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740기 김동훈

실무생활-22 402초소

머린코341(mc341) 2019. 10. 8. 15:49

실무생활-22 402초소


402초소는 사제와(민간인지역)그리 높지 않은 담을 마주 보고 있다.


철 구조물의 초소로 큰 기둥이 서 있고 계단으로 올라가서 초소로 진입을 한다. 초소에서 내다보면 사제가 확연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바로 보이는 교회에는 겨울이 되면 긴 크리스마스트리가 교회 종탑에서 마당까지 줄줄 매달려 있었고, 일요일 오전이면 바라만 봐도 아름다운 향기가 날 것 같은 여학생들이 교회 마당을 왔다갔다 하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개쫄들은 어김없이 02:00~04:00시 가장 취약한 시간대의 근무조로 편성된다.


순검청소를 하고 순검을 받고 잠을 자다 01:20분경에 중앙현관 근무자의 근무 알림을 받고 전투복으로 환복한 뒤 방한복을 챙겨 입고 근무지 투입 준비를 한다.


남쪽인 포항이라 해도 바닷가를 인접한 곳이라 겨울엔 꽁꽁언 바닷바람 덕택에 손과 발이 꽁꽁 얼도록 춥다.


그나마 그 날은 날씨가 좀 온화했는지 취침무렵에 내리는 비가 싸레기 눈으로 변하더니 다시 비로 추적추적 내렸다.


근무 교대 신고를 하고 각자 배정받은 근무지로 투입이 된다.


그날은 근무지까지 여유를 부리며 갈 수 있었는데 전 근무조 대빵이 오늘 나와 같이 근무를 하는 선임보다 후달려서 연병장을 가로 질러서 슬슬 걸어갔다. 전임자가 선임이면 뭐 빠지게 뛰어가야 한다.


402 초소가 보이니 멀리서 암구호가 날아오고 실수가 없도록 얼른 대답을 했다.


가끔 긴장해서 암구호를 잊어버리는 졸병들도 있는데 어찌 되는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뒤집어 쓴 판쵸의는 이게 비가 새는 건지 흠뻑 젖었다.


선임의 판쵸의는 대부분 앗세이라 폭우속에서도 완벽한 방수를 자랑하는데 항상 B, C급 장비를 물려 받는 쫄들의 판쵸우의 방수는 믿어서는 안될 것 중에 하나다.


근무 교대를 하자마자 선임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춥다며 가볍게 제자리 뛰기를 하며 무료함을 달랬다. 지금은 야간 경계근무때 핫팩의 열을 느끼면서 근무를 선다지만 그 당시엔 핫팩 자체가 있으리 만무하지 않은가.


조용히 상념에 잠기며 교회의 크리스마스트리를 보고 있자니 사제의 생각이 물씬나고 지금쯤 동성로와 학교 후문의 술집을 배회하면서 술 쳐먹고 연애질이나 하고 있을 친구들을 생각하니 이 불쌍한 개쫄처지가 지금 내리는 구슬픈 비와 같아 눈물이 찔끔 나려 했다.


빗소리만 들리는 와중에 선임이 조용이 나를 불렀다.


"어이 가로지기" (쫄때 내 별명은 애로영화에 나오는 힘쌘 가로지기였다)
"네 이병 가로지기"
"니 여기 402에서 있었던 일  아나?"
"악..알아보겠습니다"
"씨**아 뭘 지금 알아봐 ㅋㅋㅋㅋ"
".........."
"여 (여기) 임마 장난 아닌 곳이다. 담 넘어 저 교회옆에 가로등 서 있는 집 보이제.."
"악"
"거 사는 처자하고 600자 선임하고 어째어쨰 해서 눈이 맞았다 카데.. 그래가 면회도 오고 외출도 나가고 외박도 나가가 (서) 재미있게 놀고 떡도 치고 그랬겠제?"
"악"
"근데 이게 성에 안차는 기라. 매주 면회 올 수도 없고 매번 나갈 수도 없는기 아이가. 그래가 그 600자 선임이 근무를 서는 날에 쫄은 저 뒤에 솔밭으로 짱박혀 있으라 카고 그 아가씨가 저 밑에 개구멍 보이제? 글로 들어오는 기라. 그래가 이 초소에서  씨바 둘이 뭐했겠노? 떡이나 치는기지...
그러다가 그 600자 선임이 존나 가지고 노다가 제대를 하는데 그 아가씨한테 말 한마디 없이 그냥 서울로 가삣데 (가버렸데)
그걸 몰랐던 그 아가씨는 면회신청을 하러 서문에 가니 제대를 했다는 소릴 들은기라. 씨바 존나 좌절하고 상심했겠제?
미련이 엄청 남아서 혹시나 밤에 오면 그 선임이 있을까 하고 저 담벼락까지 와서 부르다가 근무서는 아들이 (얘들이) 이러시면 안됩니다.. 하고 몇번이나 그랬다 카데."


평상시에도 이빨이라하면 중대에서 두번째 가라 하면 서러울 정도로 실감나게 이빨을 잘 까는 양반이라 처음 듣는 그 얘기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근데 그날 아..그날도 이리 비가 왔다 카데.. 선임들 둘이 근무를 서다 고참은 자고 후달리는 선임이 근무를 서는데 졸립지.. 그래가 벽에 살짝 기대서 꾸벅꾸벅 졸았는데. 뭐가 딩~~딩~ 하는 소리가 들린다 카는기라. 씨바 그날 따라 바람은 좆나 불었다 카데.
 그래가 후달리는 선임이 고참을 깨웠지. 해뱀..해뱀 뭔 소리가 들립니다. 하니 고참도 잠에서 깬기라.. 그래서 둘이 가만히 들어보니 초소 쇠기둥에 뭔가 부딫히는 소리 같았다는 거야.

