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740기 김동훈

혹한의 밤 1

머린코341(mc341) 2019. 10. 11. 21:22

혹한의 밤 1


포항에서 군 생활 하는 26개월 동안 재설작업은 딱 한번 해보았다.


눈이 흔치 않는 지역이라 눈이 내리면 반갑기까지 했다. 전방 땅개로 간 친구들은 편지에서 아침먹고 눈 치우기 시작해서 저녁먹고도 눈을 치운다고 했다. 


그리고 그곳의 온도는 평균 -20도, 부랄까지 딴딴하게 얼어 버릴 것 같다며 징징댄다.


그 혹한의 밤 철책앞에서 북녘땅을 바라보고 있으면 부모님 생각, 친구생각.. 여자생각.. 오만 생각이 난다 하는데 그 중에 으뜸은 여자생각이라며..이빨을 까댄다.


이성에 눈을 빠이팅 하게 뜰 때 My Good friends 11명중에 두어놈은 생긴게 반반해서 꽤나 여자들이 따랐었다.


그 중에 단연 돋보인 건 A 라는 놈이었는데 B란 놈이 힘들게 꼬셔서 데리고 오면 여자들은 순식간에 A에게 관심을 보였고 B는 급실망을 넘어 분노에 치를 떨며 내 저놈(A)을 죽이고 댓돌에 대가리를 박아 나도 죽어야 겠다고 술에 취해 꼬장을 부린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B랑 썸을 타던 여자라도 A를 우연히 만나기만 하면 "잘못된 만남" 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B는 대학때 만나던 여자 후배를 그렇게 쫒아 다니다 (내가 둘의 연애에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결혼을 했고. 그의 아내는 친구들이 인정하는 전형적인 대구 미인이다.


A는 서울에서 결혼을 했는데 더 이상 말은 않겠다만  A의 미적기준은 신비스러울 정도다.


각설하고.


추위가 맹위를 떨칠 무렵.


대대 종합야외전술훈련이 포항시 OO면 어디에서 진행된다고 한다. 


1주일 짜리인가 뭔가 하는 건데 가만히 있어도 추워죽겠는데 이 추위에 밖에서 한댓잠을 1주일이나 자야하고 제대로 먹는 것, 씻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고 부대 밖 야외라 온 천지가 짱박히기 좋아 구타가 만연하여... 훈련 나갔다 복귀하면 개쫄들의 기합은 하늘을 찌른다는 그 종합야외전술훈련! 


개쫄, 쫄들은 이것저것 챙길것들이 많다.


훈련 준비의 주도는 상병급에서 이뤄지지만 괜히 훈련 준비때면 선임들이 빵꾸를 내지 않으려고 예민해 져서 평소보다 더 많은 욕설이 오가고 쭐대치기가 오가고 발길질이 오간다.


개인 무장서 부터 주특기 별로 차근차근 훈련 준비를 한다.


이제 나도 밑에 쫄 한두명을 데리고 꼴랑 그들보다 1개월 2개월 일찍 들어왔다는 이유로 선임티를 내면서 가끔은 죽지 않을 정도의 구타를 시행했다 ㅎㅎ  (가벼운 쭐대치기 정도....)


선임의 일에 방해가 되지 않는 수준에서 어느정도 보좌를 하는 짠밥도 생겼다.


어리버리 파티를 하고 있는 쫄들을 보니 그렇게 한심하고 덜떨어져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잊어 버린 것이다.


나 또한 그들보다 가느다란 짝대기 하나 더 얹은 쫄에 불과한데 말이다.


포항은 부랄이 딴딴하게 얼어 붙는다는 전방 보다야 추위가 덜하지만 바닷가를 끼고 있어 몰아치는 바닷바람에 장 시간 노출되면 안그래도 거친 피부가 더 거칠어져 심하면 쩍쩍 갈라지게 된다.


얼굴은 술을 마신 것 처럼 붉게 상기되고 말이다.


그 땐 항상 고참들의 처방은 "바세린" 이었다.


짬밥이 없으니 고급진 로션,스킨은 무보님이나 애인이 보내줘도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바르지 못했지만 뭉텅한게 무식하게 생긴 바세린은 누구나 발라도 뭐라 하지 않았다. 


손이 터서 갈라지면서 피가 나는 선임이나 쫄도 있었는데 취침전에 고참의 명령으로 바세린을 양손에 듬뿍 바른 후 보급 전피장갑을 끼고 자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며칠을 반복하면 손은 보란 듯이 나아지는데 쫄이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어 조금만 방심하면


다시 손등이 갈라지고 피가 났다.  사회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다.


