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740기 김동훈

실무생활-23 가로지기는 통역병(?)

머린코341(mc341) 2019. 10. 8. 15:54

실무생활-23  가로지기는 통역병(?)


해병 쫄병의 혹독한 겨울은 소소한 몇개의 사건을 겪으면서 서러운 시간 만큼 마음도 몸도 단련되어 갔다.


중대 행정병 선임이 내가 다음 달 진급차수 이고 6개월 동안 달았던 볼폼이 없고 짜세가 나지 않은 짝대기 하나의 가벼움을 벗어날 시기가 왔다는 반가운 소식을 알려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 밑으로 많은 후임이 생긴것은 아니고 내무실에도 내 밑으로 줄을 설 만큼 쫄병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진급신고를 하기 위해 연습을 하고 병장 진급자 중에 군번이 제일 빠른 해병이 대표로 신고를 한다. 찐빠 내지 않게 하기 위해 연습도 했으나 뭐..내가 하는 역할은 없기 때문에 그저 악기 충만한 소리로 경례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도 부러질듯하고 바람에 날라 갈 듯한 작대기 하나에서 하나를 더 한다는 건 특별한 순간이다.


그 모진 이병 생활을 포기하지 않았고 큰 실수도 없었으며 현란한 가무로 선임들한테는 군생활 잘한 "가로지기" 라는 평을 듣게되었다.


밑에 후임도 들어왔으니 약간의 여유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지도 생겼고. 후임이지만 여전히 내무실의 개쫄로서 서로 의지가 되기도 한다.


토요일 오후 과업이 끝나면 몇몇 선임들이 외출을 할 때 가끔씩 쫄을 데려가 주기도 한다. 이번에는 운이 좋아 내무실 넘버2 선임이 나를 챙겨서 토요일 오후에 외출을 함께 나가게 되었다.


'아!! 이 얼마만에 맛보는 사제의 향인가?'


서문을 나와서 바로 앞에 있는 마크사에서 구경도 하고 선임에게 이끌려 버스를 타고 포항 시내로 나가서 맛있는 것도 악기있게 먹고 달큰한 술도 얻어먹는 시간이니 신이 나지 않을 수 있는가?


밖에서는 절대로 손을 대지 않으니 갑작스러운 실수를 해도 중대내처럼 그렇게 엄하게 대하지 않는다.


봄이 오는 계절이다 보니 겨우내 긴 외투를 입고 다녔던 사람들의 옷 매무새도 변하는 것 같다.


아리따운 민간인 아가씨들이 스쳐 지나가면 어지로울 정도의 향기가 진동을 했다. 하긴.. 그 동안 그 안에서 퀘퀘한 냄새에만 길들여 져 있던 코가 봄바람에 가볍게 야들거리면서 날리는 화장품, 향수 냄새에 기겁을 하는 것이렸다.


내부실 넘버2 선임이 마크사에서 볼일을 보는 동안 보고를 하고 한적한 길에 있는 공중전화를 찾아 콜렉트콜로 집에 전화를 했다.


갑작그레 걸려온 전화에 부모님이 놀랬으나 지금은 외출중이고..난 잘있고 잘 먹고 잘 입고 있으니 걱정말라며 안심시키고 친구들에게 전화도 여러번 돌렸는데 연결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지은이에게도 하고 싶었으나... 아!! 내가 지은이 얘기를 적었는지 적지 않았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전화 연결이 안되어서 약간의 아쉬움이 들었지만 그래도 간만에 느끼는 온전한 사제는 너무나 나를 들뜨게 했다.


버스는 포항 시내로 보이는 어딘가에서 우리를 내려 놓고 넘버2 선임과 선임의 동기분들을 열심히 따라 다닌다.


치킨을 먹고 부대찌개를 먹고 햄버거를 먹고 죄다 먹는 것 뿐인다. 소주도 거의 한병 이상을 마셨더니 간만에 마시는 술이라 얼굴이 달큰하게 취해 오른다.


어둠이 슬그머니 내려 앉기 시작한다. 이제 복귀하자며 선임들 뒤를 따라가고 있는데 오천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방향의 작은 가게에서 미 해병대 복장을 한 덩치 산만한 녀석들이 야외 테이블에 앉아 병맥주를 마시며 저들끼리 웃고 즐기고 있었다.


선임이 힐끗보고 지나치니 미해병대 중에 한 녀석이 우리를 불러 세운다.


"Hey marine!! come here! come on"
"..............."


넘버2 선임과 선임의 동기들은 그냥 멀뚱히 그 무리들을 바라보기만 했고 미해병대 녀석은 연신 come..come on. 을 연발이다.


"가로지기"
"악!"
"니 영어좀 하나?"
"악!! 제가 영어는...그러니까...."
"이 새끼, 좀 하나 보네. 물어봐 같이 술먹자고 하는 것 같은데 무슨 용무인지. 가서 물어봐"
"아...악!"


