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 참전수기/해병158기 이장원

청룡 1진의 기억 -(22) - R.O.K.M.C 이름으로 -

머린코341(mc341) 2015. 1. 27. 07:46

청룡 1진의 기억 -(22) - R.O.K.M.C 이름으로 -

 

1966년 11월, 드디어 나도 청룡 1진의 마지막 귀국선을 탔습니다.

청룡1진의 귀국은 1966년 7월부터 시작되어 여섯 번에 걸쳐 시행됐습니다.

고참 순 만으로도 이보다 더 빨리 갔을 텐데 오윤진 여단 작전 참모께서
제2대 여단장으로 부임한 김연상 장군의 요청에 따라
1년 연장 복무를 하게 되어 나도 연장 복무의 요청을 받았지만
간곡히 거절한 대신 마지막 귀국진으로 밀렸던 것입니다.

추라이에서 다낭 항으로 나와 승선을 하고,
퀴논으로 내려와 맹호 귀국진을 태우고는 일로 동북 쪽을 향해 올라옵니다.

배는 같은 배였는지 모르겠지만 그 심경이 같겠습니까?
출국 때는 뱃길은 잔잔했던 데 비해 미지의 세계,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공포와 긴장이 엄습했었는데,

귀국 항해 길은 긴장이 풀어진 것에 대한 경고였는지 출국 때와는 달리
뱃길이 심하게 흔들려 구석 구석이 쓰러지고 토하고 하며 고생을 시켰지만

심정이야 오히려 잔잔했던 출국 때와 비교가 되겠습니까?



살아 남아서 돌아가는 길 아닙니까?
비행기 타고 가는 길이 아니고,배 타고 가는 길 아닙니까?

어떤 친구는 자기는 꼭 비행기 타고 귀국한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결국 영현으로 비행기 타고 귀국했다고 합니다.

사실은 그보다 먼저 귀국도 있었습니다.
청룡 1호 작전이 끝난 뒤의 영현 봉송입니다.

이 봉송 길에는 작전 후 훈장 탄 병사에게 봉송임무의 특전이 주어지기도 했습니다.


귀국 뱃길 중간 쯤에 이르렀을 때 그 큰 배가 앞뒤로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여기 저기 토하고 널부러저서 제 때 식사도 못 찾아 먹고
있는 와중에도 육군들 앞에서 해병대가 그들과 꼭 같을 수는 없지요.

“해병대 전원, 상갑판으로 집합!!” - 명령이 떨어집니다.

모두 상갑판으로 올라가 좌우 정렬하고 소리 높여 해병대가를 불렀습니다.

널부러저 있던 맹호부대원들 하는 말
--“미침 놈들 아니야?” “해병대는 역시 다르구만!” -- 인정합니다.

그 때,

그 흔들리는 귀국선 갑판 위에서 악을 쓰던 생각을 떠올리니 지금도 눈물이 핑 돕니다.



배가 부산 부두에 접안을 했습니다.
내려다 보니 환영 나온 학생들이 보입니다.
가족들도 왔다고 했습니다.

손을 흔들었다고 생각이 되는데
온 몸이 전율에 휩싸이고 눈물이 흘러내려 앞이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무슨 순서가 어떻게 진행이 됐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않습니다.
줄곧 눈물을 흘렸다는 기억밖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천자봉의 강요(?)로 귀국선 이야기를 쓰기까지
그 때 이후 그 시간을 돌이켜 본 적이 언제 있었나 싶습니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느닷없이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왈칵 쏟아져 화장실에서 소리없이 끅끅거리다가
한 바탕 세수를 하고 나서야 다시 쓰고 있습니다.



그렇게 귀국하여 출발의 역순으로 포항 부대에 돌아가고
귀국 특별 휴가 열흘이 주어져 집에 갔다 오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제대가 두어 달 남은 월남전 참전 고참병이 되어 있었습니다.
만사에 열외입니다.

182-3기가 신병 배치를 받아 올라왔다고 했습니다.

저녁 식사에 콩나물 국이 아닌 파 국이 나왔다고
중대장님이 순검 때 신참병에게 콩나물 국이 더 좋은지
파 국이 더 좋은지 물었던 기억이 어슴프레 납니다.



제대 한 달을 앞둔 1967년1월 하순, 마지막 상륙 훈련에 참가했습니다(?).
상륙해안이 내 고향인 울산시 북구 정자동 바로 옆의 산하동 해안이었습니다.

이 곳이 고향인 사람들을 뽑아 가적 부대의 첩자로 가적 부대의 위치, 동향을
미리 파악하여 상륙 부대가 올라 오는 즉시 보고를 하라는 임무였습니다.

집에 와서 뒹굴고 있는데 드디어 상륙군이 올라 왔습니다.
가적 부대의 위치 등을 알아 놓았는데,

이 가적 부대가 월남에서 베트콩이 써 먹은 작전을 흉내내어,
즉 가짜 상여를 만들어 관에다 무기를 넣고 요원들은 상제들로 변장을 하고,
상륙군 본부로 접근을 하고 있었습니다.

허겁지겁 산 위로 뛰어 올라가 선두 부대로 가서 이 사실을 알리고
후방 부대는 즉시 이 상여를 공격하라고 연락했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심판단 장교가

“이 작전 기밀이 노출 됐다면 가적 부대 작전은 완전 실패”라고 허망해 했는데

과연 훈련 평가는 어땠는지 모르겠습니다.

 


(청룡 전우님들과 후청룡들께서 청룡의 첫 전투 까투산을 세상에 알려주시니 --)

1967년 2월 28일,

29개월 해병대 복무 후 만기 제대를 하였읍니다.

이나라 전체가 어려웠던 시절을 살아내느라
솔직히 월남 전선을 제대로 반추해볼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이번 청룡 전우님들과 후 청룡 후배들께서
청룡 1진의 첫 전투 까투산을 찍어 올려주시니

들리는 이야기로 베트남 1번 국도를 지나는 한국인들은 이제서야
까투산 앞 넓은 광장에 잠시 들려 카투산을 쳐다보고 지난다고합니다.

이제 직장도 은퇴를하고 이리 저리 잔병도 생기고 기억도 가물거리지만
여기 천자봉 쉼터에 들려 세상 사는 이야기 들으며 지내겠읍니다.



결코 잊을수 없고
인생 전체에 저항력으로 나를 지탱해준

R O K M C - 그 뜨거운 이름으로 지금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2007년 - 월남 파병 42년만에

압구정 오래된 단독 주택 창가에서 해병대 158기 이장원.

 

 

출처 : 파월 제1진 청룡부대 2대대 해병158기 이장원 선배님의 월남전 참전수기

         '아! 청룡이여 제1권 캄란에서 호이안까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