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들의 이야기

나를 창피함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백령도의 지뢰매설 사건...

머린코341(mc341) 2017. 10. 28. 07:59

나를 창피함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백령도의 지뢰매설 사건...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3가. 이기훈


때는 바야흐로 2006년 겨울, 서해 최북단 백령도에는 차가운 바닷바람과 중국과 시베리아에서 몰려오는 한겨울 북동풍으로 인해 그야말로 남극의 추위를 방불케 하는 추위였습니다.


백령도는 인천에서 부터 200km 평양에서부터는 100여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그야말로 북한이 더 가까운 서해의 고도이자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곳을 지키는 군인들은 그야말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부대라고 용맹을 떨치는 해병대가 주둔하며 백령도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에 해병대는 실전적인 훈련을 위해 각 중대별 전술 훈련 평가를 매우 강도 있게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술훈련이 2006년 추운겨울 2월에 실시되었고 저는 그 당시 중대 전술훈련의 점수를 평가하는 통제관의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통제관은 보통 공격통제관과 방어 통제관으로 구성이 되는데 이 통제관들은 전술훈련 평가를 받는 중대를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 다니며 그들의 점수를 매기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중대원들의 전술적 행동, 휴식간의 전장 군기 등을 일일이 평가하게 되니 그야말로 중대원들에게 통제관의 눈초리는 그 어떤 상관의 눈빛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됩니다.


저는 방어통제관을 맡아서 모 중대를 따라다니며 평가를 했습니다.


하지만 방어 통제관은 공격이 올 때까지 추위와 싸우며 기다리는 중대원들과 함께 참호 속에서 추위에 견뎌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방어 통제관들은 항상 주머니에 초콜릿이나 사탕 등 열량을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을 준비했다가 몸이 추워지면 하나씩 꺼내먹기도 합니다.


흐흐흐. 그래서 전 이번에 본격적인 추위에 대비하기 위해 일명 깔깔이라고 불리우는 방한내피를 상,하의 다 입고 거기에 두둑하게 방한복까지 챙겨 입고 통제관에 나섰습니다.


또한 지난번 미군과 연합 훈련할 때 얻은 미군 전투식량 중 고칼로리 초콜릿을 주머니에 넣으니 어떤 추위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두 시간 산속에서 추위를 견디며 있는데 문득 공격 중대가 새벽 여명공격을 할 것이라는 첩보를 듣고 방어중대는 신속히 방어진지를 편성했습니다.


혹시나 저도 나 때문에 방어진지가 발각되지 않기 위해 중대원들과 함께 몸을 웅크리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오늘의 이 추위를 막아줄 것으로 믿었던 그 미군 초콜릿이 내 뱃속에서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황급히 봉지를 보니 유통기한이 지나 있었습니다. 또한 추위에 대한 과도한 걱정으로 이것저것 엄청나게 먹은 지난밤의 음식들에 갑자기 단것을 많이 섭취한 장이 배설운동을 하고 싶어 하는 신호였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첩첩 산중에 눈까지 하얗게 내려, 일을 보다가 발을 잘 못 헛디디면 섬이다 보니 바다로 떨어질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배탈 나 보신 분은 아시겠지요. 잠깐 바지내릴 공간만 있으면 어서 밀어내기 한판 시작하고 싶은 심정을......, 게다가 더욱 곤란한건 일명 뒤처리를 할 휴지가 내 주머니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불현듯 스친 종이가 생각났으니 바로 미군 초콜릿 포장지. 황색 갱지로 속은 비닐로 코팅이 되어있으나 겉은 갱지 상태 그대로였던 그 종이. 난 서둘러 주머니를 뒤져 종이를 찾았고, 주변 중대원들이 눈치 채지 못할 용변장소를 빠르게 탐색했습니다.


현 시각 새벽 5시, 겨울이라 아직 해가 뜨기에는 일렀기에 난 어둠에 몸을 감추고 일을 해결할 곳을 찾아 나섰습니다.


하지만 방어 진지 뒤에는 1차 방어진지가 뚫렸을 때 후속방어를 할 중대원들이 진을 치고 있어서 난 방어진지 앞쪽의 장소를 물색했습니다. 내가 자리를 뜨자 중대장이 갑자기,


중대장 - “통제관님 어디 가십니까? 곧 공격중대가 오기 때문에 통제관님이 움직이시면 우리 위치가 노출 됩니다.”

나 - “음, 중대장 그래 일리 있는 이야기야. 하지만 난 공격 방향에서 귀관 들이 방어진지를 잘 편성했는지, 사격을 위한 나무 잔가지 정리는 해 두었는지 등, 공격자의 입장에서 여러분들의 방어진지 편성을 평가를 좀 하려고 하는데, 이의 있나?”


하면서 난 나를 잡으면 너희 중대 점수를 까버리겠다는 엄중한 눈빛을 중대장에게 보냈습니다. 그러자 중대장은 그 눈치를 알았는지 흠칫 놀라며


중대장 - “아 예, 그런 것도 중요한 요소지요. 눈길이 위험하니 조심하시고 예상 공격시간이 20분 남았으니 그전에 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나 - “음, 그래 중대장. 내 그렇게 하지.”


그렇게 말을 점잖게 하긴 했지만 이미 난 뱃속의 전투로 인해 이성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마치 포수에게 쫓기는 늑대가 숨을 곳을 찾는 것처럼 난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고 자리를 찾았습니다.


