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역사/해병대 전통·비화

해외 출전<1편> - 이인호 대위의 산화현장과 보도비화

머린코341(mc341) 2016. 8. 28. 03:26

해외 출전<1편> - 이인호 대위의 산화현장과 보도비화


  재건작전을 끝마친 청룡부대는 그 다음날부터 8월 17일까지 역시 투이호아 서남방 일대에서 해풍작전이란 이름으로 1번 도로를 개척, 확장하는 한편 촌락의 재건과 잔적 소탕 등 일반적인 임무와 군사시설을 보수, 확보하기 위해 계곡의 교량과 도로를 복구하는 미군 공병대의 활동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런데 이 작전기간 중인 8월 11일 3대대 정보장교 이인호 대위는 수일 전 3대대에서 체포한 2명의 베트콩 용의자들(여자)이 가리켜 준 베트콩 은신처(동굴비트)를 직접 수색하던 중 적이 던진 수류탄의 폭발로 그 동굴 속에서 참담한 최후를 마쳤다. 그 동굴은 밀라이부락의 대나무밭 속에 있었고, 높이가 약 1.5미터 폭이 약 1미터 가량 되는 그 동굴의 입구는 매우 협소하여 철모를 쓰고서는 들어가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다음은 그 동굴 수색전의 전말(개요)이다.


  그 날 오후 3시경 그 2명의 여자(베트콩 용의자)를 데리고 여단본부 작전에 들렀다가 정훈참모실 카메라맨 1명(김제업 상병)과 월남군 통역 1명을 대동하고 헬기편으로 9중대의 섹터인 동굴현장으로 출동했다. 그 현장에는 9중대 1소대(장, 권기옥 소위)가 경계에 임하고 있었고 9중대에서 차출한 다른 1개 소대는 외곽지대를 경비하고 있었다. 현장에 도착한 이 대위는 먼저 동굴 내부에 총탄세례를 퍼부은 다음 1소대장 권기옥 소위로 하여금 수류탄 몇 개를 동굴 내부에 집어 던져 폭발시키는 등 필요한 사전조치를 강구한 연후에 핸드마이크를 휴대한 월남군 통역으로 하여금 동굴 내부를 향해 "즉시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몰살을 시켜 버리겠다"고 소리치게 했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1소대 선임하사관 김찬옥 하사를 굴속으로 들여 보내 후렛쉬로 내부를 수색해보게 했으나, 그 결과 방망이 수류탄 3개와 두어 개의 배낭과 탄띠 등을 수거해 왔을 뿐 다른 적정이 없다고 하자 내심 그 여자들의 제보가 전혀 신빙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던 이 대위는, 자신이 직접 그 동굴을 수색해 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됨으로써 그를 월남전의 영웅으로 받드는 살신성인의 신화가 창조되었다.


  한편 이 대위가 변을 당하자 9중대 1소대장 권 소위는 이 대위의 시신을 수거할 방법을 궁리한 끝에 그 2명의 여자들을 허리에 밧줄을 묶어 굴 속으로 들여 보냈는리 잠시 후 그 동굴 속에서 그 여자들과 내부의 베트콩이 주고 받는 말소리가 들렸고, 그런 후 20~30분이 지나 그 여자들은 판초에 싼 이 대위의 분해된 시신을 밖으로 끌고 나왔다.


  권 소위가 그 여자들의 허리를 밧줄로 묶었던 이유는 그 굴 속에서 잠적해 버릴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었고, 동굴속에서 지껄이고 있던 말들은 "죽은 사람 시체를 가지러 들어가니 죽이지 맡라" "뭐라구? 너희들이 밀고를 한 것 아니야? 그렇지?" "아니야 우리가 밀고하지 않았어"하는 따위의 말이었다.


  그런데 그 여자들이 수거한 시신을 보니 양쪽 팔이 없기에 권 소위는 그 여자들을 재차 들여 보내 떨어져 나간 두 개의 팔을 수거해 왔는데, 폭사를 당한 이 대위의 분해된 얼굴은 그 형상을 알아볼 수가 없었고, 그가 착용하고 있던 방탄자켓도 파열이 되고 복부에도 끔찍한 상처를 입고 있었다. 그리하여 시신을 수거한 권 소위는 매드백을 요청하여 시신을 후송한 다음 동굴 내부의 적을 소탕하기 위한 최종적인 수색을 위해 3.5인치 로켓포 사수로 하여금 동굴 옆구리에 포탄을 발사케 하여 구멍을 뚫은 다음 그 구멍 속으로 약 반드럼 가량의 휘발유를 부어 놓고는 월남군 통역으로 하여금 휘발유에 불을 붙이기 전에 밖으로 나오라고 종용을 했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권 소위는 전과(무기) 획득을 위해 불을 지르지 않고 일몰로 인해 그 동굴의 입구와 옆구리의 구멍을 돌로 막아 놓고 그 현장에 매복을 하고 있다가 그 다음날 아침 그 굴을 파헤치는 작업을 진행했는데, 그 결과 ㄷ자 형으로 된 그 굴 막창에서 질식사한 베트콩 정치군판(대위) 1명과 그 군관의 전령과 여자 베트롱 1명 등 3구의 시신을 발견한 것 외에 대나무로 받쳐 놓은 막장 천장에 숨겨져 있는 칼빈소총 1정과 약간의 수류탄 및 실탄 3000발을 노획했다.


  다음은 보도와 관련된 비화이다. 이인호 대위의 전사 소식에 접하게 된 여단본부 정훈참모 박영욱 대위는 주월사 보도실에 보낼 기사를 구상 중에 있었으나 다음과 같은 규제를 받고 있었다. 즉 첫째는 주월 미군의 보도규정에 준한 국방부 보도 규정에 따라 장교가 전사했을 경우 유가족들에게 전사통지서가 전해지기 전에는 보도를 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는 국방부의 보도규정 때문이었고, 둘째는 장교가 전사했을 경우 주월사 감찰실에서 현장 검증을 하는 등 규정에 입각한 조사를 실시한 연후에 보도를 하게 돼 있었으므로 그만큼 장교의 전사와 관련된 보도에는 어려움이 따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처지에 놓여 있던 정훈참모 박 대위는 바로 그 다음날 오후 뜻밖에도 여단본부를 방문한 한 사람의 외신기자(AP인지 UPI인지 미상)를 대하게 되자 눈이 번쩍 뜨였다. 무엇인가 특종감을 노리고 한국 특파원들은 오기를 꺼려하는 그곳까지 찾아온 그 외신기자를 맞이하게 되었던 그는 "바로 어제 청룡부대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고 운을 뗀 다음 "베트콩이 숨어 있는 동굴을 수색하고 있던 3대대 정보장교 이 대위가 뒤따르는 부하대원을 의식하고 굴러오는 수류탄을 가슴으로 덮쳐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고 하자 그 기자는 크게 감동을 하여 여단본부 통신대에 있는 ssb(장거리 단파무전송신기)를 이용해서 사이공에 있는 자스파우(외신기자구락부)에 '살신성인'에 초점이 맞춰진 이 대위의 전사소식을 송고함으로써 고인의 죽음을 그처럼 값진 죽음으로 빛나게 했고, 그 기사가 외신을 타게 되자 어쩔 수 없이 그러한 규제가(사실상) 철폐되어 국내 신문에도 일제히 보도가 됨으로써 고인을 월남전의 영웅으로 받들게 하는 고무적인 계기가 조성된 것이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傳統과 秘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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