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740기 김동훈

실무생활-24 야간행군-1

머린코341(mc341) 2019. 10. 9. 13:04

실무생활-24  야간행군-1


야간행군이 있다는 공지가 들려왔다.


석식 시간전에 출발하여 어디어디를 경유해서 대대로 복귀한다는데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야간행군이라 찐빠내서 얻어터질까..


괜히 긴장이 된다.

오후 4시쯤에 석식이 시작된다.


과업장에서 불려나와 선임과 손을 다정하게 꼬옥 잡고 주계로 향했다. 생선같은데 이놈의 생선은 왜 맨날 양념에 쪄서 주는지 살이 통통 오른 생선은 구워주면 참 맛있게 먹어줄텐데 무조건 스팀에 찐 조림이다.


개쫄이 어디 맛을 논할 필요가 있을까?


인기가 없는 반찬은 항상 츄라이에 가득 담기는 법이고 맛은 내팽개치고 무조건 악기있게 먹어서 싹싹 비워야 한다.


선임의 츄라이네는 생선 꼬리 작은 토막 하나가 올라가 있고 난 큼지막한 몸통 두서너 토막이 올라가 있는데 배식을 하는 주계병


선임이 씨~익 웃으면서 말한다.


"다 쳐먹어라이~~~"
"악!"


그렇게 그렇고 그런 밥을 거북하게 먹고 내무실로 돌아오니 군장싸기가 한창이다.


지난 번 대기병때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속으로 다짐하면서 방독면 주머니에 방독면이 들어있나 철저하게 확인하고 어설픈 솜씨로 무장을 꾸리기 시작했다.


꾸리는 와중에도 선임들의 잦은 심부름은 계속되고 갈굼도 계속 된다.


씨바.. 왜 자꾸 사람을 툭툭 치는거야.. 무섭지도 않은 인상을 날리면 무서워 하는 표정도 지어야 하고 개쫄은 이리저리 바쁘다.


오늘도 어김없이 완전무장은 오지게도 무겁다.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어깨를 누르는 하중이 장난이 아니다.


휘청휘청 하면서 내무실 침상에 가까스로 걸터 앉아 있는데 이번엔 위장을 하란다. 위장크림 3색 컬러는 선임들이 자세나게 바르고 개쫄들은 그냥 검은색으로 얼굴 전체를 칠한다.


그나마 위장크림이 제대로 지급 받을 때 이야기이고 보급이 원활치 않으면 개쫄들은 신문지를 태워서 얼굴에 문지르거나 어디서 구해온 먹지를 얼굴에 부비부비 하는 것으로 위장을 했다.


하리마우와 넘버2,3는 밝은 색으로 얼굴에 듬성 듬성 가볍게 터치하는 것으로 끝나고 중간 선임들은 위장크림으로 영화에서나 나올듯한 무늬로 재법 자세가 나게 바른다.


물론 개쫄인 나는 온 얼굴에도 모자라 목까지 새까맣게 칠한다.  엄청난 길이의 굴뚝을 맨 얼굴로 통과한 것 마냥 새카맣게 말이다.


각 내무실 구령이 들려오고 중대원 전체가 연병장으로 집결한다.


완전무장.. 정말 오지게도 무겁다. 키가 크지 않으니 보폭은 짧지... 무게는 상당하지 누군가 옆에서 툭 하니 건드리면 완전히 쓰러질 정도로 자세가 나지 않은 완전무장이다.


대대장님의 간단한 훈시가 있고 알파가 선봉으로 대대정문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불사로를 통과하고 영외하사관,장교숙소가 있는 BEQ? BOQ?를 지나자 사제가 눈에 들어왔다.


퇴근 시간의 사제는 번잡하다. 약간의 민간인 지역을 지나 행군 대열을 금방 산속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산속이 그냥 산속이 아닌 듯 하다.


오솔길을 생각했는데 커다란 도로가 나오더니 군사지역을 알리는 붉은 바탕에 노란글씨가 보였고 경계병력이 지키고 있는 철문이 보였다.


철문이 개방되고 안으로 진입하는데 포차가 다녀도 될 만한 넓직한 길이 나왔다. 곳곳엔 보안등 (가로등)이 켜져 있었고. 주위엔 반지의 제왕에서나 나올법한 호빗의 집 같은 형태의 건물들이 도로변에 즐비했다.


