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740기 김동훈

혹한의 밤 2

머린코341(mc341) 2019. 10. 11. 21:27

혹한의 밤 2


조별과업은 언제나 연병장 10바퀴쯤을 중대 전체가 돌게 된다.


구보를 하면서 군가를 부르게 되는데 속도가 빠를 때는 호흡이 올바르지 않아 군가를 부르다 보면 생기침이 계속 튀어나온다.


그런 장면을 보는 선임들은 옆구리와 등을 사정없이 주먹으로 내지른다. 있는 힘껏 뛰면서 군가를 부르는데 예고없이 옆구리를 맞으면 숨이 턱! 막혀  그자리에 주저 않을 것 같은 고통이 엄습한다.


군가는 사가. 그 때까지만 해도 구보시에는 사가를 불렀다.


대대 간부들은 공식적으로 사가를 부르지 말라고 했지만 동도 트지 않은 새벽에 뭔 노래를 부르는 지 키져보는 것도 아니니 그냥 병들 마음대로 사가들을 불러댔다. 


뒷줄에 선 선임들이 구령을 넣고 앞쪽에 선 쫄병들이 목이 터져라 부르면 얼추 리듬이 맞아 대대를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좋은 소리가 나왔다.


사가를 잘 몰라 립싱크를 하다가 걸리는 날이면 뒤에서 옆에서 그대로 내지르는 주먹질을 옆구리 등 뒷통수 가릴 것 없이 뛰는 내내 맞을 수 있다.


짬이 날 때 마다 맞지 않기 위해 사가를 외웠기 때문에 누구보다 사가는 자신있게 불러댔다.


신기한것이.. 처음에는 뛰면서 사가 부르는 것이 힘들다가도 서너 바퀴가 넘어가면 흥이 날 정도로 안정이 되고 힘든것도 모르게 된다.


그게 바로 집단의 힘인 것이다.


구보를 마치고 중대로 복귀하면 땀으로 인해 온몸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얼굴은 땀에 범벅이 된다.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내무실에서 환복을 한 뒤 순서에 따라 무장을 챙기게 된다. 


하리마우 군장은 참으로 정성을 들여서 꾸리게 되는데 별 지시가 없으면 절대로 FM으로 꾸리는 법이 없다.


우리때는 하리마우 인계사항으로 인해 하리마우를 제외한 넘버 2 부터는 직접 군장을 꾸렸다.


당연히 서열별로 군장의 무게는 무거워지며 바닥 바로 위 두어명의 군장은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그나마 이번에는 이걸 매고 행군을 하는 것이 아니니 얼마나 다행인가.


군장을 모두 꾸리고 나면 당직하사의 구령에 따라 주계로 가서 식사를 하고 빠르게 돌아와 그래도 빠진것이 있는지 없는지 철저하게 점검을 하고 연병장 집합을 대기한다.


1주일 이상 야전에서 실시되는 훈련이라 챙겨야 할 것도 많다.


훈련장에 가서 챙기지 못한 것이 나오면 찐빠가 되는데 그 광활한 대지에서 짱박힐 때는 널리고 널렸으니 구타의 수렁으로 빠지기 않기 위해선 본인이 각자 맞은 것을 빠뜨리지 않고 몇 번이나 확인하면서 챙기기만 하는 되는 것이다.


안전해병이 중앙현관 병기대의 시건장치를 풀고 각자의 개인화기를 불출하면  연병장 집합이 초읽기란 소리다. 


살인적인 무장을 어깨에 지고 병기를 움켜잡고 내무실 침상에 걸터 앉아 있다가. 훈련 병사떠나 구령이 나오면 바로 중대 집합장소로 악기 있게 뛰어 나간다.


고참들은 가볍디 가벼운 무장을 한쪽의 어깨에 맨채 철모 턱끈과 단독무장 탄띠를 푼 채 어슬렁 어슬령 집합 장소로 나와 쉬엄쉬엄 도열을 한다.


중대 선임하사가 나와서야 제대로 된 복장을 갖추고 연병장으로 이동을 하니 우리 중대 병력이 탑승할 포차와 포가 견인되어 있는 포차가 대기해 있다.


