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들의 이야기

길고긴 면회와 어머니의 생존법

머린코341(mc341) 2017. 10. 31. 07:34

길고긴 면회와 어머니의 생존법


- 충북 청원군 오창읍 각리 김재민


휴가도 좋고 외박도 좋고 외출도 좋지만 부모님의 면회가 그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 다들 아실 겁니다.


제가 근무한 곳은 서해 최북단 백령도 배만 뜨지 않았다 하면 완전히 고립되는 곳, 바로 백령도입니다. 그리고 그 고립 속에서도 생존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저에게 알려 주셨던 저의 어머님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려 드릴까 합니다.


참고로 백령도는 외출은 있지만 외박은 없고 누군가가 면회를 오면 면회기간이 무려 2박3일 동안 주어지는 좋은 곳입니다.


10년 전의 어느 날, 어머니께서 부대로 전화를 하셔서 ‘백령도로 면회 오신다.’ 라는 말에 맘이 들떠 있었습니다. 참고로 저의 형님과 친구들은 면회 온다고 했던 날이면 날씨로 인해 모두 발길을 돌려야 했거든요.


사실 전 그래서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오시는 날, 하늘은 맑고 바다도 아주 잔잔했습니다. 드디어 저에게도 첫 면회객이 오는 그런 황금 같은 날이 온 겁니다. 그것도 어머니가 말이죠.


제 기억에 의하면 그날은 바로 호주 시드니올림픽에서 강초연 선수가 사격에서 금메달을 따는 날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오전배를 타셨기 때문에 저는 점심시간 전에 옷을 A급으로 갈아입고 용기포(배 닿는 곳)에 가서 어머니를 맞이했습니다.


나 - “어머니~!”

엄마 - “그래 아들. 그런데 머리가 어질어질 하다. 배를 무려 4시간 가까이 탔더니 멀미가 날 것 같은데, 그래도 우리 막내아들 보니까 넘 좋 다.”


그렇게 어머니는 막내아들은 잘 둔 덕에 평생 한번 와볼까 한 백령도에 발을 내려 놓으셨습니다. 그것도 2박 3일 인줄만 알았던 면회가 무려 7박8일 될 줄은 그 순간 까지도 아무도 모른 체 말이죠.


나 - “어머니! 백령도에는 택시도 없어. 그렇다고 시내버스도 없어. 마을 버 스는 있는데 어디서 타는 줄 모르겠고 관광택시가 몇 대 있다고 하는 데 좀 많이 비싸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니까 어머닌 지금부터 백령도 해병이 되는 겁니다. 군차가 지나갈 때마다 경례를 하고 있으면 목적 지가 같은 곳이면 태워주거든요.”


어머니는 멍하게 저를 보시고는


어머니 - “뭐 이런 동네가 다 있냐?”


하지만 저는 군대 짬밥을 먹는 동안 백령도에서 개인적으로 이동할 때 그런 노련미가 생겼기에 별걱정은 없었습니다.


첫날 우선 관광을 하기 전에 제가 근무하던 중대로 가서 중대장님께 어머니를 소개시켜 드렸습니다.


중대장 - “어머니, 잘 오셨습니다. 막내아들 덕분에 어머니는 발 뻗고 편히 주무실 수 있는 겁니다. 오신 김에 재미있게 백령도 구경하시고 2 박 3일 동안 편히 쉬다 가시고, 오늘은 아들이 평소에 먹는 맛있 는 군대 짬밥도 함 드셔보시고 가시지요.”


그렇게 중대장님의 배려로 타이밍에 맞게 저희는 주계로 가서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날 정말 성의 없고 맛없는 반찬이 나오는 날이었던 겁니다.


밀가루도 안 묻히고 돼지고기를 그냥 썰은 채로 튀겨버린 탕수육 몇 조각과 달랑 4장 들어있는 맛없는 김, 그리고 깡통에서 꺼낸 김치. 하필이면 어머니가 오신 날 이런 반찬이라니......,


어머니 - “해병대가 가난하다고는 이야기 들어 알고 있었는데, 아무리 가난 해도 반찬은 맛있는 걸 해 줘야지.”


그렇게 신경 쓰고 계시던 와중에 다행이도 중대 선임하사님이 그걸 보시고 바로 간부식당으로 어머니를 모셔주셔서 그날 한 끼 식사는 어머니 덕에 간부식으로 때울 수 있었습니다.


