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740기 김동훈

실무생활-25 야간행군-2

머린코341(mc341) 2019. 10. 9. 13:08

실무생활-25  야간행군-2


선임하사의 구령이 들려왔다.


"00중대"
"악"
"목소리봐라 이거.. 00중대"
"아악!"
"OOO 해병 기준!"
"기!준!"
"OO중대 5열 종대로 해쳐모여"
"해~쳐~모~여!!"


어러버리 할 때 쯤 선임의 손에 이끌려 종대 대열로 들어왔다.


짬밥이 되는 선임들은 익숙한 자세로 전투복 하의를 걷어 올리기 시작했다. 


난 왜 전투복 하의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는지도 모른채 선임을 따라 걷어 올리려 하니 또 옆구리에 총구가 훅! 들어온다.


"바지 안내려?  기합빠져가지고"


다른 중대에서도 구령이 들려왔고 인원들이 종대로 해쳐모이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적중한다! 씨바....


중대장이 앞으로 나선다.


"OO중대! 땀 식으니 춥지? 해병 답게 악기 있게 구보로 현 장소를 이탈 한다. 알겠어?"


아~~ 맞다. 이게 바로 선임들의 이빨로 전해 듣던 완전 무장 구보였다. 


전투복 하의를 걷어 올리는 것은 짬밥이 있는 선임들만 걷어 올릴 수 있는 것이고. 개쫄은 걷어 올릴 수 없다. 별의 별 것을 가지고 참..유치하게 그런다.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도 벅찬데. 무장구보라니..... 아직까지는 발바닥은 나름 양호한데 이 거추장 스러운 것들을 쓰고 매고 들고 끝이 언젠지 알 수 없는 곳까지 뛰어가야 한다.


탄약고 내에 보안등이 길을 비추고 있어 굽이 굽이 치는 길은 어둡지 않고 잘 보인다. 


선두가 구령에 맞게 출발을 하자 중대원 전체.. 대대병력 전체가 울리는 세무워커 소리가 웅장하게 들려온다.


온 몸에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각종 장구류는 내 심정과 같이 비명을 지르면서 철커덕~철커덕 소리를 낸다. 


처음엔 속도가 그나마 덜 했는데 나중엔 속도까지 높아진다. 


식었던 땀은 금새 야상, 전투복 안으로 줄줄 흘러내리고 철모의 내피 가족은 흘러내리는 땀을 먹기 시작한다.


앞 사람 배낭만 보며 죽어라 뛴다. 


사가나 군가를 부를 때 구령을 담당하는 상말 선임들이 뜀 박자에 맞게 구성진 구령을 넣고 반장의 호각소리에 맞게 중대 전체 병력의 발이 착착 맞아간다.


뒤에 서 있는 선임들은 계속 썅욕을 날린다.


"낙오하면 죽는다.. 낙오하면 죽는다.."


이런 대대 전체 행사에서 개쫄의 낙오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숙달된 선임들은 완전무장으로도 구보가 참 편하게 보이고 속도도 일정하다. 경사가 나타나도 쉼없이 차고 오른다.


체력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짬밥이 기술인건지. 매번 내무실에 뒹굴던 선임들이 이렇게 체력이 있는 지 몰랐다. 하기야.. 고참 입장에서 낙오하면 그것 또한 여간 챙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한참을 달렸다 생각이 들었는데. 숨이 끝까지 차왔다.  숙달이 되지 않다 보니 보폭이 좁아진다. 보폭이 좁아지니 당연 속도도 줄어든다. 그런데 내가 뒤로 밀리면 종대 대열이 흐트러진다.


그렇다!! 이 구보는 뒤져도 끝까지 가야 한다. 낙오를 할 바에는 그냥 땅 바닥에 머리를 쳐박고 기절이라도 해야 한다.


대열을 벗어날 수도 없는 이 지옥같은 구보속에서 어금니를 꽉 깨물고 뛰었다.


이병,일병들의 속도가 자꾸 밀리자 선임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욕도 나오기 시작한다. 대열 옆 중대 선두와 선미로 선 두명의 반장 호각소리가 구령을 요구한다. 이런 씨바... 구령 다음에는 군가가 나오기 마련이다.