대대전체가 이동하는 것이니 견인된 포만 해도 18문에다가 지원차량, 병력수송차량, 엠뷸런스, FDC 차량 등을 모두 합치면 40대가 족히 된다.


장비들을 뒤로 도열한 채 대대장님으로부터 훈련에 대한 목적과 성과, 그리고 안전사고 등에 대한 주의사항을 훈시로 듣고 나면 훈련지 이동을 위해 차량에 탑승하게 된다.


쫄병들 자리야 당연히 차량 맨 안쪽이라 간만에 보는 신기한 사제의 모습 (부대 밖의 모습)을 재대로 볼 수 없고 또 대 놓고 볼수도 없다.


그저 스쳐가는 사제의 풍광들이 그렇게 좋을 수 밖에 없었다. 


사제는 공기부터 달랐다. 이른 아침을 맞는 사람들의 "먹고 사는 방법"이 보였으며 각양 각색의 색깔의 두터운 점퍼를 입은 사람들을 보면서 아래 위 모두 통일한 우리들의 칙칙함이 참으로 대조되어 보이기도 했다.


훈련 차량 대열은 훈련지로 가기 위해 본젹으로 이동을 시작한다.


정확한 지점을 밝히긴 어렵지만 개쫄때 방독면을 쓰지 못한 채 둑방에서 좌절했던 그 장소로 간다.


비포장도로의 고갯길을 넘어야 만 대대병력 전체가 숙영할 수 있는 개활지와 포 진지가 나온다.


졸지 않으려고 눈에 힘들 주며 가다 보니 박격포를 어깨에 맨 한 무리의 보병 병력들이 차량이 만들어내는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 쓰며 힘겹게 걸어가고 있었다.


군대는 그야 말로 보직에 따라 지옥과 천당을 맛본다.


내가 원하는 보직을 희망해도 된다는 보장은 없으며 내 의도와는 다르게 전혀 엉뚱한 보직으로도 꽃힐 수 있는게 군대다. 


이 추위에 박격포 포신을 매고 오르는 같은 개쫄 일병을 보니 참으로 안스러워 보였다.


-일반적으로 장비를 다루는 부대가 기합이 쌨으면 쌨지 약하지 않다.


포병이 다루는 장비는 하나같이 육중하므로 사고가 나면 경상은 없다.


한시간 반 여를 달려 고갯길을 넘으니 바짝 말라버린 넓은 강바닥이 개활지처럼 펼쳐저 있었다.


이동 차량이 정지하고 하차 명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각자 역할에 맡게 일사 분란하게 움직인다. 경험해본자는 알겠지만 포차에 한동안 타고 있다가 갑자기 바닥으로 뛰어 내리면 발바닥에 어마무시한 통증이 온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뛰어 내리기 전에 발바닥을 동동 굴리면 그 통증을 잊을 수 있다.


대대가 훈련 진지를 잡기 전에 포병 주특기 병력외 지원 병력은 지휘관이 지시에 따라 주변의 위험요소가 있는지. 적의 척후나 감시조의 흔적이 있는지 주변을 정찰하게 된다.


전시에는 가장 중요한 임무 중에 하나지만 지금은 훈련이고 빈 탄창 꽂아서 나가는 정찰이라 영 시시하지만 뭐든 진지하게 임해야 죽통을 맞지 않는다.


훈련주둔지를 약간 벗어나 산속으로 들어가자 한 무더기의 탄피가 발견되었다. 


탄피 앞이 뾰족한 것으로 보아선 실탄 탄피가 아니라 탄투가 없는 공포탄 탄피로 이렇게 대량으로 버리고 갈 수 있는 자는 미군 뿐이다. 우리는 공포탄 탄피까지도 엄격하게 수거했으니 말이다.


출처:유용원의군사세계


그리고 그들이 먹은 MRE 봉지들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고 내용물을 거의 두고 버린 MRE 안에는 성냥이며 커피며 사탕이며.... 뭐 이런 잡스런 것이 들어있었다. 


