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740기 김동훈

실무생활-21 진지철수와 부대정비

머린코341(mc341) 2019. 10. 8. 15:42

실무생활-21  진지철수와 부대정비
 
훈련기간 동안 한번의 해프닝 이후 더 이상 우리 주둔지에는 대항군의 침입이 없었고 대대지휘소나 탄약고 등에 빨간 딱지가 나붙는 불상사 없이 종료되었고 부대로 복귀하는 날이 되었다.


부대로 돌아가기 위해 부렸던 짐들을 모두 정리하고 GP를 걷고 쫄병 신분답게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아직은 어리버리 해서 선임들을 작업을 거드는 수준밖에 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오히려 거추장스러우니 벽보고 서 있으라는 핀잔도 들으면서 고된 주둔지 철수를 마감했다.


대열을 이룬 포차를 타고 OO에서 부대로 복귀하는 긴 행열속에 끼어든다. 쫄들은 포차를 타도 깊숙한 곳에 짱박히기 때문에 꿈에도 그리는 민간의 풍경을 보고 감상하는 것에 제약이 있으며 맨 끝에 앉은 선임들은 지나가는 여인들에게 지들끼리 나름 점수를 매기는 등 희희낙낙이다.


다리 한짝을 턱 하니 올려놓고 헬멧의 턱끈을 풀어 헤친채 해병 병장 계급장을 단 선임들은 두려울것이 없었고 거침이 없었다.


기동중에 흡연은 물론 자도 자도 모라자는 잠도 보충하고 민간의 풍경이 슬슬 지겨워질때면 볼펜 한자루 꺼내서 쫄의 손가락 사이에 집어 넣고 주리틀기를 하며 일그러지는 쫄의 표정이 우습다고 낄낄낄~ 거린다.


털컹 거리는 포차의 울렁임은 졸음을 부른다. 눈커플이 천근만근이 되어 스스르 눈이 감길때면 어김없이 옆구리에 훅!!~ 하니 들어오는 묵직한 고통은 입에 단대가 나도록 움찔했으며 오랫동안 꼿꼿이 앉아 자세를 잡은 허리는 통증이 엄습한다.


그렇게 몇시간을 달려 이동 대열이 사단으로 진입하고 대대로 진입하여 각 병과별로 훈련 이후 부대정비가 시작된다.


가지고 온 GP를 창고에 입고 시키고 여러 물품들이 나간 숫자와 들어온 숫자가 맞는지 확인하고 없어진 것은 없는지.. 훼손이나 망실된 곳은 없는 지 꼼꼼히 살피고 모두 제자리에 위치한 걸 최종적으로 확인한 뒤 중대로 돌아와 개인 장구를 풀고 휴식에 들어가게 되는데 쫄병이 누리는 휴식이라 해봤자 내무실 침상에 살포시 엉덩이 걸치고 허벅지에 주먹을 쥔 양팔을 올려 눈알을 굴리면서 눈치를 보는 것이 전부다.


츄리링으로 갈아입고 냄새나는 양말을 그대로 신은채 역시 냄새나는 함상화를 신고 대기타고 있는데 선임이 와서 나직히 속삭인다.


"정비고 뒷쪽으로 집합"


내무실에 널부러져 있는 하리마우와 선임들의 눈치를 보며 헐레벌떡 뛰어 가니 이미 정비고 뒷쪽은 고만고만한 쫄병들이 모여 도열해 있고 상병,일병 선임들이 서 있었다.


상병 선임의 일장 연설이 이어지고 바로 훅!! 하니 여러대가 들어간다. 나름대로의 훈련 평가와 공과실을 구분하는 시간인데 쫄들이 잘한게 있으면 얼마나 잘했으랴... 그냥 들어오는 대로 받아 낼 뿐이다.


선임들의 목소리는 낮지만 전달은 명확하다. 갇 일병을 단 선임하나가 훈련장에서 보여줬던 일명 "존나 기합빠진 행동" 의 가차없는 정산이 시작되는 것이다.


