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 참전수기/해병158기 이장원

흔들이 의자 수정본

머린코341(mc341) 2015. 7. 25. 16:24

흔들이 의자 수정본


"흔들이 의자"

 
청룡 제 1진 2대대장이셨던 오윤진 중령(당시)께서 월남 상륙 후 공식적인 여단장의 첫 대대 방문을 준비한 한 아이디어로 시작된 이 의자는 이후 방문자의 계급, 직책, 이름, 방문 날짜를 차례로 써 내려가, 등받이의 앞 쪽과 뒤 쪽,  방석자리와 양 쪽 팔걸이의 안팎을 다 채우고 다리 아래 쪽까지 다 채웁니다. 


내가 마지막 세어 본 방문 VIP의 계급의 별의 숫자가 모두 쉰 몇 개가 된 것을 기억합니다. 


방문자들의 면면을 보면 첫번쨰 상단에

"☆  여단장        이봉출 장군        1965. 10월. 00일.”로 시작합니다.

주월 미군, 월남군 장성들의 방문자가 있고

그리고 그 유명한 주월 미군 사령관 Westmoreland 대장,

주월 한국군 사령관겸 맹호부대 사단장 채명신 소장,

그 다음이 아마도 “☆☆ 주월 미군 야전군 사령관 Larson” 소장.

 

(등받이 부분만 채워졌던 초창기 의자에 앉으신 오윤진 2대대장님 모습.  이후 뒷면 옆면이 증가됩니다.)


“참모장 정태석 대령”도 있습니다 - 이 의자에 이름이 오른 유일한 해병대 영관 장교입니다.


 “시인 모윤숙 여사”도 있습니다.  역시 유일한 민간인입니다.


주월 한국군 위문단장으로 방문했습니다. 


미 해병대 사령관 Beechum 대장, 미 극동 함대 사령관등등이 계속 이어집니다. 


청룡 부대에 방문자들이 오면 모두 2 대대로 안내되어 브리핑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오윤진 대대장이 영어도 가장 능통하고 월남전에서 전과도 가장 좋았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방문자들은 먼저 브리핑 텐트로 안내됩니다. 


상황판 앞 지휘관석 중앙에 이 의자가 놓이는데 방문자의 계급, 직책, 이름, 날짜가 써진 부분을 종이로 덮어 두었다가 앉기 직전에 종이를 떼면 자기 이름이 거기 올려져 있는 것을 보고 모두 놀라면서 기뻐했습니다.

 

 Surprise!  Surprise! 

그러면 브리핑이 이미 한결 부드러워집니다.
 
옆에 배석한 여단장 이봉출 장군도 흐뭇해 하셨습니다.


(공정식 사령관-가운데-과 채명신소장-오른편- 앞에서 브리핑 하고 있는 2대대장 오윤진 중령. 의자 뒷면에 정태석 참모장과 시인 모윤숙씨 이름이 보입니다.)


“Good morning General Westmoreland…….”로 시작하는 브리핑 원고는 대개 해군 사관학교 출신 작전장교가 그 초고를 만들어 야전용 타자기로 쳤습니다. 


원고가 확정된 뒤 브리핑 때 읽기 쉽도록 싸인 펜으로 크게 쓰는 작업을 내가 맡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때는 나도 영어로 그 원고를 거의 외웠고 그래서 영어 군사 용어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이 의자에 쓰는 글씨는 2대대 작전에 근무한 148기 이동철 병장이 썼습니다.


이 병장은 글씨를 잘 써서 작전에서 근무했는데 복장도 깔끔한 고참이어서 이름 위에 붙인 종이를 최종적으로 떼는 역할도 귀국 때까지 맡았습니다.


(1966년 5월? 투이호아에서 대대장의 “흔들이 의자”에 앉은 필자. - 오른 편은 대대장 당번병 164기의 김영만 해병) 

 
1965년 10월9일에 월남에 상륙한 청룡 제1진은 1966년 7월부터 여섯 번에 걸쳐 귀국했는데, 나는 오윤진 작전 참모(후반 4개월은 여단 본부 작전 참모로 보직 변경)의 요청으로 마지막 팀으로 밀려 11월에 귀국하면서 명에 따라 이 의자의 국내 운반 책임을 맡았습니다.


다낭 항에서 승선하여 퀴논에 들러 맹호 요원들을 태운 뒤, 무사히 국내로 반입해 와 1966년 11월18일 부산 부두에서 사모님께 인계했습니다. 


오윤진 중령은 그 때 후임 여단장으로 오신 김연상 장군의 요청에 의해 월남 근무를 일 년 연장하게 되어 귀국하지 못했습니다. 


나보고도 연장해서 일년 더 같이 있자고 했으나 내가 재학중에 입대했기 때문에 빨리 제대하고 복학해야 된다고 하니까 할 수 없이 마지막 팀으로 귀국시켰습니다.


몇 해전 오윤진 장군(해병 소장으로 예편, 해병대 전우회 중앙회 총재 역임) 님에게 들은 이야기는 이“흔들이 의자”가 현재 포항에 있는 파월(청룡?) 기념관에 기증되어 놓여 있다고 합니다.


장군님한테 들은 후일담으로, 의자를 보내면서 사모님께 "운반해 갈 짐이 있으니 부대에서 쓰리쿼터를 얻어 가지러 오라”-- 고 전갈을 보내 사모님은 아마도 냉장고와 텔레비전등 그 당시 귀하고 귀한 물건들을 보내나 보다 하고 기대에 부풀어 쓰리쿼터를 얻어 부산 부두까지 왔는데 내가 삐그덕 거리는 나무 흔들이 의자 하나를 낑낑대면서 넘겨드리자 무척 실망하고 야속해 했다고 합니다. 


오장군님이 그런 물건을 보내실 분은 결코 아니었지만 그때는 월남에서 흔히 그런 물건들이 더러 오던 때라 혹시나 하고 기대했었다고요.


포항 가셔서 역사관에서 이 의자를 보시면, 이런 사연이 얽혀 있음을 기억해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언제 포항 가서 다시 한 번 앉지는 않아도 옛 전우를 만나듯 그 앞에 서서 사진이나 한 번 찍을 기회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 의자는 현재 "포항 역사관"에 이렇게 기증되어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40 여년이 지나면서 기증된 이후에도 여러가지 풍상을 겪으면서 이런 모양이 된 모양입니다.)


출처 : http://blog.daum.net/intesa8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