미 해병대 얘네 들은 뭐 모아서 버리고 하는 것 없다.


그냥 쓰고는 그 자리에 두고 이동하는 것이 원칙인 것 처럼 (실전에서 누가 MRE 을 모아서 버리겠나..) 널브러져 있다.


미군의 흔적을 열심히 보면서 1시간여의 정찰을 마치고 그 문제의 둑방을 따라 복귀했고 곧 진지 진입로격인 곳으로 이동해서 위장망과 돌을 이용해 임시 위병소를 설치하라는 오더를 받았고 통신병은 유선 가설을 위해 등에 커다랗게 말려 있는 삐삐선을 이고 지고 함께 이동을 했다. 


위장망 설치하는 법도 어리버리 하여 기다란 봉(폴대)으로 철모위로 내리치니 머리가 윙윙 울릴만큼 여운이 크다.


위병소 설치를 마치고 통신이 이어지니 딸딸이로 경계 병력이 가기 전까지 현 위치에서 대기라한 명령이 떨어졌고 선임과 하는 일 없이 멍하니 먼산만 바라보다 저 멀리서 허겁지겁 뛰어 오는 병력에게 위병소를 인계하고 주둔지로 돌아오니 대대장님, 중대장 CP가 다 지어였고 지원 병력이 머물 GP가 막 서고 있었다.


GP설치는 처음 해보는 거라 또 어리버리 하다며 욕 한껏 먹고 여차여차 하여 과업을 끝냈다.


지원 병력을 제외한 병력들은 포반별로 A텐트를 구축하여 숙영을 했으며 탄약고 설치, 지휘소 설치 등으로 여기 저기 불려 갔다 오니 허기가 심해 속이 쓰릴 지경이었다.


포항은 위치상 겨울에도 상대적으로 온화하지만 바닷바람이 있어 재대로 씻지 않고 보습을 해주지 않으면 피부가 터서 갈라지기까지 한다.


쫄병의 겨울은 혹독하지만 이 손바닥이 터서 갈라지는 현상은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다.


바세린을 그렇게 발라대도 다시 찬물에 손을 담그고 겨울 바람에 오랫동안 노출되다 보면 좀 나아지다가도 금새 여기저기가 갈라져서 피가 나곤 했다.


지금 군인들 방한장비를 보면 귀마개서부터 해서 별의 별 것들이 다 있던데 내가 한창 쫄병생활을 할 땐 그런 장비는 없었다.


보급된 방한장비라 해봤자 오래 되어 재 기능을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며 종류도 다양하지 않았다. 귀마개, 넥워머 같은 것은 품목 자체가 없었다.


야간 근무 때 신고 나가는 방한화는 무겁고 크기만 했을 뿐 전혀 따뜻하지 않았고 세탁한지가 오래 되어 신기가 껄끄럽기까지 했다.


훈련기간 내 식사는 주계추레라로 현장에서 대대병력 전체의 식사가 해결된다.


추레라는 포차에 견인을 하고 이동을 시키는데 밥과 국을 할 수 있는 장비가 들어만 들어가 있고 방식은 여전히 스팀으로 쪄낸다고 했다.


나머지 반찬을 만들수 있는 대형 가마솥은 별도의 공간없이 그냥 노지에 그대로 솥단지가 걸리는데 바람이 불면 공중에 날아다디는 것들이 가마솥 안으로 떨어지는 것도 부지기수다.


일별 부식은 대대 잔류인력이 사단 부식고에서 수령을 해서 하루에 한번 훈련장으로 날라준다.


지금 생각하면 저렇게 열약한 장비로 야외서 집단 취사를 하는 군대가 어디에 있을까 궁금할 정도로 낙후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 방법인지 궁금하다.


간부들 식사를 챙긴뒤에 드디어 먹을 차례가 오면 함구에다 반찬들을 그대로 때려박아 고추장 조금 넣고 비벼서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수가 없었다.

속이 쓰릴 만큼 허기가 지니 그렇게 먹는 밥이 꿀맛이 아닐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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