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들의 이야기

체인지 오케이??

머린코341(mc341) 2017. 10. 26. 12:59

체인지 오케이??


경남 진해시 청안동 김병철


경상도에서만 군대 포함 43년을 살았습니다. 또, 영어가 마이 나와도 양해 바라며 백퍼센트 실화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서기 1989년 2월 중순, 당시 저는 ‘오성장군’과도 안 바꾼다는 해병대 말년병장으로, 제대 석 달 정도 남겨두고 하루하루를 오로지 국가와 민족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노심초사, 전전긍긍, 결초보은, 환골탈퇴, 뭐 이정도로 대단히 걱정하며 사회적응이라는 명목 하에 여유로운 삶을 몸소 실천하고, 떨어지는 낙엽도 피해가며 ‘무적해병 제1상륙사단’에서 한미 합동훈련 일명 ‘팀스피릿 훈련’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때가 때 인지라 사단 내에는, 멀리 오키나와에서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세계 최강임을 자부하는 미 해병대가 더부살이하며 상주하였고, 따라서 우리 해병과 미 해병 간에는 묘한 경쟁 심리와 호기심, 동경, 등등의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저들의 수많은 여자해병들과 한 텐트에서 아무렇지 않게 같이 지낼 수 있는 상상도 못해본 현실과 경양식 전투식량, 각종 보급품의 우수성, 저들의 자유로움, 무엇보다 중독성이 뛰어난 미제 잡지책 등등에 대해 동경하면서도 틈만 나면 당시 대유행이었던 미 해병과 물물교환 작전인, 일명 “체인지 오케이?”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자손만대 기념비적인 자랑거리와 빛나는 추억을 만들어 보고자 그야말로 전전긍긍, 호시탐탐. 당시 분위기는 대충 이러했습니다.


순검(점호)이 끝나고 취침 시간 전, 엄숙한 킹해병(본인) 훈시 시간.


나 - “마~ 5중대에서는 씨래이션 한 박스와 태권도 도복 2벌하고 체인지 오케이 했고, 6중대는 야상끼리

       다섯 벌 바꾸고 뽀나쓰로 책도 얻었다 카던데, 우리소대는 체인지 실적이 우예 되노?”


근엄 하다못해 엄숙하기까지 한 물음에, 후임들 모두는 시선을 피하느라 분주 하였습니다. 저는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바꾸며 신의 음성 인양,


나 - “마, 개안타. 아직 훈련 끝날라 카만 시간이 마이 있다 아이가.

       생활영어나 한두 번 공부하고 내일을 준비하자.”


킹해병인 저의 훈시가 끝나면 청룡 상병으로서 소대 기강병인 강해병이 벌떡 일어나 “제가 선창 하겠습니다! 하~이!” 일동 입을 모아서 부드럽게 “하~아이!”


강해병 - “체인지 오케이?”

일동 - “체인지 오케이?”

강해병 - “끝을 올려야 물어보는 말이 됩니다. 다시 한번 더 하겠습니다. 체 인지 오케이?”

일동 - “체인지 오케이?!”


대충 이런 분위기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음날 벌어질 엄청난 행운은 아무도 생각지 못한 채 우리소대원들은 억지 춘향인 생활 영어를 서너 번 더 외치고 하루를 정리 해야만 했습니다.


운명의 다음날 오후, “쥬아~~앙!” (중국 큰 양철징소리로 효과)


우리는 중대구보를 쌀쌀한 날씨가 무안하게, 땀이 흠뻑 젖도록 사단 일주도로를 구보하고 있었습니다.


미군들이 길가에 코스모스 마냥 환호하며 모여듭니다. 그들은 우리 해병의 구보를 ‘마이클 잭슨의 문 워크’를 라이브로 보듯 경이롭게 구경합니다.


왜냐면 우리해병은 한국해병특유의 헝그리 정신으로, 저들 ‘당나라 군대’처럼 보이는 미 해병들에게 뭔가 보여주려고 평소 보다 더 많이 뛰고 목소리도 최대한 세게 내뱉어서 쇳소리가 카랑카랑하게.


