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12.12사태

12.12 : 군벌과 군조직 -10-

머린코341(mc341) 2020. 3. 15. 15:36

12.12 : 군벌과 군조직 -10-


(좌: 김오랑 소령)



1공수여단장 박희도 준장이 경복궁 30경비단에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명령을 받고 김포의 1공수여단 주둔지로 출동한 것은 밤 11시 경이었다. 전두환 소장의 지프차를 타고 출발한 박희도 준장은 출발 이후 조금 있다가 부여단장 이기룡 대령에게 무전을 쳤다.


“나 여단장이다.”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부대로 복귀하기 위해 신촌을 통과하여 제2한강교로 가는 중이다.”


제2한강교는 바로 이기룡 부여단장과 권대포 작전참모, 헌병대장 백남석 대위가 타고 있는 지프가 있는 곳이었다. 9시 20분 경 육군본부로 출발한 이들은 10시 경 도착 이후 육본 작전처장 이병구 준장을 만나려 했으나 민간 차량으로 혼잡하여 근처 민간 전화로 통화하고 부대로 복귀하려던 중 10시 22분 경 이루어진 장태완 수경사령관의 한강다리 봉쇄 지시로 인해 몰려든 교통 혼잡 안에 꼼짝없이 갇혀 있던 상태였다.


“여단장님. 제2한강교는 완전히 막혔습니다. 행주대교로 돌아가야 합니다.”

“알겠다.”


행주대교는 수경사 관할이 아닌 30사단 관할이었다. 장태완 사령관은 이와 같은 사태를 우려하고 이전에 박희모 30사단장에게 행주대교 봉쇄를 지시하였으나 그는 보안사의 회유공작에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박희도는 별판을 보자마자 경례하는 초소의 초병들을 유유히 지나치면서 행주대교를 건너 김포 1공수 주둔지로 향했다.


한편 1공수 주둔지에는 특전사 부사령관 이순길 준장, 특전사 전발처장 홍덕현 중령, 특전사 인사처장 강리건 대령이 도착하였다. 이때 강리건 대령은 이미 특전사 보안부대장 김정룡 대령의 회유공작으로 ‘이미 신명을 바쳐 출동키로 결심한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가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하고 부사령관은 관여하지 말고 가만히 있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하였다. 이순길 부사령관 또한 이에 동의하여 출발하지 않고 있었으나 정병주 사령관의 독촉으로 결국 출발하였다.


이들은 23시 55분 경 도착하여 여단장실로 안내받았으나 24시 경 도착한 박희도 준장은 여단장실에 들리지 않았다. 그대로 박희도 준장은 출동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이순길 부사령관이 나와 말했다.


“박 장군, 병력을 출동시키지 마세요.”

"나는 전 보안사령관님의 명령에 따르기로 결심했어요.“


그대로 1공수는 출동했다. 박희도 준장의 명령은 이러했다. 1공수 1대대는 육본 사령부 건물 및 상황실, B-2 벙커를 점령한다. 2대대는 선두 통로를 개척하고 육본 본청을 점령한다. (3대대는 마포구청에 계엄군으로 출동해 있었고, 4대대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5대대는 국방부를 점령한다. 6대대는 통로 장악 및 예비대 업무를 수행한다.


비슷한 시각 육군본부의 적법한 명령을 받고 출동한 9공수여단은 역시 육본의 회군 명령을 하달받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정병주 특전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사유는 간단했다. 특전사령부는 당시 전쟁터였기 때문이었다.


정병주 사령관의 호출을 받았다 여단으로 복귀한 3공수여단장 최세창 준장은 10시 15분 무렵 전두환 보안사령관으로부터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 연행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최세창 여단장은 즉시 3공수 15대대장 박종규 중령을 불러 상황 설명 후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보안사로 연행할 것을 지시했다. 최 준장의 지시를 받은 박종규 중령은 즉시 “네, 알았습니다.” 하며 사령관실을 빠져나가고자 했다.


“임마, 어떻게 하는 줄도 모르고 가면 어떻게 해?”

“하여튼 체포해서 보안사에 넘기면 되지 않습니까?”

“어떻게?”

“최악의 경우 제가 죽으면 되지요.”


그 말을 들은 최 준장은 사령관실의 약도를 그려주었다. 대대로 복귀한 박종규 중령은 특공대대를 활용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특공중대장 김홍렬 대위와 사병 8명을 무장시키고 최세창 여단장의 지시를 기다렸다. 지시는 23시 40분 경 하달되었다. 박종규 중령의 15대대 병력이 거여동 특전사령부로 직속상관을 체포, 연행하기 위해 출발하고 있었다.


특전사령부는 3공수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도착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M16소총으로 무장한 이들은 제지 없이 특전사령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최세창 여단장은 특전사령부에 연락해 참모들, 특히 신우식 특전사 작전처장을 피신시킬 것을 주문했다. 신우식은 하나회 회원이었다. 한편 특전사령관 전속부관 장범주 대위마저 피신한 마당이었고 정병주 사령관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은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 한 명 뿐이었다.


