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사령관 61

국방의 멍에 - 3. 海兵隊의 晋州駐屯 (4) 國會調査團의 來晋

국방의 멍에 - 3. 海兵隊의 晋州駐屯 (4) 國會調査團의 來晋 그런데 그날 새벽녘에 있었던 공비내습사건은 비록 그 정도의 피해를 입히는데 그쳤지만 사회적으로는 큰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1947년 10월 2일에 발생했던 대구 폭동사건을 비롯해서 제주도 4.3사건과 여순사건 ..

국방의 멍에 - 3. 海兵隊의 晋州駐屯 (3) 追擊戰과 위령제

국방의 멍에 - 3. 海兵隊의 晋州駐屯 (3) 追擊戰과 위령제 공비들이 자취를 감춘 시각은 4시 30분경이었다. 그들이 자취를 감춘 사실을 확인하게 된 나는 적개심에 불탄 나머지 즉각 추격전을 벌이자는 부하장교들의 의견도 있었으나 섣불리 나섰다가 어떤 변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었으므..

국방의 멍에 - 3. 海兵隊의 晋州駐屯 (2) 共匪來襲事件

국방의 멍에 - 3. 海兵隊의 晋州駐屯 (2) 共匪來襲事件 진주사범학교에서 주둔을 하게 된 해병대는 도착 즉시 학교 안팎 요소요소에 경계초소를 배치하여 경계를 강화함과 동시에 특히 야간에는 학교 뒷산 쪽으로부터 공비들이 습격을 해 올 것이라는 가정 하에 수시로 비상을 걸어 이에 ..

국방의 멍에 - 3. 海兵隊의 晋州駐屯 (1) 진주로 이동

국방의 멍에 - 3. 海兵隊의 晋州駐屯 (1) 진주로 이동 4월 1일에 입대식을 거행했던 해병 1기생들의 신병교육대 수료일자는 7월 중순경 어느 날이었다. 그리고 1기생들의 수료식을 앞두고 해병대에서는 가입대 중인 해군14기 신병들 중에서 440명을 해병2기 신병으로 확보하여 8월 1일부터 교..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17) 네바다 주립대학으로 유학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17) 네바다 주립대학으로 유학 1961년 7월 4일, 5·16 군사혁명으로 예편되어 현역에서 물러난 나에게 다음과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즉, 육군에서 전역된 세 명의 장군과 내가 미국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 그 경비는 미국 정부측에서 부담(실..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16) 장면 박사와 나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16) 장면 박사와 나 여기서 나는 1952년 11월 부산에서 영세할 때 대부가 되어 주셨던 장면 박사에 대한 회상을 해 보게 된다. 나는 당시 유봉구 신부의 소개로 그 분을 알게 된 뒤, 단지 나의 대부로서만이 아니라 학자이자 지극히 민주주의..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15) 3·15 부정선거와 군부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15) 3·15 부정선거와 군부 내가 해병 진해교육기지 사령관으로 재직할 때인 1960년 3월15일, 뒷날 부정선거(不正選擧)로 지탄받았던 정·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다. 이 당시 국내 정세는 선거를 둘러싸고 몹시도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는데, ..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14) 미 육군참모대학에서 연수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14) 미 육군참모대학에서 연수 합동참모본부 근무를 마쳤을 때 나의 나이는 43세였다. 이때 나는 전역(轉役)을 하기에는 아직 이른 나이라는 생각에서 좀 더 공부하기 위해 미국 육군참모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심하고 필요한 절차를 밟았다...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13) 육군대학과 합동참모본부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13) 육군대학과 합동참모본부 1953년 10월 15일부터 해병 제1여단장으로서 1년 간 전방 근무를 한 뒤, 나는 김대식(金大植) 장군에게 임무를 인계하였다. 그리고 1954년 11월 1일, 나는 군사학(軍事學)을 재수학(再修學)하기 위하여 진해에 있던 ..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12) 이 대통령과의 특별 면담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12) 이 대통령과의 특별 면담 1953년 7월 27일에 휴전협정이 조인됨에 따라 6·25 동란은 일단 막을 내리였다. 그리고 나는 이해 10월 1일부로 당시 부사령관이었던 김석법(金錫範) 장군에게 해병대 사령관직을 인계하였다. 나와 김석범 장군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