부대구경을 마치고 심청이가 빠져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임당수가 눈앞에 보이는 심청각도 가보고, 배타고 백령도 관광도 하고 세계에 두 곳 밖에 없는 천연 자연 비행장도 구경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생각지도 못했던 소식을 뉴스를 통해 들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태풍이 서해로 올라오고 있다.’ 라는 사실. 그래서 조금 걱정이 되었습니다.


‘분명 태풍이면 배가 며칠간 못 뜰텐데......, 그러면 엄마는 며칠 동안 이곳 백령도에 고립되셔야 되는 거고, 만약 오후배로 엄마가 가시면 나도 하루 일찍 복귀를 해야 하고.’ 그래서 결정한건 그래도 태풍이 아직 온건 아니니까 다음날 아침배로 어머니가 가시는 걸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일은 터지고 만 것입니다.


태풍의 속도가 빨라서 서해상을 타고 중국 쪽으로 빠져나가는 데만 최소 3~4일이 걸린다고 하는 겁니다. 결론은 다음날 아침배가 못 뜬거죠.


어머니는 안절부절 못한 체 집에서 돈을 송금해야 되는 상황이셨고,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게 중대장님이,


중대장 - “지금 특별한 훈련도 없고 태풍으로 인해 휴가자도 없으니까, 걱정 하지 말고 어머니 가실 때까지 면회외박을 인정한다.”


사실 전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어머니는 옆에 계시지 그 덕에 부대는 복귀를 안 해도 되지. 기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태풍으로 인해 밖에는 바람도 불고 비는 많지는 않았지만 잔잔하게 내려서 다른 곳 관광도 힘들었습니다.


전 정말 하루 종일 잠만 잤습니다. 이런 기회가 또 오랴 라는 심정으로 잠만 잤습니다.


면회 4일째 되던 날 낮잠 자다가 중간에 일어났는데 어머니가 보이시질 않는 겁니다.


나 - (속으로) “어디 가셨지? 화장실 가셨나?”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어머니가 보이시질 않는 겁니다.


그러다가 저녁이 다 되어서야 어머니가 숙소로 들어오신 겁니다.


너무도 걱정에 화가 난 저는


나 - “엄마! 어디 갔다 오신거예요? 한참 찾았잖아요. 비도 오는데 어디 갔다 오셨어요?”

어머니 - “그게 하도 따분해서 잠깐 밖에 나갔는데, 요 앞에 텃밭에 몇 분이 서 우비를 쓰시고 일을 하고 계시더라구. 그래서 좀 도와 드렸더니 수고비로 3만원을 주시더라구. 그리고 만약 내일도 배가 안 뜨 면 내일도 하루만 더 도와 달라고 하더라구. 비가 와서 일손을 구 하기가 힘들데.”


시골에서 조금만한 농사를 짓기는 하시지만 여기까지 와서 일을 하실 줄이야? 기가 막히고 놀랐지만 어머니 딴에는 따분하게 방안에만 있을 바에는 저렇게라도 활동하시는 게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다음날도 배가 뜨지 않았고 저도 어머니를 따라서 잔비를 맞으며 저는 나라를 지킨 것이 아니라 텃밭에서 삽질을 했고 어머니는 면회객이 아닌 백령 주민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루 더 일을 도와 드렸고 다음 날은 일을 도와드린 집에서 고맙다고 이것도 인연이라고 집으로 초대해서 저녁 만찬까지 준비해 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과연 대한민국 4천5백만 국민 중에 아들 면회 가서 수고비까지 받으면서 일용직 일을 했는데 고맙다고 저녁식사 초대까지 받아본 분 있으시면 나오라고 해 보세요.


제 생각으로 저의 어머니가 처음이자 마지막 일꺼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다음날은 다행인건지 불행인건지 어머니는 백령도의 유명한 까나리 액젓을 한통 사셔서 오후배를 타고 집으로 가시면서 절대로 잊을 수 없던 7박 8일의 백령도 여행을 마치셨습니다.


대한민국의 군인을 둔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여자친구, 애인, 부인, 자녀분들 면회들 자주 가세요. 그 군인들은 평생 기억에 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