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장교 글/해간35기 숫탉

배신과 분노

머린코341(mc341) 2015. 1. 7. 17:26

배신과 분노

 

'69년 포병9중대장으로 발령이 났다.

 

지금까지 중대를 맡아 지휘를 안해본건 아니나 당시 계급이 중위 혹은 임시대위라서 경력에 들어가지도 않고 엄밀히 말해서 책임도 없는 어정쩡한 중대장 대리 였지만, 이젠 계급과 경력이 동부하고 정식으로 경력에 들어가는 (6개월을 이상없이 해야 앞으로의 군대 생활에 지장이 없다) 정식 중대장이다.

 

중대장은 국가의 인력과 재산을 최종적으로 책임을 지는 최종 출납관이다.

 

인계인수를 맡는데 전임자는 하늘같은 선배님이고 후임자는 이제 입대한지 4년이 채 안되는,

말하자면 옜날 같으면 중위 중에도 신참 중위다.

 

전임자도 이 점에서 기가 막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친절하게 하나하나 알뜰하게 인계해 준다.

 

제일 먼저 받는게 인원이다.

 

우선 숫자가 맞아야 하고 하나하나 특성과 특징을 인계한다.

 

당시 해병대에선 인계한지 일주일 이내에 나는 인사사고는 전임자의 책임이기도 하니 더욱 더 열심히 인계해준다.

 

장 상병이라는 대원이 있다.

 

일절 외출 외박 휴가를 보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왜냐고 물으니 암튼 그렇다는것이고 중대 선하에게 상세한 건 물어 보라고 한다.

 

인계인수, 점검, 확인 등을 하느라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중대 선하에게 장 상병에 대해 물었다.

 

머리를 설래설래 흔든다.

 

"말도 마세요. 그 새끼땜에 당한거 생각하면 이가 박박 갈립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 새끼 집이 여기서 가까운 흥해인데요. 그 새끼 장가도 갔고요, 마누라와 자식새끼도 한 놈 있어요"

 

"헌데?"

 

"이게 외박만 나가면 안들어 와요. 맨날 잡으러 갔어요"

 

"왜? 그런 애가 해병대엔 왜 들어 왔누?"

 

"글쎄요, 제 생각에는 집이 가까우니까 들어 온것 같아요"

 

"그~~래요? 이해가 안되네, 사고자인 모양이네?"

 

"몇 번 신고해서 영창도 갔다오고 해서 지 동기들 다 제대했는데 저놈만 남아서 빌빌대는거죠"

 

"야~~~그거 큰 골치로구나, 언제 제대하나?"

 

"아직 일년은 족히 남은것 같아요."

 

"햐~~~그럼 일 년 동안 외출 외박 휴가 몽땅 금지?"

 

"그래야지요...... 암튼 우린 할때까진 해 본 놈이예요"

 

참 난감하다.

 

한 울타리 안에 살면서 그놈 하나만......외톨이로......아직 일 년이나 남았다는데......

아예 군대 안가는 놈들도 많고 많은데......그래도 해병대에 지원 입대한 사람인데......

 

내 평소의 생각은 아무리 군대내에서 큰 죄(고의 흉악범은 제외하고 비록 전시 도망병이라 해도)를 지었다 해도 기피자 보단 가벼운 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또 한 달이 지났다.

 

휴일의 당직은 중대장들이 선다.

 

내 당직날 일요일이다. 모두들 외출 외박가고 중대내는 거의 텅 비다시피 한다.

 

난 크게 임무에 지장없는 한 외출 외박을 많이 시킨다. 돈이 없서 못가는 사람들이야 할 수 없지만,

난 일요일에는 일절 휴무하는게 내 지론이다.

 

교회가는 사람은 가고 안가는 사람은 작업을 시키는 무식한 장교들이 더러 있다.

 

이는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말도 안되는 일들이다. 공평하지 못한 처사다.

 

그래서 난 교회가는 사람은 가고 안가는 사람은 그 시간을 자유시간으로 준다.

 

슬슬 돌아보니 별일 없는 느긋한 일요일이다.

