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740기 김동훈

실무생활-27 주계작업원

머린코341(mc341) 2019. 10. 9. 13:14

실무생활-27  주계작업원


일병으로 진급을 해서도 여전히 개쫄은 개쫄이다.


이때는 이병때의 생활과 달라지는게 있는데 약간의 자유가 허락되지만 책임이 붙게 된다.


즉. 어리버리 멋 모르는 아쎄이가 아니라 이제는 해병물이 살짝 든 진짜 해병으로서 계급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이젠 모른다.. 라는 말을 해서는 안되며 어리버리 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고 어리버리 한 척 하다가는 뺀질이로 낙인 찍히게 되고 그 그간이 오래 가다 보면 군내 부적응자가 되고 예전에 많이들 들어봤던 [기수열외] 자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때는 [기수열외] 자가 거의 없었다.


혹독하게 훈련하고 지랄맞게 내무실 생활을 해도 치사하게 사람을 괴롭히고 집단으로 돌려버리는 짓은 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찐빠를 내면 연대 책임을 물었고 자연스레 기수빠따가 성행하게 되면 나 때문에 죄 없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없다는 신념 들이 생겨나 찐빠를 내지 않으려고 나 같이 노력하고 그 중에 감당하기 힘든 또라이 기질이 충만한 선임이나 쫄이 있으면 책임지고 살폈다.


몇 해 전 해병대 기수열외가 단초가 되어 해병으로서 정말 수치스러운 사건이 강화에서 일어났다. 정작 진짜로 죽도록 힘든 생활에서는 총질을 할 정도의 인격까지 무너뜨리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해병대는 전술적으로 포항이 최전방이다. 


2사단과 6여단은 부대 주둔이 휴전선 근처에 있어 전쟁 발발 시 관할하고 있는 지역을 무슨수를 써서라도 사수해야 하고 다시 부대 정비를 해서 밀고 올라가는 것이 주요 임무이나 포항의 1사단은 전쟁 발발 시 각 연대 별로 미리 정해 놓은 북한의 상륙 지점에 대한 작전이 시작되며 포항을 벗어나 내륙으로도 그 목적에 맞게 진출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남부지역이라 추위는 대단하지 않다고 으레 생각을 하지만 1사단 울타리 옆이 동해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겨울 바람이 얼마나 매서운지 꽁꽁 싸매지 않으면 안되는 추위가 2월까지는 너끈하게 이어졌다.


오전 과업과 중식을 먹고 내무실에 대기하고 있는데 중앙 현관에서 당직하사의 구령이 들린다. 이 구령이 들리면 내무실에 잔존해 있는 인력중에 후달리는 기수대로 바로 내무실 비밀문을 밀치고 나서 0내무실~ 하고 본인이 소속된 내무실 이름을 밝혀야 한다.


"각 내무실"
"유~~우욱 내무실~~"
"현 시간 부로 주계 작업원 5명, 병사떠나 15분전~"


선임의 말인 즉슥 주계 작업은 그렇게 힘든일은 없고 뭐든 얻어 먹을수도 있고 해서 선호하는 작업 중에 하나란 것이었다.


복장을 갖추고 상병 선임 한명과 일병3명,이병1명으로 구성된 인원이 주계로 가자 주계 오장의 작업 지시기 이뤄졌다.


생전 처음 보는 감자깍기 기계가 있었는데 이 기계에 감자를 넣고 전원 버튼을 누르면 회전을 하면서 통안의 감자껍질이 벗겨 지는 원리인데 그 원통이 돌 때는 물을 계속 부어주어야 한다. 


그래도 사람이 일일이 깍는 것 처럼 깨끗하게 깍이지는 않는다. 왜 작업원이 필요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주계병 몇몇이 무슨 일이 있어 사단으로 가서 그 인원을 대신하여 여러 잡일을 하는 것이다.


감자를 요란하게 한바탕 깍고 나니 쌀 창고로 가서 쌀을 가져오란다. 쌀 가마니엔 "정부미" 란 글자가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몇년 동안 묵혀둔 쌀인지도 모르지만 이걸 엄청 큰 대형 스팀기로 쌀을 찌게 되면 밖에서 먹는 쌀밥과도 같은 윤기나 찰짐은 찾아볼 수 없고 그냥 쌀밥맛이다. 


그것도 100% 쌀이 아니라 보리쌀이 20% 정도 썩이게 되는데 건강을 위해서라지만 그리 건강해 지지는 않는 것 같다.


주계밖의 야외에는 커다란 가마솥이 하나 있고 넓직한 가마솥이 하나 있었다.


하나는 뭔가를 볶아대는 용도 같았는데 하나는 넓직한 팬 같은 것이었다.


나중에야 그 팬에 식용유를 붇고 더럽게도 맛없는 튀김류를 한다는 걸 알았다. 


일병이라지만 아직도 이병의 그 어리버리함은 있다. 


