마음 같았다. 발바닥이 감각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차라리 다행이다 감각이 무뎌지면 통증도 무뎌진다. 여전히 고참들은 힘하나 드는 내색없이 초겨울의 풍경을 즐기고 있는 듯 하다.


전 대대 병력이 둑방길로 전부 들어선 순간 갑자기 선두에 선 중대장의 고함이 들려왔다.


"가스 가스 가스"


난 처음에는 뭔말인지 몰라. 당황했지만 행군중의 적 화학탄 낙하에 의한 방독면 착용 훈련이라는 것을 눈치로 알아채고 다리에 매어져 있는 방독면 케이스를 열었는데 아 씨바..이게 뭔가..


방목면 케이스 안에는 A텐트 지주핀이 쏟어져 나오고 있어야 할 방독면은 보이지 않았다. 어쩐지 뭔 놈의 방독면이 이리도 무거울까 하는 생각을 내내 했는데 선임이 잔대가리를 굴려 내 방독면을 빼버리고 거기에다 자기가 챙겨야 할 지주핀을 넣어둔 것이었다.


중대 병력은 방독면을 착용하고 검사를 하고 있었는데 나만 얼이 빠진 모습으로 우두커니 서 있으니 선임이 황급하게 달려온다.


"야 김동훈 방독면 쓰라고 개**야"
"방독면이 없습니다. 방독면이 없습니다"


당황해서 소리치는 내 목소리에 선임도 놀랐는지 계속 쓰라고만 하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는 A텐트 지주핀을 봤는지 황급하게 줍기 시작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던 찰나 방독면을 쓴 중대장의 손짓이 날 행했다. 뭐라 뭐라 했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적 포탄 낙하"


하는 구령이 들려왔고 병력들은 둑방 아래로 산개를 하기 시작했다. 선임들에 이끌려 둑방 밑으로 내려와서 나자빠져 있는데 둑방위의 중대장의 손짓이 계속 나를 향한다.


크게 뭔가가 잘못 되었음을 직감했다. 대열 뒤에서 선임들이 더 뛰워 왔다. 얼굴이 보일 만큼 방독면을 들더니 개쌍욕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계급장은 상병. 중대장의 지적에 상병 고참들도 나에게 달려와서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한 것이다.


속으로 한 없는 욕지거리가 나왔다.


'아 씨바... 내 이럴줄 알았다..내 이럴줄 알았다고... 난 오늘 ㅈ+ㅗ+ㅅ 됐다 씨바..."


계속 들려오는 선임들의 욕 지거리에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정신이 아찔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