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장교 글/해간35기 숫탉

30분 대기중대 지휘記

머린코341(mc341) 2015. 1. 7. 06:14

30분 대기중대 지휘記

 

'70년 가을, 낮에는 따뜻하고 아침 저녁에는 시원한 아주 살기 좋은 계절, 부대외곽의 코스모스는 그야말로 한들한들한 진짜 좋은 계절 이다.

 

해병 제1상륙사단 11연대 3대대 9중대장 이 대위는 통근 트럭을 타고 출근 하면서 항공대 활주로 옆을 지나면서 코스모스가 핀 것을 새삼스럽게 보면서 생각이 난다.

 

대학을 졸업하고 약간의 직장생활을 하다 대한민국의 남자들의 임무인 군 입대를 하게 되어 어차피 군대생활을 할 바엔 동생도 ROTC 장교로 입대한 마당에 가정형편상 집에서 돈을 갖다 써야할 형편도 못되는 처지에 졸병으로 가기도 싫어서 장교로 가겠다고 맘을 먹고 있든 차 어느 군이나 제일 먼저 시험 보는데로 응시했다가 합격 하는대로 입대하여 단기복무장교로 근무하다 제대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병무청을 순례하고 있던차, 하필 해병대에서 학사장교를 제일 먼저 뽑는다는 포스타가 붙어 거기에 응시를 했다.

 

친구들의 이야기는 해병대 장교는 그 훈련이 너무 힘들어서 배겨 내기가 어려울 거란 이야기들을 했지만 포스터 내용이

 

“3개월 훈련후 소위로 임관하여 총 3년을 복무하고 제대할수 있으며 원에 따라 장기 복무도 할수 있고 또 미국 유학도 할 수 있다” 라는 달콤한 말에 이끌려 학창시절시 대학의 자기들 과에서는 당시 당수도를 10년이상 연마해서 2단-(당시 당수 2단은 좀 많이 알아줬다.)을 따고 교내에서는 약간 행세를 하든 사람이라,

그래서 체력쪽 에서는 약간의 자존심도 있고 해서

 

“3개월이면 씨아틀(목화씨 빼는 도구)에 부랄(음낭)을 넣고 있어도 그 기간이야 못 견딜까” 하는 마음으로 응시를 했다. 헌데 이게 월남전이 치열하고 소대장이 모자란 관계로 음력설 다음날에 시험을 보고 벼락같이 신체검사를 받고 공군장교 시험 전에 합격자 발표가 나서 공군장교 시험 지원서는 써 볼 새도 없이 휴지 조각이 되어 버리고 해병대 장교 후보생으로 입대 하고 말았다.

 

3개월 후 장교로 임관하는 약속은 지켜졌지만 그 지옥, 그 수모는 인간으로 참을 수 있는 한계점이였고 또 임관후 4개월이라는 훈련과정의 복병을 만나 죽을 고생을 하고 해병대소위가 되었다. 비록 병과는 포병을 받았지만 보병 훈련을 7개월씩이나 받고 게다가 보병 소대장(6개월)까지 하느라 죽을 고생을 했다. 이는 원래 해병대는 그 구조상 지원부대나 보충대가 없는 전투를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제도가 그렇게 된 것 같았다.

 

재무나 경리 장교들도 예외는 아니였다.

 

우여 곡절 끝에 포병대로 제 자리를 찾아 왔으나 월남전이 터져 월남에서 관측장교로 보병중대에 배속되어 근 일년을 박박 기다 운이 좋아 살아서 귀국하여 진급후 육군포병학교서 위탁교육이 끝나고 해병대 포병중대장이란 안정되고 적성에 맞는 직책을 맡게 되었다.

 

중대장이란 말단 지휘관이지만 책임도 무겁고 또한 권한도 상당히 있는 그럭저럭 할 만한 직책이라고 생각했다.

 

중대장부터 지휘관인데 지휘관은 격일제로 부대에서 숙식을 해야 한다. 그래서 어제 퇴근하여 오늘 출근하면 오늘 저녁은 부대 중대장실에서 숙식을 해야 한다. 독신인 이 대위는 매일 부대에서 잘 수 있으면 좋겠지만 또 그것은 병들에게 부담을 준다하여 금하고 있는 사항이다.

 

중대에 출근 전 대대인사의 출근부에 출근 도장을 찍고 중대에 내려갔다. 출근부는 8시 30분이면 대대장에게 결제가 올라가니 제일 먼저 신경 써야 할 일이다.

 

중대에 내려가니 벌써 학과 출장준비가 부산하다.

 

당직병의 “학과준비 병사 떠~나~ 15분전~~~~~” 하는 구령이 처량하게 울린다.

 

해군의 영향을 받아 구령소리는 끝에 길게 끌어 그 목소리가 처량하게 들려야 멋있는 구령소리로 통하니 서로들 연습을 하여 당직병의 직책을 맡으면 목소리를 뽐낸다.