 

장 상병의 근황을 보니 매일 창고에 쳐박혀 자는둥 마는둥 하고 있고, 선임 고참이니 모든 과업에서 열외되여 아주 지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참으로 볼쌍하다. 지근의 거리에 물이 줄줄 흐르는 젊은 여자 마누라도 있고 토끼같은 아들도 있는 몸이......

짐승처럼 우리에 갇혀 쭈구리고 있다.

 

저럭하다 큰 사고나 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생긴다.

 

장 상병을 중대장실에 불렀다.

 

수척하고 세수도 몇 일이나 안했는지 지저분하다.

 

마주보니 할 말이 없다.

 

" 야 너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되였나."

 

"......"

 

"집에 가 보고 싶냐?"

 

" ......"

 

말 없이 눈물만 흘린다.

 

사람이 저항할수 없는 처지에선 눈물만큼 효과적인 수단이 없다.

 

어린 애를 업고 흥해에서 여기까지 면회도 올 수 없고, 또 너무 순박해서 무슨일이 생길까봐 면회는 오지 말라 한단다.

 

"난 새로 와서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른다......너 내가 전과를 묻지 않고 외박을 보내주면 틀림없이 정시 귀대를 하겠느냐?"

 

그 흐릿하던 눈에 갑자기 생기가 돈다. 내 앞으로 바짝 다가 앉으며...

"중대장님 정말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정말 목숨바쳐 충성하겠습니다."

 

"얍마~ 목숨까지 바칠 건 없고, 한번 생각해 보자, 너 내무생활 하는거 봐 가며"

 

2주가 지났다.

 

그동안 갑자기 생기가 나고 모든 일을 솔선 수범하고 해서 모두들 놀란다. 세수도 하고......

간부들과 상의를 해 본다.

 

"야~ 장 상병 저대로 놔 두다간 무슨 사고를 칠런지 겁 안나?"

 

"불쌍하지만 어쩝니까. 그럭저럭 세월가서 제대하면 그만이지요." 선하의 말이다.

 

"야~ 장 상병 저렇게 제대하면 해병대쪽으로 오줌도 안누겠다......"

 

"그렇다고 외출은 못 보냅니다. 중대장님 우릴 왜 나쁜놈들로 만들려고 하심니까.

우리도 별짓 다 해 봤읍니다."

 

"중대장님 장 상병에 대해성 신경 끄십시요."

 

난 성질이 참 이 세상에 맞지않게 태어났다.

 

강자가 나를 부당하게 억압하면 납짝 엎드려 지나갈때까지 기다리는게 아니다.

 

죽을 때까지 대항한다.

 

허나 약자가 고생하는걸 보면 도워주지 않고 못견딘다.

 

해서 식당엘 가도 잘 되고 줄로 선 곳은 가지않고 그 옆에 초라하게 서 있는 외로운 식당엘 가서 팔아준다.

 

그렇게 해서 거의 재미를 못보지만, 허지만 그게 내 성질이다.

 

관광지에 가도, 시장엘 가도, 몇 개 안되는 물건을 놓고 파는 늙은 할머니에게 가서 물건을 사서 더러는 낭패를 본다.

 

"야 그래도 인생이 불쌍하지 않나, 기집 자식을 지척에 두고......?"

 

"아 그거야 누가 모릅니까. 우리도 할 때까지 다 해 봤다니까요?" 중사의 말

이구동성으로 하사관들이 모두 고개를 흔든다.

 

소주를 한 병 놓고 장 상병이랑 마주 앉았다.

 

"야 너 똑바로 말해라. 내가 너를 3박4일 외박을 보내 줄려고 하는데 너 미귀 안 할 자신있어?

정상적으로 귀대만 해 준다면 주말마다 보내 줄 수도 있다."

 

"중대장님 만약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이 은혜는 죽을때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둘은 부둥겨 안고 울며 불며 소주 한병을 다 마시고,

"내가 너를 한번 믿어보마."

 

"예 틀림없이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둘은 철석같이 맹세를 했다.

 

다음날 외박증을 내주고 그를 외박을 보냈다.

 

전 장교, 전 하사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대장의 똥고집으로......