‘적의 목젖을 기합만으로 뚫어야 한다.’는 해병대 전통이 어디 가겠습니까! 군가를 부르거나 “번호 맞춰 가!” 할 때는 이병은 허리를 뒤에서 앞으로 90도로 쑥이며 악을 토해내듯 뱉어내고, 일병은 45도로, 상병은 15도로 쑥이며 악쓰고 구보하니, 마치 360년 정도 잘 훈련된 무용단들의 화려한 군무를 보는 듯 경탄해 했습니다.


오죽하면 모든 미군들이 달려와 감탄하며, 사진 찍고 신기해하며 구경을 했겠습니까?


미 해병은 단체 구보가 없고 개인이 간편한 복장으로 주간 몇 킬로미터의 의무 ‘조깅 기록 카드’가 있더군요.


하여튼 독수리가 먹이를 일순 낚아채듯, 도끼가 마른 장작을 단숨에 쪼개 가듯, 공격적으로 중대구보 하던 중, 저는 뭔가에 홀린 듯 온몸에 전율을 느끼며, 대열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었던 그 무엇을 보게 된,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쥬아~~앙!” “쥬아~~앙!” “쥬아~~앙!”


‘영혼의 울림’ 이란 것이 이런 것 이었을까요? 제 앞에는 영화‘스타워즈’에서 우주 여왕 역을 막 마치고 분장도 지우지 않은 채 오키나와 미 해병 연대 소방차 보직을 수행 중 인 듯 빨간 소방차위에 서서 은박지로 제조 한 듯한 원피스 군복이 눈부신 롱 다리에 영어 참 잘~하게 생긴 금발의 백인 여성으로 리챠드 기어와 ‘귀여운 여인’에서 열연한 ‘쥴리아 로버츠’ 이복동생쯤으로 보이는 수려한 외모의 미 해병 여성 대원이 저를 보며 웃고 있습니다.


당시 수많은 미 여군들을 봐 왔지만 대개는 풍채가 듬직하다고 할까요? 양희은 누님이 만약 그 틈에 끼시면 좀 작은 편이다, 싶을 정도의 저변이었는데 그녀는 과연 ‘군계일학!’ ‘삼팔광땡!’ 이라 할 수 있는 착하디착한 몸매와 미모의 소유자였습니다.


‘아! 이런 미군도 있구나!’ 하고 감상에 젖어있던 제게, 어느 틈인가 그녀가 폴짝 다가와 “하~이” 하고 말을 걸더군요.


순간 저는 숨이 멈출 듯하였으나 ‘의연하라’는 조상님의 목소리가 들렸던 듯, 침착하게 말을 받았습니다.


나 - “.... 하이~! 나이쓰 밋츄! 앤 유우?”


이럴 수가! ‘내가 미국말을 하다니’ 그것도 군대에서 인형 같은 미국여자와. ‘뭔 일이 이런 일이 다 있노?’ 혼자 놀라고 있는데 그녀가 본토발음으로 뭐라 뭐라 하는데 정말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맹세 하는데, 다 알아 듣겠더라구요. 간단한 단어, 표정, 몸짓 등을 총 조합하여 마치 통역이 소곤소곤 들려주는 듯 했습니다.


천사 같은 그녀가 춤을 추듯, 이런 말을 하는 듯 보였습니다.


쥴리아 - “너 네들 정말 멋지다. 사진 한번 찍자! 고향 가서 친구들한테 자랑 하게.”


이래저래 ‘촌놈, 장에 구경 나온 듯이’ 쥴리아와 어색한 포즈를 취하다가, 벼락 치듯 뇌리에 박히는 생각이 있었으니 그것은 ‘체인지 오케이?’ ‘그래, 챤스는 바로 기회다! 오늘 드디어 군대생활 추억의 정점을 가차 없이 찍으리라’


나 - “헤이! 쥴리아! 체인지 오케이?”

쥴리아 - “나도 그러고 싶은데, 지금은 가진 게 없어. 보다시피 원피스 군복 뿐이라서 벗어 줄 수 도 없고, 자기도 가진 게 없어 보이는데, 자기는 뭘 교환 하고 싶어?”