난 다행히 바닥이고 아직도 어리버리 하다는 이유로 크게 훅!! 들어오지 않았지만 그 선임은 한동안 찰지게도 들어오는 뜨거운 훅!! 하는 것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상병 선임들이 빠지고 이제 일병과 이병들만 남아있는데. 일병 선임중에서도 덩치와 펀치가 가공할만큼의 위력을 지는 선임이 한발 앞서서 나와서 도열된 쫄들을 둘러본다.


'아...씨* 저기에 맞으면 뒤질 것 같은데...'

"이번 훈련 잘했다. 문제가 있고 선임들 지적사항도 있었지만 그래도 잘했다. 내무실로 돌아가고 항상 선임들 앞에서 빠리빠리 움직이고 기합빠진 모습 보이지 마라! 알았제?"

"악!"

"야! 목소리 안낮춰? ㅎㅎ"


예상외로 더 이상의 훅!! 들어옴은 없이 그렇게 싱겁게(?) 끝이 났다. 다들 얼굴 표정에서 속으로 내 쉬는 다행의 한숨 소리가 읽혀지는 듯 했고 뒤지도록 훅!! 하고 들어오는 줄 알았는데 무탈하게 집합 장소를 빠져나와 중대로 살살 달려가니 볼을 스치는 바람까지 그리 상쾌할수가 없었다.


내무실로 돌아와서 중대 화장실의 독고다이에 고인물로 샤워를 하고 식사를 한 다음 더럽혀진 전투복과 양말 빤스(누런빤스)를 세탁한다. 세탁 도구는 다른건 없고 구두솔이다.


물에 행군 뒤 빨래비누를 골고루 바르고 구둣솔로 챡챡챡챡 문대면 거품끼가 나오면서 세탁이 된다. 손빨래 하듯이 치대고 뭐 이런거 없이 그냥 간단하게 모든 빨래는 구둣솔 하나로 올 클린 된다.


세탁도 쫄이라 느긋하게 할수는 없는 처지라 순식간에 해치우로 적당히 행굼을 한 뒤 중대 뒷편 솔밭이나 중대 옥상에 올라가서 뒷통수 얻어 맞으면서 자가탈수를 하여 볕 좋을 때 옷들이 바짝 마르도록 널면 된다.


따뜻한 햇볕에 빨래는 잘 말라간다. 운이 좋은 날에는 선임들이 PX를 추진시켜서 과자와 쿨피스 , 콜라 등을 마실 수 있는 기회도 있다.


빨래를 지키면서 (뭐든 지켜야 한다. 긴빠이가 흉흉하므로) 주변을 내려다 보니 전부다 다 똑같은 건물 뿐이지만 빨래를 지키는 시간만큼은 오롯하게 평온한 시간이다.


굴뚝에 살포시 기대어 따뜻한 햇볕을 받으면서 잠깐 졸수도 있고. 입대전의 즐거웠던 일들을 조용히 떠올리며 미친것 처럼 혼자 조용히 웃어도 본다.


여기도 역시 사람사는 곳이라 따뜻함이 공존하기는 한다.  하지만 한시도 본인이 개쫄임을 망각하는 순간. 가혹한 댓가가 돌아오는 곳. 구타가 난무해도  "해병대니까" 하나 만으로 암울했던 마음에 중심이 서는 매직과도 같은 것.


그게 바로 해병대 인 것이다.


*이 글을 보고 두 분의 중대 선임이 20년이 지나 쪽지와 댓글로 연락을 해오셨습니다.
  어찌나 반가운지..
  그러나 다들 한결같이
  "내가 너 많이 때리지 않았지?"

라고 묻습니다.
  "때리셨죠 ㅎㅎㅎ "
  하고 대답하지만....  좋은 기억들이 많던 선임들입니다.


  오는 31일 경기도 양평의 후미진 곳에서 "집합" 이 있습니다.


*바쁘기도 하였고 지난번에 집을 한번 뒤집는 수준의 정리를 하면서 짱박아둔 일기장을 못찾아 좀 해맸습니다.


  몇몇의 분들을 위해 긴글은 아니라도 자주 업데이트 하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