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 82기 박동석

해병은 간다(2)

머린코341(mc341) 2015. 1. 4. 20:45

해병은 간다(2)

 

이런 저런 생각을하면서 넓은 연병장을 지나 까막득하게 보이는 제2정문 옆 면회실을
향하여 걸어나갓다.
차차 가까이 가면서 쳐다보니 면회실 앞 등나무 아래에 푸른 색이 아닌 다른 색깔의
옷을 입은 아마도 여자 옷을 입은 듯한 한사람이 서서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좀 더 가까이 갔다.

3개월만에 처음보는 치마입은 사람이었다.
조금 더 가까이 갔다.
그녀는 그때 내 눈엔 분명 사람이 아니고 천사였다.세상에 이렇게 아름답고 멋지고
그리고 푸른색이 아닌 옷을 입은 사람. 그건 분명 이 지상의 사람이 아니고

딴 세상에서 온 천사였다.
앞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얼굴의 윤곽이 보일 듯 말 듯 자꾸 다가가니까 그 천사가 어쩌면 나를 보고 웃는 듯한
아니 우는 듯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표정으로.
아주 낯익은 듯한 모습으로 서서히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어쩌면 내가 좋아했던 그 아가씨가 아닐까하는,.

또 한편 그럴리가 없다는 체념이 번갈아 가면서 내 가슴을 꽉 막히게 했다.
좀더 가까이 갔을때의 그 놀라움 ! 반가움! 환희!

내가 푸른색깔로 둘러싸인 감옥 속에 갇혀 지내던 3개월 동안 잠깐 잠깐의 회상 속에
항상 떠올렸던 그 아가씨가 분명 그 아가씨가 틀림없었다.
묵묵히 돌부처처럼 우뚝 서버렸다.
한참만에 정신을 차렸다

드디어 바짝 가까이에서 멍하게 서 있었다 .말이 도무지 나오질 않았다.
그러다가 한참 만에야 그 와중에서도. 배가 몹시 고프다는 생각만 머리에 꽉 차는 것이었다.
아마도 [나이롱면회]가 되어 친구에게 무엇인가 좀 실컷 얻어먹을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윽고 입을 연 것은 아가씨였다.
고향 이야기.가족 이야기.친구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훈련소 중대장이 각 가정에 보내는
가정 통신문을 우리집에서 보고서야 입대했다는 소식을 전해주더라는 것이다.
소식을 듣고 부랴 부랴 달려왔다는 등등. 줄줄이 이야기를 엮어갔으나
바깥 사람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배가 몹시 고프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이야기 중간을 잠깐 가로 막았다.그리고 내가 한 첫마디는 "배가 고프다 였다."
이야기를 중단하고 얼른 밥 보따리를 풀어 놓으면서 그렇게 배가고픈 줄을 몰랐다고 했다.
난 쉴새 없이 밥을 퍼넣었다. 고개를 들 사이도 없었다.

아가씨도 처음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려다가 내 밥먹는 모습에 질려버렸던지
그만 눈물을 글썽이는 것이었다.
이몽룡이 거지가 되어 나타나 춘향이 앞에서 밥먹는 꼴이었다.
그러나 그건 소설 속에서도 이몽룡의 연극이었지 만 나에게는 절실한 현실이었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몇 그릇 분량의 밥을 말없이 혼자 다 먹고난 나는 그만 견딜수가 없게 되었다.
배가 너무 부르고 숨이 가빠서 꼭 무슨 약을 먹고 취한 사람처럼
의식마져 가물가물했던 것이다. 그답답함이란 무슨 말로도 표현하기 어렵고............

우리 훈련병 선배기수 중에 면회온 날 떡을 너무 많이 먹어서 한 사람이 죽었다고 했는데
내가 그꼴이 되지 않을까. 겁이 더럭났다
사실 그당시는 자유당 말기라서 그랬는지 식사가 보잘것 없었고 주는 밥만 먹고서는
무척 배가 고팠다 식사 시간이 3분이었지만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씹고 어쩌고 할것도 없었다 양재기 그릇 하나에는 밥,
또다른 양재기 하나에는 멀건 콩나물국, 그 것이 식사의 전부였다.
이 정도의 식사로 밤낮없이 뛰고 구르고 기는데 배가 고프지 않을리 없었다.

심지어 어떤 훈련병은 훈련소 식당 앞에 실무병들이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를 담는
드럼통 [짬빵통] 에 손을 넣어 찌꺼기를 집어 먹는 일도있었다.
그러니 교관이 그 드럼통 옆에 서서 몽둥이를 들고 지킬 수 밖에.
가축사료용으로 쓰일 짬방을 사람이 집어 먹으려고 안달을하니 기가 막힐 일이 아닌가?

그런데 하루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짬방통을 지키는 교관이 한눈을 파는 사이에
어느 훈련병이 재빨리 쨈빵을 한움쿰 집어 입에 틀어 넣었다.
동작만 얼핏 본 교관이 "입벌려!"하고 구령을 내렸다.
입을 즉시 벌린 그신병의 입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교관도 혀를찼다 .얼마나 배가 고팟으면 이렇게 빨리 삼켰을까?.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주는 밥도 그렇게 적지는 않았다.
워낙 강훈련에다 [3보이상구보]라고 해서 그냥 걷는 법이 없었으니

배가 고플 수밖에.......


 

출처 : 해병대인터넷전우회, 해병212기 박순갑 선배님 http://www.rokmc.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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