선임들은 뒷짐을 지고 방관자로 돌아서서 나를 주시하고 있었고 나는 개뿔도 모르는 얄팍한 영어로 그 미해병대 앞으로 다가섰다.


이름을 보니 Glan 이라고 적혀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씨바...


"what you.... oh! glan. nice meet you marine! Wow your having a very fun time! why call me?"


초딩도 울고갈 짤막한 영어를 날리며 영화에서 보았던 과도한 액션으로 손을 잡고 어깨를 툭 치며 인사를 하니 얘들이 모두 일어나 자기 이름을 말하고 똑같이 인사를 날린다.


뒤를 돌아보니 넘버2 선임을 비롯 3명의 총원이 나를 보며 놀라는 표정이다.


"Wait"

"해병님 쟤들이 같이 맥주 한잔 하자고 하는데 말입니다."
"야....가로지기! 너 이씨*놈. 가방끈이었어?"
"악"


그렇게 자연스럽게 미해병대 대원들과 합석이 되었고 간이 테이블에 간이 의자였지만 맥주와 안주가 풍성하니 놓여있었고 선임이 가게로 들어가 소주와 진미오징어, 오징어를 사서 나와 플라스틱 일회용잔에 한잔씩 부어서 돌리라고 하였다.


"Hey men! this is korean wine. Did you drink it?"


6명의 미해병대  대원중에 마셔본 놈도 있다고 하고 처음이다 라고 말한 놈도 있었는데 하나같이 원샷으로 들이키더니 보드카  맛이 나고 사케 맛이 난다며 난리들이었다.


자기들은 오키나와에 있는 애들인데 이번에 훈련때문에 캠프무적으로 왔으며 다음주에 다시 오키나와로 간다고 했다.


처음 인사한 녀석은 자기 이름은 글렌이고 캘리포니아가 고향이라 했다. 그리고 자기 동료중에 한국인이 있다 해서 깜짝 놀랐는데 다시 물어보니 엄마가 한국사람이고 아빠는 미국인.. 그러니까 혼혈의 미국인이지 한국인은 아니었다. 아마도 내가 잘 못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우리는 같이 맥주와 소주를 마시면서 서로의 팔각모를 빗대어 우리는 전우이고 혈맹이고 동맹이자 형제다. 라는 거창한 결론을 내리며 그렇게 한시간 넘게 즐겁게 떠들면서 마시고 놀았다.


물론 글렌이라는 친구는 나에게 많은 말을 했으나 20%도 채 못알아 들어 그저 그냥 웃음으로 답하고 치얼스!! 만 외쳐댔다.


기억으로 남는 것은  모병제인 그들은 계급체계가 짬밥순이 아니라 입대전의 학력이나 전문기술  뭐 그런것으로 정해진다는데 내가 잘못 알아들었을 수 있으니 정확하지는 않다.


여튼 그들은 모두 사병이라 했으며 나중에 정훈시간에 미군 계급장을 교육 받는 시간이 있었는데 어렴풋이 생각해보니 그들은 일병, 상병 무리였던 것 같다.


선임들은 나에게 통역을 맡겼는데 달큰 하게 취하기 시작하니 두려움이 없어져서 짧은 영어 막 날려버리니 또 그게 통한다 ㅎㅎ


선임들은 가로지기 다시 봐야 겠다며 흡족해 하셨고 여러 차례 가게를 들낙들낙 한 뒤에 자리를 파했고 우리는 복귀 시간이 빠듯해 택시를 잡아서 한방에 서문으로 돌아왔다.


서문에 도착해서 주문해 놓은 통닭과 순대를 찾으니 서문 통과 시간이 아슬아슬 했다. 다행히 술 냄새가 났지만 서문은 별 탈 없이 통과하였고 긴 담장을 따라 402초소를 스쳐서 중대로 복귀하였다.


"엔젤정" 으로 불리는 정명식 선임하사님(꽉 찬 상사이며 키가 190에 육박하는 아주 풍체가 좋고 인자하신 분이었다) 조금 늦은 복귀시간을 문제 삼지 않았고 우리 내무실에서 닭이며 순대를 같이 나누어 드셨다.


그 자리에서 넘버2 선임이 하리마오와 선임하사님에게 우리 가로지기 영어실력이 특출나서 미해병대 얘들하고도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하고 우리들말을 모두 통역해 주었다.!! 라고 말해버려서 난 순식간에 내무실 엘리트. 나아가 중대 엘리트 나아가 사단 엘리트가 될 뻔 했다.


내 기억으로는 이 얘기가 대대장님한테까지 흘러들어갔고. 우연히 마주친 대대장님께서 나에게 물어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동후니.. 너 임마 영어도 잘한다며?"



쓸데없이 바쁘네요.
이게 꾸준하게 이어가야 그나마 보는 사람들도 관심을 갖는데.
미안합니다. 먹고 사는게 먼저 아니겠습니까?


봄날 입니다.


좋은 기억 많이 만들어 내는 날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