 

"삐빅( 삐빅) 삐빅(삐빅) 삑삑 (삑삑) 삑삑 (삑삑) 삐빅~~~~~~삐비빅!!"
"아야아~(차야아) 아야아~(차야아) 아야아~(차야아)" 


이게 말로 잘 표현이 안된다 ㅎㅎ


구령을 외치면서 중대원 전체가 박수를 친다. 박수를 치면서 구보를 하는 것이다. 박수는 누구하나 헛박자가 나지 않게 아주 정확하게 소리를 낸다. 


신기하게도 박수와 함성을 지르다 보니 체력은 바닥이 낫지만 몸에서 근원을 알 수 없는 힘이 솓아 나는 걸 느꼈다.


눈이 부릅 떠지고 중대 대열속에서 나도 모르게 악을 지르고 박수를 지르며 좀전보다 훨씬 편한 자세로 속도까지 높이면서 뛰고 있는 놀라운 내 자신을 봤다.


출처 : 인터넷


"오르가즘인가?"

아니다!


이게 바로 그렇게 선임들이 "악기 보겠어.. 악기 보겠어" 하는 바로 그 "악기" 라는 것 같았다.


힘이 풀릴 법한 다리엔 다시 힘이 들어가고 목은 찟어질 듯 했지만 함성은 날카롭게 나왔다.


그 순간 지치지도 않았다. 힘들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호흡이 안정되기 시작했고. 두 다리는 힘차에 앞으로 뻗어 갔다. 머리속에는 공(空)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 같았다.


무아지경에 녹아들기 시작했고. 이대로라면 정말 밤새 도록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속도가 높아져 앞 선임의 뒷 발을 살짝 건드릴 정도로 치고 나아갔다. 다리도 길지도 않은 놈이 말이다.


"아!! 나는 해병 입대 후 처음으로 악기 가 몸속으로 퍼지는 것을 느꼈다"


찰나에 이런 생각이 들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겨울의 매서운 바람속을 계속 뛰면 눈물이 휘날리기도 하는데 그런 눈물이 아니라 진짜로 뜨거운 것이 몸속 저 밑에서 올라오는 것에 의해 눈물이 흘렀다.


눈물을 닦아 낼 틈도 없이 구령을 외치고 사가를 부르며 그렇게 한참을 뛰다가 선두의 속도가 현저하게 줄더니 구보는 끝이 났다. 


대열 그대로 자리에 앉아 쉬는데 고참들이 내 얼굴을 유심히 본다. 기역자로 꺽인 빨간색 후레쉬를 켜서 내 얼굴을 보더니 희미하게 미소를 날리신다.


"우리 개쫄이 존나 악기 들었네. 좋아..아주 좋아 ㅎㅎ"


두 눈이 벌겋고 쉬면서 눈물을 훔쳐낸 자욱이 새까맣게 칠한 위장크림 위에 그대로 녹아 있었다.  내 뒤에 있던 선임도 나중에 한 얘기지만 존나 걱정을 했다고 한다.


낙오는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일이기 때문에 내가 낙오 하는 순간 라면이고 나발이고 그날 밤 또 얼마나 죽통이 날아가고 쭐대가 울며 빳다가 춤을 췄겠는가 하면서 말이다.


나는 그날 내가 해병이 된 후 처음으로 정신에서 나오는 "악기" 라는 것을 맛보았다. 그것은 오르가즘 과 같은 희열과 설명할 수 없는 뜨거운 무언가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개쫄의 서러움이 아주 강하게 농축되어 응고되었다가 군중속에서 고함을 지르면서 구령을 하고 군가를 부르니 나도 알지 못한 힘이 나왔다 보다.


그 힘의 원천은 정말 무었이었을까?


*해병 12km 완전무장 구보*


낙오자를 막기 위해 서로를 연결하는 줄을 묶고 뛰고 있는 선배 해병들


박정희 시절 청와대를 기습하려 했던 김신소를 포항으로 데려와 20kg 배낭을 지고 4km를 뛰게 했는데
12분만에 돌파해 버렸다고 한다.


거기에 빡친 군 지휘부들이 완전무장 구보를 도입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전군 완전무장 구보 대회까지 생겨서 전군중에 해병대가 신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아직도 그 기록은 깨지지 않았다고 한다.


완전무장 구보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뛰는 순간순간이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 싸움에서 이기면 내가 정말 해병이란 것을 입증해 주는 귀한 경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