대대 자체 훈련 검열을 받게 되면 골치아픈 문제가 항상 생기는데 개인 장구류부터 시작해서 공용장비 중에서 항상 정한 숫자가 비어 있는 것이 있었다. 


그러면 책임을 묻기 전에 무조건 숫자를 채워놓아야 하는데 대대 전체가 나가는 훈련이니 타 중대에서 빌려와서 숫자를 맞출 수도 어려운 노릇이라 고참 상병선에서 타 대대 동기에게 임시 방편으로 빌려와 검열을 마친 뒤 다시 돌려주는 일이 비일비재였다.


그게 바로 우리 조상이 미덕으로 여기는 품앗이 에 해당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장비를 타 대대든 타 중대든 어디든 가서 잘 빌려오거나 혹은 긴빠이 (훔치다) 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고참 상병들은 선임들의 사랑을 독차지 했다. 심지어는 빤스까지 빌려오기도 했다.



훈련 D-1 검열과 모든 준비는 끝났고 사소한 지적이 있었으나 큰 문제가 되지 않아 내일 아침 출정을 기다리며 약간의 여유를 가졌다.


겉눈질로 내무실 하리마우 자리에 최적화 된 티비를 힐끔 훔쳐보기도 하였고 눈은 뜬채 내무실 침상에 앉아서 졸기도 헸다.


우리때는 담배가 보급되었는데 일병인가를 달고 서 부터 인가 솔에서 군용 88로 변경되었고 제대쯤에는 디스로 변경된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는 쫄들 데리고 중앙현관 앞 워커 손질 하는 장소에서 차렷자세로 담배로 필수가 있었다. (허락은 받아야 하지만)


검은 때가 반질반질한 활동복 (특유의 붉은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함상화 (아주 질이  떨어지는 운동화) 를 신고 각이 어설프게 잡힌 팔각모를 쓰고 차렷에 가까운 자세로 담배를 피고 있으면 누가봐도 후질근한 모습에 개쫄이구나.. 를 현상할 수 있다.


출정 전날에는 다행이 근무도 없어 나름대로 꿀잠을 잘 수 있었다.


언제 세탁한지 모를 그 꼬질꼬질한 오리털 침낭을 덮고 자는 잠이었지만 그렇게 포근할 수가 없다.


바닥은 난방이 되지 않은 그냥 마룻바닥에 장판이 전부지만 경유로 난로를 떼고 있어서 공기만은 따뜻했지만 많이 건조해서 안전해병이 새벽에 각 내무실을 돌아다니며 바닥에 물을 뿌려주기도 하고 수건을 널어 놓기도 했다.  가습기? 그런건 없다.


그 날 꿈속에서 OO이를 만났다.


학교 후문에 있는 허름한 막걸리집에서 구겨진 양은주전자에 담긴 막걸리를 양은잔에 나눠 마시며 술 기운에 발그레진 OO이의 모습을 보며 즐거웠었다.


나는 그때 학교와 좀 떨어진 곳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기에 아마도 막걸리 두 주전자가 넘어가면 달코롬하고 뜨거운 밤을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르는 기대감에 술을 과하게 권했는지도 모르지만 꿈속에서 만난 OO이는 권하는 술잔을 마다하지 않고 그 섹쉬한 흰 목을 드러대면서 꿀떡꿀떡~ 잘도 들이켰다.


서둘러 계산을 하고 아지매에게 인사를 하고 손을 잡기보단 팔장을 끼고 약간 비틀거리를 OO이를 부축해서 행복한 마음에 집으로 가는 길에 자꾸만 기대오는 OO이의 물컹한 가슴이 환장함으로 다가왔다.


평소에는 걸어서 집으로 갈 거리지만 굳이 없는 돈에 택시를 탔고 "경상공고 뒷편요" 하면서 목적지를 알리고는 OO이를 바라보니 여간 곱지가 않다.


택시에서 내려 집 쪽으로 발길을 옮기니 친구들과 어려번 와봤던 그 길이라 OO이는 내 자취방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왜? 지금 어디가는데?"
"어.. 집에 갔다가 가라. 니 이리 취해가 집에 갈수나 있겠나?"
"치아라.."
"어데... 암것도 안한다 아이가.. "
"빙시가? 치아라"


그러면서도 OO이는 희안하게 골목골목을 기억하고 있었다...ㅎㅎㅎ


그런 찰나...


"OO중대 총기상 15부우우우우운전~~"


이란 구호가 울렸고 속으로 씨발 100번을 외친 채 그 단꿈에서 깨어야 했다. 

아... 이런 개O같은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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