 

중대장실에 들어가니 전령(지금은 음어로 따까리라 하지만 공식명칭은 전령이다.) 원래 전령의 T/O는 4명이나 평상시엔 한두 명이 한다. 원래 임무는 모든 통신이 마비, 파괴 되었을 때 몸으로 중대장의 명령을 예하에 전달하는 매우 위험한 임무지만(그래서 그들의 병과는 통신이다. 평상시는 중대장의 잡 심부름이나 비서의 임무를 한다.)이 반갑게(?) 반기며 커피를 한잔 내온다.

 

간밤의 이상 유무를 우선 전령에게 먼저 듣고(이것 때문에 전령은 중대에서 약간의 세력이 있다.) 당직사관 당직하사들로부터 보고를 받고 중대선하와 전포대선하를 불러 부대를 파악하고 금일의 과업(당시 해병대에서는 부대내의 일을 조국통일의 과업이란 뜻에서 항상 그렇게 부른다.)에 대해 이야기하며 약간의 환담을 한 후 각자의 위치로 돌아간다.

 

거의 매일 똑 같은 일과이다.

 

시간이 흘러 11시쯤 되었을 때 중대 장실에 노크소리가 “똑똑” 하고 난다.

 

“선하입니다 들어가도 좋습니까?” 중대 선임하사 진상사는 항상 예의 바르고 출입법을 철저히 지킨다. 나이도 중대장보다 열 살 이상 차이가 나는데도 그 예의는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다. 하긴 만약 자기가 무례하게 행동하다간 나이 어린 상관에게 무슨 망신을 안 당한다는 보장이 없겠지만......,

 

이 대위는 어쩌다가 해병대 장교가 되었지만 다른 장교들은 알고 보니 해병대 장교가 되려고 재수 삼수를 해서 들어온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당시 대개의 해병대 장교 지망생들은 장교후보생(해병학교)의 훈련이 병들보다 더 세고 길고 가혹하다는걸 이미 알고 그걸 감내할 각오를 하고 들어온 아주 강짜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독하고 험한 훈련을 마치고 장교가 되였다는 강한 자부심으로 그 행동들이 멋과 깡으로 뭉쳐져서 하사관들이 수틀린 짓 하다가는 개망신을 당한다.

 

또 그들은 격투기를 한두 가지씩 통달해서 개인적으로 격투를 해도 웬만한 사람은 당하기 어려운데 합법적인 권력을 등에 업고 있으니......... 그들 덕분에 이 대위 같은 마음이 여린 사람들은 무임승차를 하는 기분이 든다.

 

“예 잠시만 기다리시오” 하고 이 대위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의관을 정재하고 중대장 책상 앞에 앉아서

“예 들어오시오” 하고 진 상사를 맞는다.

 

중대 선하가 들어와 그 예의 멋진 거수경례를 하고 이 대위 역시 멋있게 거수경례로 답례를 한다.

이는 서로의 직책을 존중 한다는 뜻이다.

 

앉지도 않고 오늘 “우리가 30분대기 중대 임무입니다“

 

삼십분 대기중대란 5분대기소대가 출동해서 상황이 끝나지 않으면 후속적으로 출동 하는 부대를 말 하는 것인데 당시 공비출몰이 잦아 임시 편성한 제도로 거의 차례가 오면 규정대로 준비는 하고 있지만 거의 출동 되는 경우는 없고 또 설사 출동된다 해도 그냥 연습이 대부분이고 실제 상황이 붙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해병대는 모든 병과가 보병 전투능력이 있으므로 병과에 관계없이 임무가 부여된다.

 

“그래요? 벌써 그렇게 됐나? 그럼 해야지 별 문제 없잖아?”

 

“근데요 이번 건 좀 이상해요. 철저히 준비를 하라는 말을 뜬금없이 하네요.”

 

“그래? 그럼 철저히 하면 되지 뭐”

 

“그렇긴 한데 해병대에서 언제는 철저히 안했습니까? 이상하잖아요."

 

“하긴 그래, 우린 항상 철저히 했으니까 새삼스럽네. 하여간 애들 단속 잘하고 준비해요. 내 곧 나갈게”

 

해병상륙사단 11연대 3대대 9중대는 30분대기중대의 임무를 부여 받았다.

 

30분 대기중대란 출동준비를 24시간 하고 있다가 명이 떨어지면 모든 준비를 갖추어서 위병소를 30분 이내에 통과해야한다. 30분이란 짧지 않는 시간이지만 대원들을 집합시키고, 영내대기 중이지만 규모가 중대니까 변소 간 사람도 있을 것이고 세탁도 할 수 있고 주보도 갈 수 있고…….

 

하여간 집합시켜 군장검열하고 실탄 배부 받아 승차 출동하여 30분 이내에 위병소를 통과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수차례의 예행연습은 했기 때문에 불가능도 아니지만, 그래도 5분대기 소대에 비하면 아주 양반이다.

 

5분대기 소대는 완전무장 한 채 밥도 먹고 변소도 가고 그 외 시간은 내무반에 나란히 앉아 있어야한다. 지휘관은 권총도 풀지 못한다.

 

이 대위는 어슬렁거리며 나가 군장검열을 하고 장비도 챙겨 봤다. 대원들은 기계같이 움직인다. 이 대위는 항상 자기보다 부하들이 훨씬 더 잘한다고 생각해서 거의 부하들에게 잔소리를 안하는 편이다. 이 대위가 잔소리 안해도 중대선임하사 소대장 소대선임하사 분대장 등 잔소리 하는 사람들은 줄로 섰기 때문에 중대장까지 잔소리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한데 갑자기 출동명령이 떨어졌다.

