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사진/4대사령관 김성은

화보집 (6) - 국가 경영에 동참했던 국방장관시절(1963년 3월~1968년 2월) (1)

머린코341(mc341) 2015. 5. 24. 06:37

화보집 (6) - 국가 경영에 동참했던 국방장관시절(1963년 3월~1968년 2월) (1)

 

국방장관 임명장을 받고 있다(1963년 3월 16일). 좌측이 김현철 내각수반

 

국방장관 이취임식.(1963년 3월 18일) 단상에 앉은 이는 전임 박병권 국방장관. 뒤로 보이는 낡은 후암동 국방부 청사 모습이 오늘과 대비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국방장관 이취임식. 당시 국방부 직원은 600여명. 군 현역들이 많아 모자 쓰고 참가한 모습이 이채롭다.

 

취임식 후 전임 국방장관 박병권씨와 함께. 박 장관은 연세대학 출신의 엘리트로, 강직했고 원칙을 가지고 혁명정부의 국방부를 이끌었으나 박 의장의 군 원대복귀를 바라는 입장 때문에 일부 군인의 불만대상이 되기도 했다.

 

장관 취임 후 국립묘지 참배하고 방명록에 기록하고 있다. 우로부터 2번째가 필자

 

혁명정부 시절 국방장관인 나와 박정희 의장

 

장관 취임이후 첫 방문지였던 육군본부 초도순시에서 사열하고 있는 필자(1963년 3월 21일)

 

해병대 초도순시때 모인 군수뇌부(1963년 3월 21일). 앞줄 좌로부터 최용남(해군), 김계원(육군), 필자, 남상휘, 이영우, 박승도(해병대) 계급 생략

 

전군 비상지휘관 회의 이후 전군의 본격적 순시를 시작했다. 공군본부 순시(1963년 3월 28일). 좌로부터 장지량 장군(공군), 김계원 장군, 필자, 장성환 공군참모총장

 

당시 어려운 정국의 해법이 되었던 전군 비상지휘관 회의 후 기자 회견을 하는 필자. 좌측에서 2번째. 161명의 장군(별)들이 모여 구국의 결단을 한 이 회의는 결국 박정희 의장에게 정국을 풀어가는 자신감을 갖게 해 주었다.

 

 

국방장관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중앙청에 모인 각군 수뇌들(1963년 4월 10일). 취임 후 약 20여일이 지난 때였다. 앞줄 좌로부터 김장훈 해군소장(해사교장, 체신부장관 역임)은 학자같은 군인으로 존경을 받았다. 그 옆이 육군 김용배 장군, 김현철 내각수반, 박경원 장군(내무장관 역임), 필자, 한사람 건너 김영관 해군참모총장

 

신임 주한 유엔군 부사령관 콘웨이 중장의 방문을 받다(1963년 4월 4일).

 

미 공군참모총장 레메이 대장의 방문을 받고(1963년 4월 18일).

 

미 태평양지구 해병대사령관 로버트 대장의 방문(1963년 4월 24일).

 

박병권 전임 국방장관 훈장수여식(1963년 4월 20일)을 최고회의 의장실에서 가졌다. 이곳은 현재 중앙청 맞은편 미대사관 자리로 구 경제기획원이 있던 곳. 좌로부터 4번째 이주일 장군, 박병권 전임장관, 박정희 의장, 필자, 김종오 육군참모총장, 이맹기 해군참모총장, 장성환 공군참모총장, 강기천 해병대사령관, 이석재 총무처장관

 

5.16혁명 기념일을 기해 군수뇌부와 함께 국립묘지 참배(1963년 5월 16일).

 

미국정부로 부터 공로훈장을 받고 있는 필자. 훈장을 수여하는 사람은 멜로이 주한 유엔군 사령관(1963년 5월 18일)

 

청와대에서 국군 모범용사의 방문을 받고 있는 박 의장(1963년 5월 17일). 잔뜩 멋을 낸 한 여군이 정중한 모습으로 박 의장과 악수하고 있다. 맨 좌측이 필자, 내 옆의 뒷 줄이 이동원 의장 비서실장. 5.16혁명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의 일환으로 기억된다.

 

청와대 뜰에서 군 유공자들을 만나고 있는 박정희 의장(1963년 5월 17일). 맨 좌측이 김용배 장군, 현시학 해군소장(현봉학씨 동생), 박정희 의장, 필자, 장지량 공군장군, 최용남 해군소장

 

5.16혁명을 기념하기 위한 혁명정부 유공자 훈장수여식(1963년 5월 16일). 우로부터 2번째 조진만 대법원장, 한사람 건너 김현철 내각수반, 그 뒷줄 우측이 필자, 김현철 수반 한사람 건너 김윤근 장군, 한사람 건너 박정희 의장, 박원빈, 정세웅 해병대 대령, 좌끝이 채명신 장군.

 

 

출처 : 前 국방장관 김성은 화보집 '나의 잔이 넘치나이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