비록 초콜릿 봉지였지만 이제 휴지도 준비 되었겠다. 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일을 보려는 찰나! 옷을 너무 많이 입고 왔다는 사실을 후회했습니다.


속은 급하고 방한복에 단추는 왜 이리 많은지 하나하나 옷을 풀고 하의를 내렸습니다. 아뿔싸! 그런데 한 커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깔깔이 하의가 두껍게 나를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난 정신없이 방한복을 주변 나무에 걸고 두꺼운 깔깔이도 벗어 나무에 건 뒤 드디어 바지를 내리고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시계를 보니 중대장이 말한 20분의 시간 중 벌써 10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이놈의 배는 뭘 그리 많이 먹었는지 정신없이 밀어내기 운동을 하는데도 멈출 줄을 몰랐습니다.


거의 폭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난 조용한 적막을 깨고 그 자리에서 안간힘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유통기한 지난 초콜릿은 아직도 안 나왔는지 계속 배가 사르르 하며 내 다리를 붙잡았습니다.


결국 20분이 흘렀고 난 마지막 안간힘을 주며 엄청난 폭음과 초콜릿이 만들어낸 배속의 개스를 내보내며 드디어 편안해짐을 느꼈습니다.


세상을 다가진 미소를 지으며 이제 이 자리만 뜨면 되겠구나 싶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갑자기 들려온 소리.


해병 -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라는 소리와 함께 하얀 설상복으로 위장을 한 한 해병대원이 저 멀리 어둠속에서 나타나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난 통제관 체면에 바지를 내리고 앉아있는 모습이 너무 창피했습니다. 그래서


나 - “음, 통제관이야. 공격 중대인가? 거기서 멈추어 서서 대답해. 그런데 아니 공격시간이 아닌 것 같은데 시간을 어긴 것인가? 그건 큰 감점 요소인데?”


라고 말하자, 그 해병은 감점이라는 소리에 흠칫 놀라


해병 - “아닙니다, 통제관님. 전 공격 선견부대로서 정찰을 하기 위해 미리 온 것입니다. 이쪽에서 모의 수류탄 폭발하는 소리가 나길래 정찰을 온 것입니다.”

나 - “그래? 그럼 이쪽에 방어진지가 있는 걸 어떻게 알았지? 이거 페어플 레이에 어긋나는데 혹시 미리 여기서 기다렸다가 방어진지 편성한 걸 미리 본건 아닌가? 이거 완전 감점요소가 너무 많은데?”


그 해병은 통제관의 감점소리가 너무 두려웠는지


해병 - “아...아.. 아닙니다. 정말 수류탄 소리 때문입니다. 정말 정찰하러 온 것입니다.”


그래서 난 더욱더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나 - “그래, 정말이야? 그렇다면 공격 통제관을 좀 봐야겠으니 가서 공격 통 제관을 이리로 좀 데려오게”

해병 - “알겠습니다. 필승!”


그렇게 해병은 자리를 떠났고 난 황급히 옷을 챙겨 입고 방어진지로 복귀했습니다.


중대장 - “시간이 10분이나 늦으셨는데, 미끄러져서 다치시지는 않았나, 걱 정했습니다. 그런데 공격중대의 움직임이 아직 없습니다.”

나 - “그래? 눈이 많아서 이동이 좀 늦나 보지, 기다려 보자고.”

중대장 - “알겠습니다. 아! 옵니다!”


중대장의 말에 중대원들은 모두 몸을 숙이고 침묵을 지키며 공격중대의 소리 하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귀울였습니다.


어둠속에서 전투를 할 때는 청각에 의한 방향을 찾아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에 전 중대원들을 침묵을 지키며 공격중대의 발자국 소리에 귀를 귀울였습니다.


그때 공격중대에서 한 해병이 소리 쳤습니다.


해병2 - “중대장님 지뢰를 밞았습니다! 어떤 놈이 여기다 일을 보았습니다!”

공격 중대장 - “이런! 방어중대 전장군기가 엉망이구만 한심한 놈들! 자기들의 위치를 노출 시키다니.”


아뿔싸! 난 너무 급한 마음에 눈으로 대충 그것을 덮고 나왔는데......, 갓 나온 그것의 뜨거운 열기로 인해 그 위의 눈이 녹아 노출이 되 버리고 만 것입니다.


 난 너무 당황스럽고 민망한 마음에 제발 그 정찰대가 방어 통제관이 거기에 있었노라고 말하지 않기만을 바랬습니다.


그러나 곧 들리는 그들의 웅성거림, “뭐? 방어통제관이 거기에 있었다고? 큭큭큭.. 킥킥킥”


공격 중대원들은 순식간에 킥킥 거렸고 공격중대의 발소리를 들으려던 방어중대원들도 분명 어둠속에서 그 소리를 듣고 킥킥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난 식은땀이 흘렀고,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난 머쓱해 하며 “그래 이놈들아! 나도 사람이다.” 라고 허허하고 웃었지만, 난 그이후로 해병들의 입방에 오르내리며 일명 ‘지뢰매설 전문 통제관’ 으로 불리며 백령도에서의 군 생활을 지내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말 그 소리가 연습용 수류탄 소리와 비슷했을까 하는 의문과 설상복을 입고 있던 정찰대원이 혹시 처음부터 나를 적외선 망원경으로 지켜보고 있었지만 통제관임을 알고 일부러 못 본 척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창피함이 오늘 따라 창밖 산에 쌓인 눈을 보니 생각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