주계병도 다 선임들이고 소속 중대도 달라 어줍잖에 서 있으면 어김없이 쌍욕이 날라와 주눅이 들었다.


나도 그런데 이병 쫄병놈은 정신을 못차리고 오줌마려운 고양이 마냥 이리저리 왔다갔다 갈피를 못잡고 있었다.


주계병 선임이 대형 냉장고앞으로 오라 해서 가보니 뭔가 꽁꽁 얼은 것이 포장이 되어 있었다.


닭이었는데 어찌나 냉동이 되어 있던지 돌덩이 처럼 무거웠다.


여러명이서 몇번을 나른다음에 주계병이 시범을 보여준다.


꽁꽁 얼은 닭을 낱마리로 뗴내는 작업인데 이게 뭐 자동 해동 이따위는 없기 때문에 주계 맨 바닥에 비닐을 깔고 꽁꽁 언 닭을 사정없이 내리 꽂는다 ㅎㅎ


그 충격으로 닭들이 알아서 분리가 되는데 군에서는 뭐든 요령이고 기술이 있어야지 주계병처럼 힘껏 내다 꽂았으나 어림도 없다.


어리버리 하는 게 맘에 안들어서인지 다시 창고로 가더니 대리석 같은 돌덩이를 가져와 바닥에 놓았다.


"야. 이 돌을 전자가 내리 꽂아라"


전자가? 전가가? 이게 뭐지? 하는 표정이었는데 나는 경상도라 한번에 알아듣고 설명을 해줬다.


"견주어라" 혹은 "목표를 삼아" 라고 말을 해주니 이제서야 알아듣는 눈치다.


과연 주계 선임의 조치로 돌에 전자서 닭을 냅다 꽂으니 사방으로 닭들이 튀었다. 흡사 살아 있는 닭처럼 이리저리 갈라져서 막 돌아다닌다. ㅎ 


비닐을 비켜서 널부러진 닭들은 지저분한 바닥위에 내동댕이 쳐졌지만 그걸 주워 대충 물로 한번 씻은 다음 대아에 담고 커다란 도마가 있는 쪽으로 가지고 오라고 한다. 


거기서 주계병 두명이 붙어 중국집에서 쓰는 어마무시한 칼로 힘껏 내리쳐 닭들을 토막내고 있었다.  또 창고로 가서 밀가루를 가져오라길래 쫄과 함께 사이좋게 하나씩 매고 나왔다. 


아마도 오늘 석식은 닭튀김인가 보다. 개쫄이야 어디 재대로 된 닭튀김이야 맛볼 수 있을까?


날개가 맛있다며 살이라고는 하나 없는 날개와 목 쭐때만 빨면서 닭 맛을 음미할 뿐이다. 


그래도 오늘은 작업원이어서 닭을 튀기면서 여러 조각을 맛볼 수 있다고 상병 선임이 나즈막히 알려줬다.


그 말만 들어도 입에 침이 고인다. 아니 침샘에서 침이 독사가 독을 뿜는 것 마냥 솓구쳐 올랐다. 


정말 열성적으로 주계 선임이 시키는 과업을 충실히 해냈다. 


따뜻하게 갇 튀긴 닭을 남들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이 먹기 위해서 말이다.


밀가루 반죽이 끝나자 밖의 넓다란 팬에는 식용유가 콸콸 부어졌다.


희안하게 생긴 버너가 굉음을 내고 한참을 돌아가자 튀김가마솥은 뭐라도 튀길 마냥 빠르게 온도가 올라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드디어 닭이 튀겨진다!!! 닭이!!!


닭 조각조각은 밀가루 옷을 고이 입고 식용유에 담궈진다. 맛있는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닭은 노르스름한 빛을 내며 한껏 자태를 뽐낸다.


튀김솥이 꽉 차게 닭들이 튀겨지고 있다. 난 긴 뒤집게 같은 걸 들고 튀김찌꺼기가 올라오는 것을 걷어 내라는 지시를 받고 어줍잖은 솜씨로 열심히 걷어내고 있었다. 


드디어 완전히 익은 튀김이 대야로 옮겨지고 있다.


"먹고 싶제?"
-악..아니..아닙니다"
"먹어봐라. 익었지싶다"
-악! 감사히 먹겠습니다"


악기 있게 큼직하게 토막난 닭을 한점 배어무니 아... 이것이 천국이다. 밖에서 먹는 치킨 못지 않게 고소하고 바삭하며 담백하다.


입가에 번들 거리는 기름이 묻어가며 서너쪽을 개걸스럽게 먹어 치우다가 눈치를 보자


"니 먹고 싶은 만큼 머봐라 (먹어봐라)"


아.... 선임의 말에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움을 느꼈다.


입천장이 까지는 고통따위야 닭튀김 맛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그 사이 작업원 전체가 불려오고 광주리에 갇 튀겨진 닭을 선임이 골라 담아줬다.


주계 오장이 나오면서

"고생했으니 이거 들고 짱박혀 악기 있게 먹어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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