 

귀대 하는 날 10시가 되어도 그놈이 들어오지를 않는다.

 

미귀 걱정보다 중대 간부들 보기가 부끄럽다.

 

그렇게 말리는걸 무슨 큰 인심이나 쓴다고......고집 피우드니 잘 됐다.

 

이제 어쩔거냐? 하는 소리가 들려 오는 것 같다.

 

애숭이가 중대장을 하드니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느냐?

 

자 이제 어떻게 하는가 보자.

 

헌병대에 보고 하자고 하는걸 거부했다.

 

이새끼는 내가 잡아다가 아주 작살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인간을 이렇게 배반 할 수가 있나?

 

아~~~ 정말 울화가 치민다. 내가 세상에 태여나 이렇게 배신을 당해보긴 처음이다.

 

중대 간부들은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네가 저질렀으니 네가 책임지라는 식이다.

 

중대장실에 문 하사가 대원 하나를 데리고 들어왔다. 미귀자의 부서장도 아니다.

 

당시엔 미귀를 즉각 보고 하지 않으면 지휘관을 문책하던 시기였다.

 

문 하사는 나와 의기가 투합하는 사람이다.

 

몇 달 안 사귀었지만 통하는 사람은 통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중대장님, 제가 얘하고 둘이서 잡아오겠읍니다. 외박증 석 장만 만들어 주십시요."

 

"그래 계 집을 아냐?"

 

"예 계는 원래 제가 데리고 있었던 애입니다. 중대장님 걱정하시는거 보고 제가 나섰읍니다."

 

"그래 꼭 가서 잡아와라"

 

하며 차비를 안 받겠다는걸 억지로 줘서 보냈다.

 

다음날 그놈을 잡아 왔다.

 

어떻게 잡았느냐고 물으니 그놈집 마루밑에서 꼬박 하루를 잠복했다가 방에 들어가는것을 보고 들어가서 잡았다는 것이다.

 

"수고했다."


 

자 이녀석을 어케한다?

 

간부들은 볼 것 없다고 헌병대엘 보내자고 한다.

 

그냥 보낼순 없다.

 

또 마침 잡아온 문 하사가 제가 데리고 있겠다고도 하고.....

그게 문제가 아니다.

 

중대장과 사병의 약속이 아니었다.

 

남자 대 남자, 사나이 대 사나이, 인간 대 인간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깨고 나를 멸시하고......

생각하면 뱃속에서 뭔가가 부글부글 끓어 오른다.

 

오냐 오늘이 너 죽고 나 죽는 날이다.

 

해병학교에서 누누이 들어온 말,

 

'사병들을 감정으로 구타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말. 허나 이 감정은 억누를 수가 없다.

 

이쌔끼 죽이고 오늘 나 죽어야겠다.

 

창고로 데리고 들어갔다. 포병은 물건이 많아 창고가 크다. 약 40평 정도 된다.

 

더 물어볼 말이 없다.

 

양손을 하늘로 뻗게하여 결박하고 웃통을 벗기고 모두들 나가게 하고 창고 문을 잠궛다.

 

빳따로 때리면 뼈가 부러지겠으니 밧줄을 구해 아주 죽지 않을 정도로 패줫다.

 

저도 어이가 없는지 용서를 빌지도 않는다.

 

맞다가 못 견디겠으니 뭐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그게 그의 아들 이름이었다.

 

차마 더는 못 때리고 거기서 끝이 났다.

 

2~3일 후에 보안대 수사과에서 누가 나왔다.

 

"이 중대에 구타사건이 있다고 해서요"

 

"아~ 아주 싸가지 없는 놈이 있어서 중대장이 손 좀 봐 줬지"

 

"? 중대장님이 직접요?"

 

"그려 입건 할려면 해"

 

"아니요, 알았읍니다. 중대장님이 직접 때렸다는데 무슨 조사를 합니까"

 

그때만 해도 구타는 금했지만 지금 같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하니 장 상병에게 내가 한 일이 미안하기도 하다.

 

차라리 외출 외박을 제대할때까지 금하고 그냥 제대시킬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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