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740기 김동훈

인간개조의 용광로-1

머린코341(mc341) 2019. 9. 22. 18:24

인간개조의 용광로-1


94년의 여름은 혹독했다. 


폭염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군인 전체가 긴장을 타며 지낸 때가 바로 94년 여름인데 이 해 김일성이가 갑자기 죽었다.


실무에 와서 들은 내용들은 나중에 적는다.


입영통지서를 받은 즈음 부모님께 "갑작스러운 입대" 소식을 알렸다. 으레 그 흔한 육군이겠지.. 생각했던 아버지는 "해병대" 라는 소리를 듣자 뒷골을 잡으셨다.


어머니는 하나뿐인 아들이 해병대라니... 해병대라니.. 를 연신 외치며 놀랄 "노"자를 연발하셨고. 아버지는 당신이 겪은 그 곳에 대해 딱 한마디로 정리하셨다.


"닌 그 생활 못한다! 내가 알아볼테니 1학년이나 마치고 영장 나오면 육군으로 가라!"
"아부지.. 시시한 육군 보다 군생활 보람차고 활기차게 (훈단 입소하는 시점부터 후회했지만...) 보내야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남들 다 하는 군생활 저라고 못할 이유 없으니 저는 갈껍니다!"


아부지는 결의에 찬 내 모습을 보더니 기가 막히는 지 한참을 가만히 계시더니 한가지 TIP 아닌 TIP을 주셨다.


"탈영하면 절대로 집으론 오지 마라"


무슨 TIP이 탈영 후의 행동인지 의아해 했지만 다 큰 자식 고집 꺽는게 힘든 일임을 아시며 암묵적인 동의를 하셨고 어머니는 계속 절규에 가까운 울부짖음으로 세상이 무너지는 혼돈의 모습을 보여주셨지만..


아버지의 다그침과 여동생들의 만류로 인해 이내 평정을 되 찾으시고 아들 군에 보내는 준비를 하셨다.


뭐 딱히 어머니가 준비할 것은 없는데도 말이다. 그 떄 부터 거의 사육이 시작되었는데 눈 뜨면 처음 묻는 말이 "뭐가 먹고 싶냐?" 였다.

난 그 짧은 시기 이 세상의 산해진미는 모두 맛보았을 것이다.


아부지는 출근하시면서 항상 얼마의 용돈을 올려 두시고 가셨다.


이게 술값인데 친구들 만나서 얻어 먹지만 말고 한번 낼때는 시원하게 낼 줄도 알아야 사나이고 "해병대" 라면서 적지 않은 돈을 한동안 놓고 가셨다.


그 돈으로 이어지는 유흥에 흠뻑 빠지다 보니 어느 새 8.24일은 다가오고 있었고 당일날 아침 출근하는 아부지는 한결같은 TIP을 알려주시고 나가셨다.


"탈영하면 집으로 오지 마라!!"


동행할 친구들과 버스터미널에서 포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떠나는데 뒤를 돌아보니 어머니가 울면서 버스를 쫒아오고 계셨다.


그 순간 눈물이 왈칵 났지만 손 한번 크에 흔들어 주고 버스의자에 깊이 몸을 뉘였다.


포항에 도착하여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광란의 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택시를 타고 훈단으로 갔다.


이제 들어갑니다.. 라고 부모님께 마지막으로 전화를 드리고 까까머리 입영대상자와 그의 가족들과 애인들이 가득한 곳에서 난 친구들의 헹가래를 받고 부모님이 계신 방향으로 큰 절을 드리고 동기가 될 놈들과 함께 손에 손을 잡고 환송객들과 멀어질 즈음..

그 때 부터 지옥이 시작되었다.



헬멧을 힘껏 눌러쓴 교관들의 입에서는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개썅욕이 난무했고 오리걸음/대가리박아 는 계속 반복되었다. 날씨는 그 날도 여김없이 폭염이었고 입고 간 티셔츠는 땀에 젖고 마르고 다시 땀에 젖고를 반복하니 새하얀 소금끼가 가득했다.


바로 그 죽음과도 바꾸겠다는 "해병 훈련단" 의 길고 긴 첫날이 시작되는 것이다. 사열대를 앞에 두고 약 500명의 까까머리 예비해병대 들이 모였다. 적국 각지에서 100% 지원입대로 모이니 이건 뭐 팔도사투리가 다 썩인다. 


고참 교관으로 보이는 양반이 사열대에 올라가서 뭐라뭐라 하는데 옆에서는 다른 교관들이 계속 썅욕을 날리고 있었다. 자연스레 긴장이 된다. 업압이 목전으로 다가오면 두려움이 인다. 그 두려움 끝에는 후회가 인다.


내가 미쳤지. 내가 그 모병관의 꼬임만 아니면 지금쯤 개강을 준비하며 니나노 판을 벌렸어야 하는 건데 이 뜨거운 뙤약볕에 서서 난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이거 씨8


목이 심하게 말랐다. 입술이 하얗게 탄다. 시원한 콜라 한캔 했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고 햇볕을 막아줄 그늘 한점 없는 광활한 연병장이 한없이 미웠다.


앞으로의 일정은 대략 이렇단다...


1.사단내에 있는 해군 병원으로 이동하여 신체검사를 다시 받고
2.신체검사의 결과를 바탕으로 적합자와 부적합자를 구분하고
3.마지막으로 "난 죽어도 못하겠다" 하는 놈들을 선별하고
4.군번을 받고 초도피복 및 장구류를 받게 된다.


군번이 나오면 이젠 빼도 박도 못하는 오롯한 해병이 된다.


3일 간의 과정을 마치고 마지막 날 점심식사 후 연병장에 모인 예비해병들은 흡사 난민과 같았다. 제대로 씻지 못해 땀내가 진동하고 티셔츠는 소금꽃이 하얗게 피어났고 입고 있는 바지의 무릎팍 부분은 흙으로 가득하다.


드디어 집으로 갈 사람들이 호명되었다. 난 혹시나 내 이름을 부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30~40명의 명단에 나는 없었다. 몸에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다시 한번의 탈출 기회가 주어지는데 "죽어도 못 할 놈은 손들고 나와라" 하는 시간인 것이다.


또 난 몇번의 엉덩이 들썩임을 느꼈다. 하지만 그간 얻어 먹은 술이며 친구들 학번동기들의 거나한 환송파티의 주역이 다시 돌아오는 상황을 상상해보니 이건 너무나 민망한 일이라. 마음을 고쳐먹고 해병이 되기로 결심했다.


밖으로 나간 놈들은 다시 훈련교관들이 1차로 설득을 하고 2차로 중대장이 설득을 한다. 그 설득에서 완강하게 포기를 선언하는 놈들이 20명 남짓 되었는데 이미 신체검사에서 떨어진 한 놈이 난동을 부린다. 자기는 죽어도 해병대를 가야 겠으니 받아 달라고 말이다.


신체검사에서 부적합자니 하자 있는 부분을 고치고 오라고 타일러도 말을 듣지 않더니 나중에는 개쌍욕이 난무하고 하얀 장갑이 휙휙 날아다니길 몇차례 하더니 통곡을 하는 놈을 교관 몇몇이 데리고 사라졌다.


그 후론 다시 그 놈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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