그래가 후달리는 선임이 초소로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중에 으...으악....으악...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뒤로 자빠지더란다. 고참도 놀라가 내려가서 후레쉬를 켜서 보니 씨바.. 어떤 여자가 초소 기둥밑에 빨간 빨랫줄 알제? 그 줄로 목을 매 있더라는 기야.. 근데 바람이 씨게 부니까 머리가 자꾸 쇠기둥에 부딫혀서 딩...딩..소리가 났는거지"


얘기는 클라이막스에서 주는 오르가슴을 넘나든다.


"저 403에서 비명소리를 듣고 대대 상황실에 딸딸이를(유선 송수신기) 날렸지. 402에서 비명소리 반복 청음.. 반복 청음.!!
대대 상황병이 그 무전을 받고 바로 402로 딸딸이를 돌렸는데 씨바 두 선임다 목이 맨 여자 시신을 보고 나자빠져 있는데 딸딸이를 받겠나..ㅋㅋㅋㅋ
그래서 보고 받은 대대 당직사관이 쳐자는 병기병 깨워서 실탄 꽂아가 ㅋㅋㅋ 실탄은 조빨라고 꽂나 ㅋㅋㅋ 존나 402로 뛰어가니 둘다 비를 쫄딱 맞으면서 주저 앉아서 손짓만 하고서는 말이 없더란다.

목 매 달아 죽은 시체봤나? 내는 봤는데 똥싸고 오줌싸고 혓바닥 입 밖으로 나오고 난리도 아니다이..
당직사관이 조명을 비춰서 보니 여자가 목을 매 달았는데  긴 생머리가 바람에 요동을 치면서 얼굴을 가리가 존나 괴기스럽고. 머리가 계속 쇠기둥을 치는 기라. 

당직사관도 시체를 못 끌어내리가 중대 당직이던 본부중대 선임하사가 와서 칼로 줄을 끊고 바닥에 눕혀서 판쵸의를 덮어줬다 카데..

그 여자가 바로 그 선임이 가지고 놀고 토켰던 그 애인이었는기라. 맘이 너무 상하고 고참이 그리워서 근무를 서는 시간에 찾아와서 저 개구멍으로 들어와 기둥에 목을 맨거지. 

그 일이 있고 난 뒤에 비만 오면 402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고 자꾸 딸딸이가 오는거야. 그래서 가서 보면 아무것도 이상이 없는거지. 그래가 한동안 여기 402을 폐쇄했지. 401, 403에서 근무서고 조명 더 달고..
야 씨바. 나도 처음에 그 소리 들었을데. 오줌 지리는줄 알았다이, 근무 똑바로 서라.."


하더니 고참은 이내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뿜으며 잠에 빠져 들었다.


상상은 현실을 만들어 내지 못하나 상상하는 모든 것들은 머리속에서 구현이 된다.


오줌이 지리도록 들었던 그 괴담의 장소가 바로 내가 있는 지금의 402이고 재수없게 오늘도 그 날 처럼 비가 온다. 씨바 바람도 분다.


고참의 "목 매 달아 죽은 시체봤나?" 하는 소리가 계속 귓가에 맴돌고 바로 보이는 저 개구멍에서 여자가 머리를 들이밀고 들어올 것만 같았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두 귀는 기둥에서 혹시 소리가 들릴까 최대한으로 예민해져 있었고, 두 눈은 개구멍에 고정되어 있었다.


시계를 보니 앞으로도 1시간이 더 넘는 시간이 남았는데 그 시간동안 뭘 하면서 이 공포를 잊어야 하는지 방법이 서지 않았다.


자는 고참을 이유없이 깨웠다간 죽통을 맞을 것 같고, 온 갖 신경을 열어둔채 서 있자니 너무 피곤하고 괴로웠다.


이런 날 당직사관이나 안전해병이 순찰이라도 돌면 그나마 나을 텐데 비바람 치는 겨울 새벽에 402까지 올 당직사관도 안전해병도 없었다.


자꾸만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으니 착시현상이 생긴다. 개구멍은 이미 쇠창살로 막혀져 있어 쥐새끼 외엔 들어오지 못하는데도 머리속에서는 쇠창살이 좌우로 벌어지고 새까맣고 긴생머리카락을 가진 머리가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두 귀에서는 계속 딩딩....딩딩...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조명이 미치지 않은 곳에서 혀를 내밀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바람에 날리며 그 여자가 서서 날 보고 있을 것 같았다.


두려움이 극에 달하니 잠도 오지 않고 서 있는 다리도 아프지 않다. 믿을건 총밖에 없다면서 (공포탄도 없는 빈총이지만) 지향 사격자세로 K2를 움켜쥐고 그렇게 떨었어야 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군장이 부딫히는 소리와 사람이 뛰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시계를 보니 근무 교대 10분전이었고 멀리서 어렴풋이 근무교대자의 모습이 보일 때 암구호를 날려 확인을 받으니 이제 이 긴 공포의 시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안도감에 힘이 쭉 풀렸다.


중대로 돌아와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도 계속 고참이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아~씨바 존나 무섭네...


그리고 내가 들었던 그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바로 윗 선임에게 존나게 은밀하게 얘길 했더니 존나 웃으면서 얘기를 한다.


"니 그말 믿었나? ㅋㅋㅋㅋ "
"아닙니까? 그럼?"
"씨**아 중대 선임들 쫄때 전부 들은 얘기다. 임마 이거 존나 쫄았네 ㅋㅋㅋ 딱 들어봐도 구라 안 같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