아, 그러고 보니 저 역시 티셔츠 하나에 바지 워커, 뭐하나 바꿀게 없더군요. 오래 생각 하고 있으면 사진 다 찍은 쥴리아가 굿바이 하며 갈 것만 같아 급하게,


나 - “플리즈 돈 고오! 체인지 오케이? 마이, 음, 마이 워카, 쎄무워카, 슈 즈 체인지”

쥴리아 - “호호호 맨발로 갈려고? 자기나 나나 기념으로 바꿀 만한 게 없으니, 아쉽지만 동료들에게 어서 뛰어 가봐! 다들 기다릴 것 같은 데...”

나 - “노노노! 아이엠 베리 비지! 쥴리아. 음, 마이 런닝티셔츠 체인지, 체인 지 플리즈~”


얼떨결에 순서가 그래서 셔츠를 불러 본건데, 오~ 동요하는 쥴리아. 그럴 만도 한 것이 제가 입고 있는 육즙이 흥건한 티셔츠. 충분히 통하는 아이템이었습니다.


왼쪽 가슴엔 해병대 앵커 위로 알오케이엠씨, 등 뒤가 압권이었는데 큰 해골바가지 한쪽 눈으로 들어가 또 다른 쪽 눈으로, 뱀인지 용인지가 꿈틀대며 포효하고 있으며, 해골 양쪽 턱 아래서는 독수리 날개와 박쥐 날개가 양쪽에서 펄럭이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미군들이 몸에 가장 많이 그려 넣고, 자랑질 하고 싶어 하는, 한글보다 열배, 영어보다는 오천배 정도로 “뻑” 이 간다는 ‘한문’으로, 挑戰(도전)이란 글이 땀에 베여 선명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쥴리아의 눈가에서 가지고 싶다는 욕심을 단번에 읽어낸 저는, 훌렁 셔츠를 벗어 앞뒤로 돌려가며 상품 설명에 돌입 하였습니다.


나 - “마이 난닝구. 아~ 마.마이 런닝 티셔츠 체인지 오케이? 디쓰 이즈(도 전을 가리키며)‘체인지’ 유노? 체인지, 체인지오케이? 나우”


‘플리쓰’로 메달리던 제가 ‘나우’로 대담 하게 상품설명까지 일사천리로 해대니, 그녀의 파란 동공이 한번 흔들린다 싶더니 기어코,


쥴리아 - “오케이! 그것 탐나는데... 그런데 난 뭘 줘야 돼? 그것 그냥주면 안 돼? 설마 내 속옷을 달라는 건 아니지? 자기야~ 오빠아~ 그냥 그것 나 주세욥~”


‘오케이?!’ 저는 하마터면 울 뻔 했습니다. 여유를 되찾은 제가 그녀 주위를 돌아보니 정말 달라고 할 만한 게 없어보였습니다. 그래서 딴엔 영어유머라고 불쑥 뱉은 말이,


나 - “유.. 앤드.. 미. 원 허그 체인지 오케이?”


앗!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쥴리아가 재빠르게 안겨왔습니다. ‘아~~~~!’

좋았느냐고요? 노! 후회 했습니다. “맙소사! 머시 이래 쉽노?”


‘지금의 쥴리아는 포옹보다 더 한걸 요구해도 들어 줄 건데, 너무 경솔 했다’며 그녀 품에 안겨 자책하다가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응이 이국적일 수 있음을 간과했다. 밑져야 본전인데 한 번 더 튕겨보자’


나 - “쥬, 쥴리아 원 허그 앤드, 앤드 원 키쓰. 노노. 쓰리. 노 텐, 텐! 텐 키 쓰 체인지 오케이? 원 허그 앤드, 텐 키쓰 체인지 오케이?”


키쓰를 열 번 이나 더해줘야 한다는 말에 많이 당혹해하더군요. 이미 포옹도 한번 상태인지라 갈등 고뇌 같은 수많은 상념들로 그녀는 부담을 느끼는 듯 보였습니다.


하여 제가 적으나마 고통을 덜어주고자, 그녀의 붉게 상기된 볼 을 손가락으로 콕 집어 가리키며


나 - “디쓰 언더 텐 키쓰! 낫 맆에 키쓰, 텐 카운터, 앤드 마이 티샤츠 체인 지 오케이?”