 

이미 5분대기 소대는 출동했고 30분 대기중대에 명령이 하달됐다.

 

당직병은 호루라기를 불며“ 30분 대기중대 출동 준비”를 외치며 돌아다니고 두 명의 소대장 소대 선하 작전하사 할 것 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이미 휘발유를 가득채운 찝차 한 대, 닷찌차(1톤) 한 대, 2.5톤 트럭 세 대가 막사 앞에 대기하고 중기관총 등 장비를 싣고 있고 시계를 보든 당직병은 “출발 15분전의 구령”을 구슬프게 외치고 편성된 대원들은 속속 승차를 한다.

 

적어도 10분전에는 발차를 해야 30분 내에 위병소를 통과 할 수 있다. 이미 위병소에는 30분대기 중대의 시간을 책크 하라는 명령이 하달됐을 것이다.

 

진짜 상황이라며 실탄을 대원들에게 지급하라는 것이다( 보통 훈련비상시는 간부들이 보관한다. 실탄을 지급하면 신경이 보통 쓰이는 게 아니다).

 

빗발치듯 상황이 들어오고 무전기는 행정망 전술망을 전부 열어놓고(보통 행정망만 운용한다) 이거 시작하는 게 보통이 아니었다.

 

훈련하고는 분위기가 싹 다르고 출동이라 해도 보통은 상황진전이 거의 없고 그냥 출동했다가 몇 시간 앉았다 돌아오는 게 보통인데 이건 처음부터 분위기 달랐다. 무전이 빗발친다. 공비 몇 명이 어디를 통과하고 또 어디에서 관측이 되고 좌표를 찍어보면 전부 우리부대 부근이였다.

 

월남에서 대게리라전의 경험이 많은 이 대위 정신이 버쩍 났다.

 

이거 진짜 전투같은 전투 한 번 해 볼 기회가 온 건가?

 

“우리나라에서?" 월남에서는 지식인으로 전쟁의 명분에 회의를 느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 왜 싸우나 왜 내가 여기 왔나“ 등 등.

 

빗발치는 명령이 내려오는데 어쩌면 우리구역에 적이 있을는지도 모르게 생겼다. 당시의 해병대라는게 호전적인 사람들의 집합단체라 상황이 그렇게 돌아가니 상부의 지휘관들은 신들이 났다.

 

퇴근은 고사하고 지휘관들이 직접 무전기를 잡고 난리들이 났다.

 

아주 살판들이 났다.

 

아래 병사들도 눈들이 반짝반짝 빛이 나고 손발이 척척 맞아 사기가 하늘을 찌른다.

 

전진축선(전진축선은 전진선과 달라 꼭 그대로 가야지 조금이라도 돌아가든가 질러가면 큰일 난다, 명령 불복이다.)이 주어지는데 이거 큰일이 났다.

 

차에서 내려 보병으로 기동을 그것도 매우 빠른 기동을 해야 하는데 장비라는 게 장난이 아니었다. 50m/m 중기관총에 60m/m 박격포에……. 이걸 메고 산과 들을 비호같이 달려서 작명(작전명령)을 맞춰야 하는데 이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장비를 버리고 갈수도 없고 이 대위는 결심을 한다.

 

“만약 공비들이 우리 지역에 있어만 준다면 이번 작전에 꼭 침투공비를 잡아서 대원들과 파티를 해야겠다. 설령 좀 무리를 해서라도.”

 

공격대기 지점에서 이 대위는 고민한다. 지금 나는 내가 군입대후 처음으로 서게 된 조국을 위한 첫 전투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전과를 올려 군에 입대한 보람을 찾아야 겠다.

 

전 대원을 집합시키고 모든 공용화기와 장비를 한쪽에 모으고 완전 무장은 해체하여(완전 무장 내에는 별게 다 들어 있다.

 

 속옷 두벌, 식기, 비상식량, 심지어 비누, 수건, 양말 등등) 몽땅 차에다가 싣고, 중사 한 명과 운전병들을 책임자로하고 근방에 숨어 있다가 연락이 오면 번개같이 달려오라고 했다. 어차피 식기는 식사시간에만 필요할거고 개인천막은 숙영할 때만 필요 할 테니까.

 

이 대위는 자신이 있었다. 간첩이 나왔으면 중대가 나왔겠나? 대대가 나왔겠나? 나와 봤자 10명 미만이겠지 귀신 잡는 해병이 100명이 넘는데 까짓것 박격포가 무슨 필요가 있겠으며 중기관총, 경기관총은 무슨 소용이 있냐. M16이면 고만이지, 발견만 하면 잡는 것은 어떻하면 못 잡겠나.

 

철모까지 벗어서 차에 싣고 작업모만 쓰고, 완전 무장은 해체하여 판쵸 한 장에 건빵 한 봉지에 수통에 식수 한 통, 판초를 둘둘 말아 어깨에 대각선으로 질끈 동여 메게 했다. 중대 간부들은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본다.

