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역사/해병대 전통·비화

해외 출전<1편> - 역사적인 캄란만 상륙

머린코341(mc341) 2016. 8. 27. 06:54

해외 출전<1편> - 역사적인 캄란만 상륙


  10월 3일 부산항에서 장도에 올랐던 청룡부대 장병들은 그로부터 6일 후인 10월 9일 남부베트남 최대의 요항(要港)인 캄란만에 상륙을 개시했다. 그 캄란만은 과거 베트남을 침략했던 외국 군대가 상륙했던 유서 깊은 항만이었다.


  상륙개시 시간은 9일 아침 8시. 그 날 캄란만 부두에는 주월 한·미 외교사절 일행과 월남군 당국자 등 많은 환영인사가 나와 태극기와 청룡부대기를 앞세우고 늠름한 모습으로 상륙하는 장병들을 열렬히 롼영해 주었고, '카이저'호에 승선해 있던 장병들은 맹호부대 선발대 요원들이 먼저 퀴논항에 상륙하게 되는 바람에 그 이튿날 아침 별도로 상륙을 했다.


  청룡부대의 첫 주둔지는 캄란만 북쪽 4마일 지점에 있는 미군기지였다. 그 기지에서 청룡부대는 미 101공수사단과 502공수보병대대 등과 임무를 교대할 준비를 갖추면서 비행장을 비롯, 항만선 전술책임지역 내의 각종 군사시설(미군)과 1번 도로 및 철도 등을 경비하는 한편 지역 내의 게릴라 소탕전을 수행하는 총체적인 임부를 부여받았는데 당시 그 지역 일대에는 각 지방의 전략촌을 위협하고 있는 상당수의 적이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캄란지구의 진술책임지역을 인수하게 된 청룡부대는 연합군의 계획지침에 따라 1단계 목표인 여단본부 기지에 대한 방어편성과 각 중대단위 기지의 구축을 서두르는 가운데 접적활동과 대민지원사업을 전개하기 시작했고, 그 1단계 목표가 달성되면 평정(平定)이 된 지역을 월남정부군에 인계하고 미평정 지역으로 이동할 계획이었는데, 결과적으로 그 해 12월 중순경 캄란지구로부터 투이호아지구로 북상했다가 1967년 10월 하순경에는 다시 호이안지구로 이동(북상)했다. 그리고 그러한 목표달성을 위해 청룡부대는 미·월군과의 합동작전도 수행했는데 당시 월남군의 1군단 관할지역인 북부지방에는 미 해병3상륙군 사령관의 통제하여 미 육군1사단과 3사단이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고, 월남군 2군단의 관할지역인 중부에는 미 육군4사단과 제1기갑사단 예하의 1, 2여단 및 25사단 예하의 2, 3여단이, 남부에는 월남군 3군단과 4군단이 배치되어 있었다.


  한편 연합군의 작전지원을 위해 해상에서는 항공모함과 전투함 등 미 7함대가 주축이 된 160여 척의 함정이 제해권을 장악한 가운데 활동하고 있었으며, 공군은 미 제7공군과 7함대 예하의 전술공군 및 태국에 기지를 둔 미 13공군의 일부가 제공권을 장악한 가운데 지상군의 작전을 지원하고 있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傳統과 秘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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