특전사 보안반장인 김충립(당시 소령)의 증언에 따르면 김오랑 소령은 특전사령부의 운명을 예감하고 있었던 듯 하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김오랑 소령은 ‘자기 자리에서 38구경 권총을 꺼내 실탄 7발을 장전하였다. 내가 김 소령에게 실탄을 왜 장전하느냐고 물으며 말리니까 ’보안사 병력이 우리 사령관을 잡으러 온다‘면서 나의 만류를 듣지 않았’던 것이다.


박종규 중령과 그의 병력들은 2층의 사령관실로 가기 위해 계단을 올라갔다. 특전사령관실은 복도에서 문을 열면 비서실이 있고, 그 안에 사령관 집무실, 또 그 안쪽에 내실(사령관 침실)로 되어 있다.


그때 김오랑 소령은 사령관실로 들어가 문을 잠궜다. 2층에 올라와 비서실로 달려든 특전사 3공수 15대대원들은 비서실 구석에 있던 김충립 소령을 무시하고 문고리를 돌렸다. 잠겨 있었다. 박종규 중령이 즉시 ‘갈겨’라고 명령하자 M16이 연발로 발사되었다. 문고리가 떨어져나갔다.


그 사이에서 권총 총성 몇 발이 울렸다. 김오랑 소령의 권총이 불을 뿜은 것이었다. 그때 문고리 앞에 서 있던 나영조 대위가 쓰러졌고, 옆에 있던 김홍렬 중대장도 마찬가지였다. 박종규 대대장 또한 왼손에 총상을 입었다.


박종규 중령의 병력은 즉시 응사했다. 사령관실 한 쪽에 걸려 있던 정 사령관의 예복이 걸레짝이 되어 있었을 정도였다. 그들이 사령관실로 들어가자 한 쪽에 김오랑 소령이 쓰러져 신음하고 있었고, 특전사령관 정병주 소장은 한구석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그의 왼팔에는 총상이 입혀져 있었다. 저항하는 그를 그의 직속부하들은 사지를 잡고 개처럼 끌고 갔다. 그때 정병주 사령관은 얼핏 옆에서 신음하고 있는 군인을 보고 그가 자신의 전속부관 장범주 대위인줄로 알았다. 그러나 장 대위는 이미 피신해있었다.


특전사 상황실장 박중환 중령은 소령 한명과 같이 상황실을 지키고 있었다. 총소리가 울렸지만 그의 증언을 따르자면 ‘장교로서 상황실 책임을 맡고 있어 그저 담담하게 책상에 앉아’있었다.


창문 밖으로 고함 소리가 나서 내다보니 3공수 병력들이 사령관을 끌고 가고 있었다. 그 때 비서실 병사들로 보이는 몇몇이 “실장님이 아직 안 죽었어, 아직 살아 있어”라고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김오랑 소령은 배, 허벅지 등에 M16 6발을 맞고 사망하였다.


정병주 사령관이 지프에 강제로 태워져 끌려갈 때, 위병소 초소에서 초병이 검문을 하면서 소속을 묻자 차에 타 있던 장교가 “나 15대대장이야”라고 대답했다. 그제서야 자신을 체포하여 연행한 자가 박종규 중령임을 깨달았다고 정병주는 말했다.


이후 정병주는 보안사 분실로 끌려갔다가 과다출혈로 쇼크 현상을 보여 국군 서울지구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곳에서 정병주 사령관은 그때까지만 해도 총에 맞은 것으로 알고 있었던 장범주 대위를 걱정했으나, 이후 방문한 가족이 김오랑 소령이 사망했음을 알려주었다.


여담으로 당시 김오랑 소령을 사살한 주체인 박종규 중령과 김오랑 소령은 육사 23기로 2기 선배인 사이로서, 매우 친한 사이로 12.12 며칠 전에는 부부 동반으로 박 중령 집에서 놀다가 온 적이 있었을 정도였다. 김오랑 소령의 아내 백영옥은 관사에서 총소리를 듣기는 했으나 그게 남편의 죽음을 알리는 소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12.12 이후 백영옥은 박종규의 집을 찾아갔으나 만날 수 없었다. 이후 만나자 박종규는 담담하게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백내장을 앓고 있었던 백영옥은 이후 실명하고 그녀는 1991년 자살하였다.


김오랑 소령은 1944년 출생하여 1965년 육사 25기로 입학, 1969년 졸업하여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그는 이후 2사단 수색중대 소대장으로 근무하다 월남전에 참전하여 무공을 세우고 74년 특전사 3공수여단 16대대 19지역대 중대장으로 부임되면서 특전사와의 인연을 맺었다.


이후 16대대 작전장교, 16대대 18지역대장의 보직을 수행하고 육군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79년 3월 특전사로의 원복을 자처하여 5공수여단 21대대 부대대장으로 임명되었으나 1개월만에 사령부 추천으로 특전사령관 비서실장에 임명되었다. 그는 2014년 1월 중령으로 추서되었고 보국훈장 삼일장을 추서받았다.


[뻘글 집합소] 2015.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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