 

“중대장님 이래도 괜찮겠읍니까” 걱정이 많은 선임소대장 김중위의 말이다.

 

“괜찮아, 넌 무조건 중대장님의 명령이라고만 해” 하고 이 대위는 안심을 시켰다. 중대는 명령에 따라 신속히 이동했다. 근데 작업모에 판쵸까지 둘러메니 폼이 엉망이었다. 우리가 마치 공비 같았다. 그러나 기동력과 사기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갑자기 동원된 예비군 100명이 중대에 배속이 되었다. 잡탕인 부대들이다. 나이도 그렇고 육군 나온 사람 공군 나온 사람 총한 방 안쏴본 사람도 있었다. 2개 소대로 편성하여 하사관들을 소대장에 임명했다. 그들은 귀찮은 기색이 역역했다. 재수 없어서 하필 상황 발생시에 동원돼서 왕재수 옴 붙어 그것도 해병대에 배속된 것이다. 꼴통같은..........,

 

했거나 말거나 나는 배속된 부하도 부하니까 그냥 지휘하는 것이다. 전 예비군을 모아놓고

‘나보다 연장자도 있으시겠지만(당시 중대장 나이 28세) 지휘의 효율을 위해서 말을 놓겠습니다.“ 로 말문을 열고 “ 알겠냐?” 로 시작해서

“법률로 보장된 부하도 부하니까 도망가거나 불복하면 법대로 처리한다.”

하니 예비군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말로만 듣던 진짜 해병대의 전투부대 지휘 장교를 만난 것이다. 겁을 먹으니 자연 지휘가 잘 되었다.

 

일반인들은 잘 몰라서 그렇지 예비군도 동원되면 군법의 적용을 받는다.

 

“하긴 정든 부하도 아니니 위반사항이 있으면 정상참작이 있을 리 없겠지 법대로 하면 그만이지......”

 

식사 때가 되니 예비군들은 자기들 소속 중대장이 바겥스에 밥이랑 김치랑 주부식을 추진하여 자기들대로 해결하고 있었다. 아마 그 마을이 총동원 된 것 같았다.

 

심지어 아주머니 부인회까지. 했거나 말거나 이 대위는 상관할 바가 아니고 또 소대장으로 임명된 하사들은 거기서 식사를 해결하는 모양이여서 그래도 좀 편했다. 9중대는 식사를 중대 단위로 하기로 하고, 하긴 소대 단위로는 취사도구도 변변치 못하고 또 취사병도 없고 하니,

 

숨겨둔 차를 무전으로 불러 식사를 준비하곤 식사가 끝나면 차는 또 숨겨두고 이런 식으로 시간은 흘러갔다.

헌데 30분 대기중대만 출동 한 게 아니라 시간이 가고 상황이 발전하니 전 대대 전 사단이 모두다 출동을 했다.

 

대대장 김소령이 지휘차 나왔다.

 

그는 소령으로 대대장을 맡아 아주 신명이 난 사람이다.

 

또한 이번 작전에 공을 세우려고 혈안인 사람이다. 헌데 그가 만난 부하들 꼴을 보니 웃음이 정로 나오는 모양이었다.

 

“야! 이 대위, 이게 뭐야 거지같잖아. 너 장비는 다 모두 어떻게 했어!”

 

“장비는 잘 보관되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경 보병개념입니다. 대 게리라전에서 그들보다 신속히 기동하려면 이 수 밖에 없습니다. 이번 작전에 수훈을 세울테니 모른체 해주시고 출몰 가능성 있는 곳에 투입만 시켜주십시오.” 그 당시 나와 대대장은 좀 잘 통했다.

 

그 또한 전술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 이 대위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랜 군 생활이 몸에 밴 관계로 규정에 잘 길들여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만약 무슨 사고라도 나면 꼼짝없이 걸려들거란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절충안이 생각난다. 한다는 소리가,

 

“그래도 야 인마! 높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는지 모르니 산속 깊숙이 들어가! 큰길가로 나오지 마.”

해서 아주 오지 즉, 출몰 가능성이 많은 곳으로 배치됐다.

 

하루 이틀 날자는 가고 비는 오락가락하고 가을 날씨라 음산하며 밤이 되면 산속이라 살을 에는 추위가 오고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낮에는 탐색하고 밤이면 매복 차단을 한다.

 

월남에서는 아무리 명령이 떨어져도 이 대위는 우선 대원들의 안전을 먼저 생각했다. 괜히 남의 나라 전쟁에서 금쪽같은 내새끼, 귀한 남의 집 아들들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게 소신이였다. 그러나 여기서는 상황이 달랐다.

 

거의 명령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수행한다.

 

차단지점을 만약 공비들이 통과하면 다음에 처벌도 받겠지만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한다.

 

한번은 차단지점이 산 마루위로 이어지는 지점이였다. 그날따라 바람이 몹시 불어 그 꼭대기에서는 도저히 야영하기가 아주 곤란했다.

 

야전교범에도 야간의 경계는 산꼭대기보다 계곡이 효과적이라는게 정설이다. 왜냐면 야간에는 소리가 공기의 흐름을 따라 밑으로 흐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 중위는 선임하사 진문천 상사와 최 중사 이렇게 세 명이 앉았다.