"가로지기!"
"악! 이병 가로기지"
"니 여기 어딘지 아나?"
"악! 알아보겠습니다"
"모르면서 뭘 알아봐 ㅆ발넘아 ㅎㅎㅎ 여기 탄약고다이..  우리가 전시 때 사단 전체가 한달 동안 쓸 수 있는 탄약하고 포탄하고 있는 곳이다이.. 존나 넓제?"
"악 존나 넓습니다."
"뭐? 존나? ㅎㅎㅎㅎ"


아!! 복면복창을 한다는 것이 선임의 "존나" 까지 그대로 옮겨버렸다.
바로 뒤에 걷던 일말 선임이 뭔가로 등을 쿡 쑤신다.


"컥"
"놔둬라! 기합이다 임마"


선임의 배려로 (기억으로는 넘버2 선임같다) 희안한 구경을 하는 어린아이 처럼 가도가도 종점이 보이지 않은 탄약고를 한참이나 걸었다.


길도 포장길로 잘 되어있고 오르막도 없어서 아주 수월했다. 일말 선임은 얼마전에 지급된 앗세이 K-3를 들고 나왔는데 자세였다.


나도 한번 매어 보고 싶었으나 개쫄은 뭐 그냥 주는대로 매고 주는대로 입고 주는대로 먹고 하는 것이 개쫄이다.


한시라도 욕심을 부려 개쫄 본연의 임무를 벗어나면 가차없이 아구창이요 가차없이 쭐대치기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다시 커다란 철문을 통과해서 탄약고를 빠져나왔다. 길은 다시 농로로 이어지는데 이때는 뭐 개개인별로 헤드랜턴이 지급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앞 사람이 가는 길을 유심히 보면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선두에 서는 해병은 반짝반짝하는 경광등을 들고 이동을 하고 장교나 선임하사 들은 행군 대열을 지나가는 일반 차량에 사고가 없도록 관리를 하면서 지나가는데 야간행군은 거의 군사지역의 임도나 산길을 걷기 때문에 특별히 이동하는 민간이 차가 위협이 되는 상황은 없었다.



그렇게 한참 걷다가 10분간 쉬어가 주어지고 개쫄은 무장을 벗지는 못하고 바닥에 앉아서 휴식 아닌 휴식을 취한다.


날씨가 애법 추웠는데도 한참을 걸어서인지 속으론 땀이 흥건하다. 십분쯤 쉬면 열이 올랐던 몸이 식기 시작하는데 군용 피복의 위엄은 빨리 젖으나 마르지 않고가 특징이다. 그래서 안에서 추워진다.


쉬는 것 보다 속도만 줄여서 계속 걷는것이 오히려 낫다. 지난 번 행군때 같이 발바닥에 물집은 아직 잡히지 않은 것 같다.


개쫄의 허접한 짬밥 경력이 그래도 소소하게 도움이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오늘은 부대로 복귀하면 야식을 준다는데 라면이라고 한다.


그것도 컵라면이 아니라 주계의 대형 솥에서 직접 끓이는 라면이라고 하는데 생각만 해도 입에 군침이 돌았다.


밖에서는 먹어도 그만 아니먹어도 그만이지만 여기서는 끓는 물에 삶은 라면은 정말이지 귀했고 (대부분 뽀그리 아님 컵라면)맛 또한 최고였다.


이럴 때 개쫄은 그래도 적당한 양의 라면을 삼킬 수 있다. 개쫄을 벗어나면 그나마 몇 젖가락  얻어 걸리지도 못하지만 내무실 바닥이나 개쫄들은 그나마 먹는 것에 대해서는 배려가 있었다.


몇 해전 전원책 변호사가 한 말이 떠오른다.


"군대는 폭력을 관리하는 집단이다. 군대서는 아무리 먹어도 배고프고 아무리 자도 졸립고 아무리 껴입어도 춥다"


장교 출신의 그의 말이 옳다. 정말 원 없이 먹고 싶고 원 없이 자고 싶다. 따뜻한 옷을 입고 근무를 섰으면 소원이 없겠다.


밤 하늘을 올려다 보니 달이 중천이다. 꼬불꼬불 작전도로를 한참이나 걸었는데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앞에 나를 데리고 걷던 선임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찾지도 않고 충구로 옆구리를 찔렀던 선임도 조용하다.


이동 병력의 군화 소리만 규칙적으로 들리고 차갑지만 콧잔등을 타고 넘는 바람이 싫지만은 않다.


한참을 이 생각 저 생각으로 걷고 있을 때 갑자기 선임하사의 불호령 같은 구호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