입술에 키쓰 하지 않는 조건을 제시한 저를, 지금도 저조차 유능한 협상가로 ‘타고났다’고 경탄해 마지않습니다.


숨죽이며 쥴리아의 반응을 살피던 제게, 마음속 깊은 곳 선생님이 나타나 이렇게 나지막이 속삭였습니다.


‘내는 남자다! 이런 거는 남자가 리드해야 한다! 뽀뽀 하잔 다꼬 덜렁하는 여자는, 미국 아니라 불란서에서도 없다. 이래까지 댔는데, 어슬푸게 물러나만 조상 뵐 면목이 서갠나? 터프하게 고마 쎄리 뽈때기에 다가 날리뿌라! 대한 남아의 기상을 전광석화 같이.’


스스로에게 대답 하고 말 것도 없이, 쥴리아의 대답도 없이, 저는 이미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고 저를 많이 닮았다는 ‘크린트 이스트우드’의 터프가이 키스 씬 을 떠올리며, 이마에 “원!” 두 눈 언저리에 “투!” “쓰리!” 버선코끝을 영판 닮은 콧잔등에 “포!” 머리를 조심스레 넘기며 양 볼에 “퐈이브...!” “식스...!” 오른손 “세븐...!” 왼손에 “에잇!” 그리고는 쥴리아의 표정을 찬찬히 정찰하였습니다.


아~! 그녀가 빙그레 웃고 있었습니다. 거래의 ‘대성공’을 인정 한 것 일 테지요.


이미 제 머릿속에는 중국 양철 징 수백개가 엠60기관총 난사 하는 것처럼 굉음을 울려대고 있었고, 금빛 봉황수천마리가 이리저리 창공을 활강하며 이렇게 노래 부르는 듯 했습니다.


“장하고 장하도다! 대한의 아들! 한국해병대 청룡병장! 고향 마을에 큰 기념비를 세우고 3년을 잔치하고 노래 부르리~ 울 아부지 아들,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지배 하도다~”


주위에 몰려들어 우리의 흥정을 구경하던 다수의 미군 ‘갤러리’들도 박수를 치며 신이 나서 같이 카운트를 해대다가, 두 번의 남은 키스를 종용 하는 것 이었습니다.


욕심 같아선 쥴리아의 입술에 도전해 볼까 싶었지만 양심이 살아있는 소심한 나의 가슴이 극구 만류하는 바람에 아까 도장 찍은 곳이긴 해도 여전히 아리따운 오른쪽 볼에 “나인!” 그리고 왼쪽으로 옮기다 말고, 나를 이끌어준 마음속 선생님의 말씀이 또 들렸습니다.


‘내 평생 두 번 오지 않는 기회다! 후회 없이 네가 하고 싶은 대로해도, 내는 이해하고 용서하리라’


전 참 좋은 선생님을 모신 것 같습니다. ‘신이시여 정녕 오늘 역사를 쓰란 말입니까? 가책이 생기면 말뚝이라도 박겠습니다.’


나 - “쥴리아! 아이엠 쏘 해피, 메모리얼 투데이! 유아 뷰티풀, 원더풀, 액 설런트, 굿럭, 굿바이 마이 프랜드. 라스트 피니쉬! .......텐!”


시간이 멈춘 듯 했고 숨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쥴리아의 양 볼을 아기들 약먹이 듯 감싸고, 뭔가를 감지한 듯 두 눈을 감고서 라스트 카운트를 기다리는 쥴리아의 입술, 그 입술에 대한남아의 기상을 듬뿍 담아 찐하게 오랫동안 전달하였습니다.


돌아서는 모습에 감동을 더해야 함을 느끼고, 뒤돌아 나르듯 뛰어가는 나의 어깨위로, 그리고 ‘체인지 오케이’를 성공시킨 마이 티셔츠를 두 손에 꼭 쥔 쥴리아의 상기된 입술위로 석양의 노을빛이 오랫동안 비추었습니다.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노을빛은 여전하며, 내 마음이 그러하듯 쥴리아의 마음속에도 소중하고 행복했던 추억으로 여전히 비추이길 기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