 

먼저 선임하사가 말문을 연다.

 

“김 중위님 이거 큰일 났습니다. 아까 통신병에게 들었는데 오늘밤 부라킹(차단) 지점은 이 산 말랭이 능선을 따라 1km인거 같은데 중대장 하는걸 봐서는 명령대로 할 것 같은데 그러다가는 애들 다 얼어 죽이게 생겼습니다. 김 중위님이 어떻게 좀 해 봐요”

 

“야~ 나라고 별수 있나?, 우린 해병이 아닌가, 지휘관이 원하면 우린 마지막 피한방울 까지 바쳐야 하잖아. 그렇게들 안 배웠어?”

 

“ 아니 농담하지 마시고........”

 

“일단 내가 이야기는 해 보는데 너무 믿진 마라, 중대장님도 복안이 있을 거 아니야, 우리가 하쟎다고 하고 아니라고 말 분이냐?”

 

김 중위는 저만치 서 있는 중대장에게 슬금슬금 접근한다.

 

“중대장님 이건 도저히 따를 수 없는 명령입니다. 요령껏 계곡으로 내려가 후사면 경계를 합시다. 야간에는 후사면 경계가 원안 아님니까?” 선임 소대장 김 중위의 말이다. 김 중위의 말이라면 이 대위는 거의 들어 주는 편이다. 김 중위 또한 억지를 건의 한 적도 없고,

 

“김 중위 말은 맞지만 상부에서는 설마 그것도 모르고 명령을 내렸겠어? 그러니 명령대로 해야 한다” 이 대위의 뜻은 완강했다.

 

“그래도 이 바람 부는 추운 날씨에 정상에다 어떻게 애들을 자라고 합니까?”

 

“그럼 이렇게 하자, 중대 본부는 정상에 있을 테니까 소대는 계곡에 천막을 처라”

 

“에이 중대장님 그걸 그렇게 어찌 합니까.”

 

“할 수 없다 그렇게 하고 경계를 철저히 해라”

 

“ 예 할 수 없지요”

 

그렇게 되니 중대본부만 정상에 천막을 치고 소대는 계곡에 치는 이상한 숙영이 되었다.

 

중대장의 천막을 제일 추운 곳에 쳐야 하니 중대의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진 상사는 오랜 군 경험으로 최후의 방안을 지시한다.

 

“중대장이 명령대로 한다고 저렇게 고집을 피우니 할 수 없다.” 고 하며 가랑잎을 많이 모아 중대장 천막 칠 자리에 모아놓고 불을 질렀다.

 

엔간히 타고나니 잽싸게 흙을 덮어 거기에다 판초와 담요를 깔고 그 위에 개인천막을 쳤다. 다른 대원들은 절대 그렇게 못하게 했다. 산불의 염려 때문이다. 바람부는 가을에 산불이 한번 나면 걷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진 상사는 지휘관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부대는 오합지졸이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개인천막도 소대에서 차출해서 두 겹으로 치고 모포도 판초위에 석장이나 깔고 두 장을 덮게하고 소대는 계곡으로 내려갔다.

 

그날 밤 이 대위는 자다가 하도 바람소리가 날카로워 눈을 떠서 개인천막을 바라보니 밑바닥은 아직 온기가 있으나, 천막에는 성애가 하얗게 끼이고 능선을 지나며 텐트 줄을 지나는 바람소리는 마치 귀신이 아우성치는 소리같이 들렸다.

 

이 대위는 애들을 여기서 숙영했으면 큰일 난뻔 했다고 생각하고 한편으로는 김 중위와 진 상사가 믿음직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 대위는 “나는 명령을 수행했다” 는 안도감도 있었다.

덕분에 중대장은 모처럼 따뜻한 잠을 자게 되었다.

 

야간에는 비행기가 툭하면 항공조명을 하고, 4~5일 지나고 나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고 더운물이 없으니 목욕은 물론이고 세수도 흉내만 내니 대원 모두의 몰골이 완전히 거지같았다.

 

그러나 대원들은 한사람도 불평하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똑같이 고생을 하니까, 공자님 말씀에 부족한 것 보다 치우치는게 더 큰 화근이라 했든가?

 

이 대위는 대원 하나를 보고 유머를 한답시고,

“ 야 너 완전 거지같다”고 했더니 그놈 대답이 걸작이었다. 9중대 해병대원들은 중대장이라고 해도 절대 겁먹거나 주눅들지도 않는다.

 

”중대장님 무슨 말씀을 서운하게 하십니까. 거지가 총을 들고 있는 거 보셨읍니까? 아마 강도를 잘못 말씀 하셨겠지요.“ 이건 완전히 한 수 위였다. 중대장이 보기 좋게 한방 먹었다. 해서 한바탕 웃었다.

 

이제 상황도 없고 철수할 기미도 없고 아마 공비를 잡아야 적전이 끝이 나는 모양이었다. 대원들도 계속되는 탐식명령도 지겨워하고, 밤이면 차단 매복 임무도 시들 해졌다. 실탄을 가지고 있는 대원들을 놀리면 잡생각이 들어 사고 낼까봐 두렵기도 하고 해서 이 대위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진 상사를 불렀다.

