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사령관 61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11) 미국 해병대 시찰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11) 미국 해병대 시찰 나는 6·25 동란을 통하여 전우가 된 미국 해병대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나는, 1952년 12월 2일부터 28일까지 약 4주 간에 걸쳐서 미국의 해병대를 시찰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것은 당시 미 해..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10) 천주교 신자가 되다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10) 천주교 신자가 되다 앞에서도 쓴 바 있듯이, 우리 부부가 천주교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43년 7월, 당시 만주의 간도특설대에서 근무하고 있던 내가 아내와 함께 명월구(明月構)에 있는 성당을 처음으로 찾아갔을 때부터였다...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9) 천막 사령부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9) 천막 사령부 본래 독립된 단위의 부대는 전방의 제일선에 나가서 작전을 수행하는 전투 부대와, 이러한 부대를 지원하기 위한 후방 사령부를 설치해서 운영해야 하는 것이 통례이다. 그러나 우리 해병대는 6·25 동란 직후에도 이렇게 ..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8) 장녀 순희의 죽음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8) 장녀 순희의 죽음 내가 북진을 계속하여 함흥 지구 전선까지 진출하였을 때, 아내 혜룡은 아이들을 데리고 수복된 서울의 장충동(獎忠洞)에 임시거처를 정하여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인 11월 22일 아침의 일이었다. 아내 혜룡이 그..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7) 후방에 남은 가족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7) 후방에 남은 가족 6·25 동란의 발발로 제주도에 주둔중이던 해병대 전 병력이 진해로 이동한 뒤, 제주도에는 극소수의 병사들만이 남아서 군인가족들을 보살폈다. 마침 만삭(滿朔)의 몸이었던 아내 혜룡은 장남 옹목이를 서울에 있는 ..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6) 영월 지구 작전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6) 영월 지구 작전 일단 포항으로 철수했던 우리 해병대는 그뒤 한동안 미 해병 제1사단에 배속되어 작전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 무렵 태백산맥(太白山脈)을 타고 다시 남하중인 적은 맹렬한 공세로 영월(寧越) 지구 일대를 수비중이던 우..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5) 북진과 중공군의 개입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5) 북진과 중공군의 개입 감격스런 수도 탈환식에 참가하였던 우리 해병대는, 그 날 오후부터 다시 서울 동북방으로 진출하여 북한강(北漢江) 일대의 적의 잔당을 소탕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앞으로의 작전은 오직 북위 38도선을 넘어 북..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4) 수도 탈환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4) 수도 탈환 6·25 동란이 발발한 후 한동안 수도 서울을 비롯한 남한의 많은 지역은 적에 의해 점령당하였고, 아군은 매우 고전(苦戰)을 치러야만 하였다. 그러던 중에 맥아더 장군의 결단으로 감행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전세(戰勢)..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3) 인천 상륙과 진격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3) 인천 상륙과 진격 내가 지휘한 우리 해병대의 상륙목표지점은 인천부두의 '청색해안(靑色海岸, Blue Beach)'이라 이름 붙여진 지점이었다. 맹렬한 함포사격의 지원으로 인하여 인천부두의 상륙지점인 청색해안과 적색해안(赤色海岸, Red Bea..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2) 인천 상륙작전

老海兵의 回顧錄 - 5. 6·25동란과 해병대의 발전 (2) 인천 상륙작전 해병대 사령부가 진해로 이동을 완료한 9월 2일, 당시 대구에 와 있던 국방부 장관이 급히 나를 만나고자 한다는 기별이 전해졌다. 나는 지난 4월, 역시 국방부 장관의 부름으로 학과 공부 도중에 서울로 달려갔던 일을 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