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264기 박동규

춥고 배 고프고 졸립던 시절을 회상하며(7)

머린코341(mc341) 2015. 1. 6. 04:48

춥고 배 고프고 졸립던 시절을 회상하며(7)

5. 빳다와 기합


(집합의 원칙)


구타는 군대에 있어서 만큼은 필요악(必要惡)이라고 생각합니다.
20대 초반의 팔팔한 젊은이들, 특히 해병대를 제 발로 선택한, 그래서 남들보다 조금은 특이한 개성을 가진
젊은이들만이 모여 사는 곳이기 때문에 "말"로만 해서는 지휘, 통제가 안 될 때가 있으며
또 때리지 않으면 절대 말을 듣지 않는 "꼴통"들도 분명히 있었으니
(본인도 약간은 그런 끼가 있었지만...)
최소한의 매질은 필요하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나 그 구타에는 반드시 원칙이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우선 사(私)적인 감정의 분출이나 화풀이 수단으로 악용되어서는 절대 안 되며
오로지 공(公)적인 필요, 즉 강한 군대, 질서있는 군대를 만들기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훈련을 게을리 하거나 선임수병들에게 '개기는' 경우 등인데
이런 때에 한해서 빳다가 필요합니다만, 빳다는 빳다로 시작해서 빳다로 끝나야 하며
무차별적인 발길질이나 주먹질은 곤란하다고 봅니다.

저도 참 많이 맞았습니다만, 제가 맞을 때마다 뼈저리게 느낀 것은
제가 나중에 고참이 되면 이렇게 하겠다고 결심한 것이 있었으니,
그게 뭐냐 하면, 어떠한 잘못 된 행위에 대하여 두번까지는 구두로 경고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잘못이 시정되지 않고, 세번째 되풀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집합을 시키자는 것이었는데, 사실은 그러지 않을 때도 있었을 겁니다.

(가장 흔한 기합 "꼬라박아!!")


기합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그 중에 가장 보편적으로 널리 쓰이던 것이
바로 '꼬라박아'였습니다.
하여간 뻑하면, 심심하면 했던 그 원산폭격 말입니다.

일렬 횡대로 꼬라박아를 시켜놓고, 좌측이나 우측 맨끝의 한 놈을 발로 차면
그 옆엣 놈들이 차례로 무너지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때, 발로 차는 놈이나 그걸 구경하는 놈은 즐거울지 모르나, 당하는 놈들은 아주 죽을 맛이란 거
다들 아시지요?
'꼬라박아'를 시켜 놓은 채, 군가를 시키는 경우도 있는데
"우~울려고, 내가 왔나~" 또는 "아버님, 어머님 날 곱게 길러서 해병대에 보내려고~"
이런 노래를 부르면 딱 어울리지요.

(목구멍에서 피가...)


제가 맨 처음 올린 글에서 진해훈련소에 입소하던 날, 이빨을 부드득 갈던 교관 이야기를 썼습니다만
어느 날인가, 바로 그 교관으로부터 M1소총 개머리판(더 정확히는 개머리쇠-옮긴 이 註)으로
가슴팍을 수없이 맞은 적이 있는데, 다음 날 일어나서 침을 뱉으니
침에 피가 섞여 나오더군요.
그후, 수일간 그런 상태가 계속됐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그건 악몽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타는 악몽임에 틀림 없습니다만, "진짜 악몽"은 구타 당하기 위해서 집합을 한 후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순간입니다.
그 구타가 과도할 정도로 심한 것만 아니라면....

제가 전역할 때, 276기 김윤* 후임이 만들어 준 추억록에 누군가가 이렇게 써 놨더군요.
"집합은 별 거 아니다. 단지 기수별로 오와 열을 맞춰 서는 것이다!"라구요,
지금 그 추억록은 없어졌지만, 그 글은 제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하침에서의 졸도)


제가 병장 때, 저희 기수 총원이 악랄한 하교 102기 도** 하사에게 하침에서 집합을 당한 적이 있는데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 제가 술을 마시고 하침에서 약간 헛소리를 하고 난
직 후 였을 겁니다.