 

“진 상사 어디 고물상 잘 아는데 없어?”

 

“아니 뜬금없이 웬 고물상요?”

 

“아니 있어 없어?”

 

“잘 아는데는 없어도 남문밖에 하나 있데요 근데 왜요?”

 

“아 요즘 항공조명을 많이 하는데 그 캡슐을 주어다 고물상에 팔려고”

 

“........글쎄요, 말썽 안날까요?”

 

진 상사는 말썽 나는걸 아주 싫어한다. 오랜 군 생활의 지혜이기도 하고 또 연금에 지장이 있을까봐 조심스러워서 그러는걸 중대장은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 웬만한 말썽 소지가 있는 일을 한땐 항상 진상사를 빼고 한다.

 

“그건 내가 책임지니 진 상사는 몰랐다고 하면 돼 하여간 고물상이나 한번 알아봐”

 

이 대위는 소대에다 전령을 보낸다.

각 소대는 항공조명 캡슐을 주워오면 중대장이 팔아서 내무반별로 현금으로 주겠다고 했더니 눈에 불을 켜고 움직인다.

 

자연이 철저한 탐식이 됐다,

 

알루미늄으로 된 캡슐은 족히 2~3kg은 되었다. 그것도 며칠못가 없어지고 시큰둥해졌다. 빈둥빈둥 놀리면 잡생각이 나니 큰일이다.

 

이번에는 산 개울에 산 가제가 있을게 보였다. 그래서 각 소대는 산 가제를 잡아서 중대본부 취사반에 헌납하라고 했더니 그걸 한 이틀 동안 열심히 잡았다. 돌도 들어보고 구렁도 쑤셔보고 심지어 굴도 들어가 보고…….

 

그 와중에도 그 가제를 삥땅치는 대원들이 있었다. 가제 수거해서 중대장이 먹나, 무조건 대원들 국속에 넣을 건데, 그래도 상황은 비상이 해제될 기미가 없다. 아마 간첩이 비트로 잠복을 한 모양이었다. 활동은 야간에만 하는 모양이었다.

 

육군에서 군견 소대가 오고 예비군까지200명 이상에게 실탄까지 지급한 입장이라 아주 이 대위는 심사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야간에 배치한 매복 및 차단지점에 현역 부하들이야 틀림없겠지만 타군 예비역들은 도무지 믿음이 가질 않았다. 도대체 파악이 안되었다.

 

그들이 현역시절 무얼하다 전역했는지도 모르겠고 또 직업이 뭐인줄도 모르겠고 중요한건 그들이 정확히 주어진 자리에서 잘 근무하는지도 모르겠고, 기왕 고생 하는거 적어도 내 중대 지역에 간첩이 있다면 꼭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대위는 책임감도 있고 해서 야간 순찰 및 정찰을 하기로 마음먹고 똑똑한 대원들로 10명을 뽑아서 매복 지점 사이를 정찰하기로 마음먹었다.

 

각 소대에서 똑똑하고 빠리빠리한 병사 3명에 하사 한 명씩을 차출해서 정찰을 돌기로 마음먹었다.

 

FM대로 야간기동을 했다. 아군끼리 오인사격이 일어날까봐 아군의 매복지점을 피해서 기동을 하는데, 철저한 야간보행법으로……. 아주 밤새도록 탐색 및 수색을 하려고 마음먹었다.

 

새카만 하늘의 별은 빛나고 풀벌레 소리는 처량하고 공기는 쌀쌀한 전형적인 한국산악의 가을밤이었다. 월남에서는 전혀 느껴보지 못한, 아 정말 조국의 가을밤 공기는 역시 다르구나 하며, 말 한마디 없이 전진 하는데 전방에서 적 발견 신호가 왔다.

 

순간 아~! 고생한 보람이 이제 오는구나. 이 대위는 급히 제일 앞에 가서 확인해보니 중대에서 병력을 배치하지 않은 곳에 웬 놈이 총을 메고 서 있는 것이다, 그것도 독립가옥 앞에, 이 대위 입에서 결연한 명령이 떨어졌다.

 

“반달형으로 포위하라!” (사방포위하면 아군끼리 총질하게 된다. 실제로 초기 월남전에서 종종 일어났던 실수였다) 정예해병들이 소리없이 정말 소리없이 반달형으로 포위하고 나는 “자물쇠 풀어!” 하고 명령했다.

 

조용한 깊은 산중에 철걱철걱 10명의 M16자동소총의 자물쇠 푸는 소리가 제법 크게 울렸다.

 

헌데 아주 겁에 질린 경상도 사투리로 “누고? 누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아 다 틀렸구나. 중대장은 급히 아주 급히 포위 중심으로 뛰어나가 큰 목소리로

“사격 멈춰! 사격중지! 전원 자물쇠 잠가!” 하고 소리쳤다.

 

내용은 이랬다, 그들은 동원된 예비군들인데 그 지역을 잘 아는 사람들이라 중대장이 지시한 매복지접은 너무 춥고 무섭고 해서 근처에 있는 독립가옥에 가서 주인과 흥정해서 방을 하나 빌려 불을 때고 야식 사먹고 거기서 화투를 치고 있었다는 것이였다.

