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740기 김동훈

실무생활-12 털에 대한 고민.

머린코341(mc341) 2019. 10. 7. 10:03

실무생활-12


털에 대한 고민.


3박4일의 휴가는 주마등 처럼 빨리 스쳐지나갔다.


이틀 동안 집밥으로 사육당하고 저녁이면 친구들에게 술로 사육을 당했다.


이틀을 고향에서 보내고 하루는 대구로 간만에 만난 학번 동기들과 선배들과 어우러져 정말 미친듯이 마시고 놀았다.


선배의 자취방에서 만취로 하룻밤을 자고 아침에 정신을 차려보니 복귀 라는 산 같은 존재가 기다리고 있었다. 18시까지 복귀다.


벌써 해가 중천에 떠 있는 걸로 봐서는 얼른 준비를 하고 포항으로 이동을 해야 제 시간에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이다.


선배와 함께 학교 후문의 순대국집에서 해장을 하고 택시를 타고 동대구터미널로 이동을 했다.


거기서 포항가는 버스를 타고 부대 앞 오천까지 들어가야 하고 서문 앞에서 선임들에게 주문 받은 몇몇가지를 사서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휴가를 가기 전 내무실 하리마우의 특별한 지시가(?) 있었다.


참으로 민망한 지시였는데 여자의 음모 다섯 가락을 싸가지고 오라는 것이였다. ㅎ 


그 땐 사람 하나 납치해서 들어와라 해도 실천에 옮겨야 하는 이병이었으므로 하리마우가 지시한 사항이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


입대 하기 전 요샛말로 썸을 타는 지은이라는 친구가 있었지만 하룻밤을 같이 보내고 뭐 이런 사이까진 아니었기에 부탁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주머니 사정 빤한 선배들을 졸라 어디를 다녀올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마지막 날 술자리에서 고민에 고민을 하고 있으니 선배들이 인상쓰지 말고 술이나 쳐먹어라며 속 모른 소리를 했지만 취기가 한층 오를 때 쯤 내가 왜 이리 고민을 하는 지에 대해 털어놨다.


"김선배.. 아 씨* 내무실 하리마우가 여자 거시기 털 5가락을 가지고 오라 안하요.."


그 말에 선배들이 깔깔 웃더니 잔다르크란 별명을 가진 유명한 여선배가 사내 놈이 그 딴걸로 걱정을 한다며 자기가 제공자가 되겠노라고 자원을 했다. 


평소 잔다르크 선배의 행동은 사뭇 남성과 같았기에 누구하나 놀라지 않았다.


평소 숏컷트 보다 더 짧은 섬머슴아 같은 헤어스타일을 고집하고 있는 잔다르크 선배는 취기가 올라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들어가서 한참만에 나와서 내 손에다 정말 5가락을 올려줬다.


다들 웃겨 죽는다고 난리지만 난 그것을 감사히 받아 휴지에 돌돌 말아서 정복 윗주머니 깊숙히 간직을 하고 감사의 인사로 해병이병의 바짝 기합든 모습으로 "필승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라고 경례를 했다.


**그 가락이 어디 부위의 가락인지 알길은 없다. 다만 고민하던 후배를 위해 기꺼이 제공자로 지원해주신 선배의 마음이 곱지 않은가....

   최소한 그때의 대학 생활은 선배들에 대한 존경을 넘어 경외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학교를 다녔다.
  지금의 대학은 그런게 있나 모르지만 말이다.
  잔다르크 선배는 아들,딸 놓고 사업하는 신랑을 만나 대구에서 잘 살고 계시다. 나중에 기회라도 되면 그게 어느 부위의 가락인지 묻고 싶은데. 그랬다가 죽통 한방 날아가지 않을지 걱정이 좀 된다.
  참 영화같은 이야기다!**


버스는 야속하게 빨리도 달렸다. 평일이니 막힘 없이 시원하게도 달렸다.


찰나에 포항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했고 택시를 타고 서문 앞에 도착을 했다.


우선 통닭집에 후라이드 양념 반반으로 세마리를 주문하고 정육점에 가서 돼지비계 만원치를 달라고 하니 어디에 쓸 용도냐며 묻는 주인에게 '나도 모릅니다' 했더니 커다란 봉다리에 한가득 돼지비계를 싸 주셨다.  돈도 받지 않고 말이다.


다음은 순대집에 가서 묵직하게 여러인분의 순대와 간,염통등을 포장 하고 서문앞에 섰다. 마지막으로 정복 윗주머니에 선배가 소중하게 하사해주신 그 가닥이 잘 있는지 한번 더 점검을 하고 서문을 통과해서 민간인과 사단을 구분 짖는 담벼락을 따라 중대로 복귀했다.


복귀를 하니 선임들은 한창 순검청소 중이었고 나도 얼른 환복을 하고 선임들의 워커를 나르고 침상을 닦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일단 나 스스로 부터 며칠동안의 민간인의 때를 빼자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열심히 뛰어다녔다.


워커를 털면서 737기 선임이 잘 다녀왔냐며 조심스럽게 물었고 반가운 소식이 있노라며.. 너 이제 중대 바닥을 벗어났다 라고 얘기를 해 주었다.


이제 내 밑에도 내가 갈굴 수 있는 쫄병이 생겼다. 아..감개무량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제 나는 중대바닥의 신분도 벗은 꼴이 되었다. 


그 말은 가혹한 구타에서 항상 열외를 받던 중대 바닥의 신분까지 잃었다는 얘기도 된다.


이게 즐거운 일인지... 슬픈 일인지 몰랐지만 당장 오늘밤에 스스로의 안위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순검청소를 모두 마치고 순검도 간단하게 넘어갔다. 내가 사온 통닭과 순대 초코파이가 펼쳐졌고 각 내무실 오장도 여러명 와서 같이 함께 음식을 먹었다.


"야 가로지기!"
"악"
"너 내가 말한 거 가져왔어?"
"악! 가져왔습니다"


난 자랑스럽게 잔다르크 선배가 준 그것을 조심스레 내어 보였고 그걸 받아본  하리마우는 '이 새끼 정말 가지고 왔네' 하는 표정이다.


'이꺼 니꺼 아니가? 이거 진짜 여자꺼 맞나?' 라고 물어보면 내가 이것을 획득하게 된 경위를 소상히 보고하려 했으나 하리마우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온화한 미소를 띄며


"우리 내무실 바닥 존나 기합이네. 너희들 본받아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