제 차례가 되자, 그 도** 하사가 오른손 스트레이트로 저의 가슴을 한번 내질렀는데
그 주먹이 하필이면 명치에 꽂혀 버리고 만 겁니다.
그 한방을 맞고 전 오뉴월에 개구리 뻗듯, 쭉 뻗어 버렸나본데
하여튼 제가 정신을 차리려할 때, 옆에 있던 동기들이 저를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깨우고 있었는데
이 덕분에 제 차례 뒤에 있던 동기들은 아마 맞지 않고 그냥 지나갔을 겁니다.

(화기소대)


제가 훈련소 수료 후, 1사단 *연대 2대대 6중대 3소대.
그야말로 소총중대에 소총소대 말단 소총수로 배치를 받았다는 것은 앞에 쓴 바가 있습니다만
일병 말년에 화기소대로 옮겨졌는데, 화기소대는 그 중대에서 가장 군기가 센 곳입니다.
LMG라는 자동화기를 가진 소대라서 군기가 셀 수 밖에 없었는데
군기가 센 데에서 근무를 하면, 남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LMG는 몸통(총신과 총열)과 삼각대가 모두 쇳덩어리로 되어 있는데
총신에서 쉽게 분리되는 총열 부분이 있는 바, 바로 이 총열이 경우에 따라선
가공할 빳다로 변합니다.
제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 총열은 길이가 약 50센치, 지름이 약 4~5센치 되는 쇠뭉치였는데
그것이 어느 순간 빳다로 용도변경 되어, 엉덩이에 작열할 때는
육중하고 둔탁하게 "퍽"하는 소리를 냅니다.
대표적인 빳다였던 5파운드 곡괭이 자루는 이보다 더 고음이 나는데,
굳이 표현을 하자면 "빡"에 가깝습니다.

이건 주제와는 좀 다른 이야기인데, 제가 좀 고참이 되어 훈련을 나갔을 때
저보다 덩치가 좋은 후임들에게 그 LMG 몸통을 메게 하면
그 무게에 눌려, 얼마 못 가서 빌빌 거렸는데, 그 꼴을 보다 못해 제가 다시 빼앗아 메고 다녔습니다.
사실 완전무장 위에다 LMG를 얹어 메고 다니면 힘은 듭니다만
그것도 고참이 되면 아주 능숙하게 메고 다닙니다.
-헌데 이 껀으로 집합을 시켰는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

그래서 군대는 짬밥이 중요합니다.
그때 빌빌했던 그 후임들도 나중에는 다 능숙한 고참이 되었을텐데
참, 강원도 출신의 272기 이경* 후임은 저와 비슷한 체구였는데도
졸병 때부터 그 무거운 LMG를 잘도 메고 다녔습니다.

(전역 후에도 남은 상처)


저는 해병대를 전역하면서 두 군데의 상처를 가지고 나왔는데
하나는 귀울림이고, 다른 하나는 갈비뼈가 아픈 것이었습니다.
귀울림은 평생의 업보로 지금까지도 함께 살고 있습니다만
그리 심각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는데, 어떤 때는 신경이 많이 쓰입니다.

갈비뼈가 아픈 것은 아마도 금이 간 것이 아닌가 싶은데
이 갈비뼈가 다른 부위에 비해서 자생력이 강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갈비뼈에 기브스한 사람은 못 보셨을 겁니다.

즉 아주 심한 경우가 아니면 스스로 ,알아서 회복이 된다는 얘긴데
그래서 그런지, 전역 직 후에는 몇년간이나 오른쪽 갈비뼈가 뜨끔뜨끔했었는데
몇년 지나고 나니까 그냥 살만하더라구요. -7부 끝-

 

 

출처 : 해병대 인터넷전우회, 박동규선배님 http://www.rokmc.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