 

그래도 혹 공비가 나타날까봐 무서워 근무자를 제일 나이어린 놈으로 하나 세워 놓은 것이였다.

 

이런 기합 빠진 놈의 병력을 마치 정예 해병인양 착각을 한 내가 잘못이었다. 까딱했으면 생목숨 20여명 줄초상 치를 뻔했다. 지금 생각해도 등에 식은땀이 나는 대목이었다.

 

일장훈시에 빳따는 기본이고. 그래도 부수적으로 다음날부터는 예비군들의 군기가 꽉 잡혔다.

“이 또라이 해병대는 중대장이 매복지점 순찰을 다 돈다. 이거 정말 또라이들 한테 걸렸다. 까딱하다간 훈련 왔다가 징역가게 생겼다.”

 

비는 오고 작전은 장기화되었다 .국내전이니 공비가 잡힐 때까지 지속돼는 모양이었다. 나는 본부에 사람을 보내 장기작전에 대한 준비를 해 오라고 시키고 이제 나도 느긋해 졌다.

 

전령 안 상병이 점심식사를 가져왔다.

 

(?)군에서는 없는 반찬이 올라왔다. 새우젓에 고추장에 박은 무 짱아지에 참기름을 섞은 것이다. 사회서라면 별것 아닌 반찬이지만 매일 콩나물에 생멸치를 넣은 국을 먹던 중대장은 눈이 확 뛰이는 것이다.

 

“야 안 상병 이것 어디서 났어?”하고 물으니

 

“예 정당하게 구한겁니다. 그냥 드세요.”하며 웃는 것이다.

 

“그래도 알고나 먹어야지, 새우젓 하나 잘 못 먹고 목에 걸리면 억울하잖아?”

 

“에이 정당하게 구했다니까요. 설마 제가 중대장님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하겠습니까?” 하며 능청을 떤다. 하도 다그치니까.

 

“나무꾼 아저씨가 중대장님 고생 하신다고 자기 도시락의 반찬을 헌납 했습니다.”

 

“그래 그 참 쓸 만한 나무꾼이다. 어쨌든 사연이나 알자”

 

안 상병의 말은 이랬다.

 

“사실 제가 구한 건 아니고요, 1소대 강 병장님이 구한 건데요.”하며 말문을 열어, 오늘 아침에 탐색을 하는데 웬 나무꾼을 하나 만났다는 거였다.

 

주민등록증을 보자고 하니 안가져 왔다고 해서 몸수색을 해 보니 도시락이 하나 있드란 거다. 마을로 내려가 신분을 확인하니 그 나무꾼의 신분은 확인이 되었는데 마을까지 내려가 고생한 강 병장이 열이 받쳐 도시락을 헌납하라고 하니 우물쭈물 하는 것을 그럼 주민증 미소지자로 입건을 한다고 중대 본부까지 동행하자고 하니 겁을 팍 먹고 도시락채 가져 가란걸 반찬만 가져 와서 중대장님 드리라고 올려 보냈다는 것이었다.

 

별것도 아니고 또 중대장을 생각하는 마음들이 기특하기도 해서 웃으며 점심을 먹고 강 병장을 불러 고맙게 잘 먹었지만 다시는 이런 일은 하지 말라고 했다.

 

숯을 굽던 가마에서 적의 체취를 맡은 군견이 신나게 추적을 하다 개울에서 냄새를 놓쳐 우왕좌왕 하고,......

 

적들은 특수교육을 받은 정예들이라 그 정도 군견에 잡힐 놈들이 아닌것같다.

 

산 능선을 따라 느긋하게 탐색을 지휘하며 행군하는데 건너편 산에 가을 아지랑이가 아른 그리고 산록이 매우 편편한데 그 하연에 콩을 말리는 콩삐까리 더미가 매우 큰 게 있었다. 또 그곳에 독립가옥도 한 채 있고 아주 대중가요에 나오는 전형적인 산골마을 풍경이었다.

 

중대선임하사에게

“야 저기 콩더미에 저격수 2명 은폐시키고 대원들은 산 정상부터 밀고 내려오면 노루 몇 마리 잡지 않겠나?” 하였더니

 

“중대장님 저긴 8중대 쎅타 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야 8중대고 뭐고 따분해 죽겠는데 어디선지 탐색하면 되고 누가 아니, 재수 좋아 저기서 공비하나 잡게 될지."

사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규정을 약간 어기더라도 공을 세우면 모든 게 묻히는 것을 중대장은 간파하고 있었다.

”점심 먹고 한번 해보자 책임은 내가 진다!” 라고 말하고 점심 먹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 콩삐까리 쪽에서 총소리가 “탕탕”하고 몇 발 나더니 무전기에서 8중대장의 카랑카랑 하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적 2명 발견 현재 교전 중, 적 1명 사살 아군 1명 전사!”

이 대위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각 소대장들이 번개같이 달려온다.

 

평소 “해병은 스스로 지휘 하에 들어 와야 한다!” 라고 교육시킨 보람이 오늘에야 나타났다. 예비군들도 덩달아, 중대장님 어떠할까요? 하고 묻는다.

 

이 대위는 고함을 쳤다. “야! 뭘 물어봐~ 총소리 나는 곳을 향해 선착순!” 하고 소리쳤다. 이 대위의 머리는 번개같이 돌아간다. 총소리가 끝나지 않고 상황이 끝나기 전에 내 부하가 한명이라도 도착해서 총 한방이라도 쏴야 우리도 공이 있다고 우길 수 있다.

 

총소리는 계속 나고, 바로 이 대위가 노루 잡자던 그 지점이었다.

“적 2명 확인사살 상황끝” 계속 총소리는 나는데 이미 상황종료 보고가 들어가고 또 접수됐다. 8중대장은 동기생인데 그도 월남전의 베테랑이다.

 

남에게 전과를 나누어줄 아량이 없는 모양이였다. 상황종료전에 내 중대가 가서 몇 발의 총이라도 쏴야 억지라도 써볼 텐데 다 틀렸다. 아주 김이 다 빠진다. 8중대장은 한술 더 떠서

 

“타 중대는 오인사격의 불상사가 우려되니 일절 접근하지 말란다.” 대대장도 안전사고 우려가 있다하니 접근치 말라고 엄명을 내리고............ 아! 적들이 10명만 됐어도 실탄이 모자란다고 아우성(당시 실탄 휴대량은 1인당 20발이었다)이 나면 우리중대가 당당하게 지원군으로 가고 전과는 우리가 최하 1/2는 차지했었을텐데......

 

사정은 이랬다.

 

비가 그치고 대원 둘이 독립가옥(콩더미 바로 뒤에 집이 하나 있었다,)에 가서 물을 길러오는데 웬 이상한 놈들이 이상한 옷을 입고 햇볕에 무얼 말리고 있더란다(알고 보니 인민군 장교 정복이였지만).

우리 애들이 누구냐 그냥 지나칠 리가 없지

 

“야! 너희들 누구냐 뭐하는 놈들이냐?” 인민군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않고(그 당시 작전지역에는 별 이상한 기관에서 별 이상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이 왕래했다. 우리 애들은 그 사람들을 매우 고깝게 생각들 하고 있었다. 이놈들도 그들 중 한 놈이라 생각하고) 완전히 시비조로 물었단다(물론 보고서엔 검문 수하를 철저히 했다고 보고 됐지만.). 했더니 그들도 당황해서

 

“어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가!” 하니 우리 애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들인가 턱도 없지,

 

“아무것도 아니긴 뭐가 아니야 여긴 우리 탐색지역이야! 야 너 이리 와봐” 했더니 콩더미 속으로 손을 쑥 넣더니 AK소총 한정을 확 꺼내 탕! 하고 쏘니 우리대원 한 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같이 있던 대원이 그냥 응사해서 그놈도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나머지 한 명과 교전이 벌어졌으니 시간이 오래 갈수가 있나, 근 20일 동안 고생고생만하고 귀대했다. 젖은 옷도 말리고 목욕도 하고 면도도 하고 좀 쉬기도 하고 대원들에게는 거의 행정시간을 줬다. 말하자면 자유시간이었다.

 

하루가 지난 후의 일이였다, 8중대는 야단들이 났다. 돼지고기를 삶고 막걸리 통이 왔다 갔다 하고 과자까지 청구를 하는데 8중대장놈 와서 맛 좀 보란 말 한 마디 없다.

 

나머지 중대장들이 대대장실로 몰려갔다.

 

“아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 같이 고생하다 어째 운이 좋아 8중대가 잡은 거지 뭐 우리가 잡기 싫어 안 잡았음니까?”

 

대대장 왈 “해병대가 그런 줄 이제 알았어? 사령부 명령으로 8중대 외는 누구도 먹거나 혜택을 봐서는 안된다. 해서, 나도 고기한 점 못 먹었다“

 

8중대만 먹이라고 엄명이 내렸다. 얼마가 왔는지 어디서 왔는지도 대대장은 모른다. 알 것도 없고, 다음에 기회가 오면 너희들이 잡어! 이상 그에 대한 질문은 하지마라!“

 

참 기가 막혀 말도 안나왔지만 어떻허나~ 최고 사령관의 명령인데.... 그분이 죽으라면 죽을 수도 있는 우리들인데......

 

8중대는 훈장내신을 한다, 신문기자가 온다, 방송기자가 온다, 포상휴가를 간다, 매일저녁 회식이다, 야단법석인데 다른 중대 특히 우리중대는 한 건물 병사를 둘로 나누어 반쪽은 8중대가 쓰고 나머지 반쪽은 9중대가가 쓰는데 그 고통과 치욕은 말할 수가 없었다.

 

이 대위는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기분이 씁쓸하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동기회에 가서 8중대장 하던 친구를 만나 그때일을 생각하면 기분이 묘하다.

 

해병대 참으로 무섭고 매몰 찬 조직이지만 지금은 그립고 정이 간다,

 

해병대여 영원하라!

'★해병대 장교 글 > 해간35기 숫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신과 분노  (0) 2015.01.07
후 회  (0) 2015.01.07
生과 死  (0) 2015.01.07
이병 김전식  (0) 2015.01.04
미 해병대의 전우애  (0) 2015.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