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740기 김동훈

인간개조의 용광로-2

머린코341(mc341) 2019. 9. 22. 18:26

인간개조의 용광로-2 


가입소 기간의 피날레는 연병장에서 최초의 보급품을 받게 된다.


지금은 상륙지원단으로 이동하여 카트에 보급품을 직접 담아 오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때는 한줄로 쭉 서서 사열대 앞을 지나면서 본인의 치수와 키를 얘기하면 하나씩 나눠 주던 방법이었다.


딱 맞게 본인이 입어보고 고른다는 생각은 아에 할 수 없었고 치수를 말하면 그냥 던져주는대로 받아와야만 했다.


나중에 입어보고 맞지 않으면 동기들끼리 서로 바꾸어서 입곤 했다.


보급품을 받아 연병장에 서서 교관의 지시에 맞게 입고 있던 모든 옷을 홀딱 벗는다.


군용 빤스부터 해서 모든게 이제 군용이 찍힌 제품이다. 그 때 당시 빤스의 브랜드는 목련이었다. 그것도 아주 새하얀 순면빤스..


물론 며칠만 지나면 누런 빤스로 탈바꿈 되기는 하지만 3일 내내 입고 있었던 속옷을 갈아 입으면 약간의 개운함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곤 죽을때 까지 잊지 않을 군번이 할당되고 잘 들지 않은 바리깡으로 새파랗게 깍여버린 머리를 만지면서 신기하서 히히덕 웃고는 했다.


훈단에서는 해병대의 특징인 상륙돌격형의 헤어스타일이 아닌 속세를 버리고 불교로 귀의하는 스님의 머리마냥 완전한 까까머리다. 한동안 그 가칠함이 어색하지만 금새 잊혀진다. 


잘 맞지 않는 전투복, 무거운 세무워커, 휙휙 돌아가는 폼나지 않은 팔각모. 딱 봐도 "자세" 와는 거리가 먼 초보 햇병아리 해병이 된 것이다.  병사로 돌아오면 그간 입었던 옷을 종이박스에 담아 집으로 보낼 준비를 한다. 박스 안쪽에 편지를 쓴다.


"겁나 덥고"
"겁나 배고프고"
"겁나 힘들어요"


라고 쓰고 싶지만 걱정하실 부모님을 고려해서 "아주 건강하게 잘 있고 멋있는 해병이 되겠다" 는 맘에도 없는 소리를 써서 포장을 하면 회수를 해간다.


*휴가를 와서 동생한테 얘기를 들으니 흙투성이 바지와 소금꽃이 하얗게 핀 남색 티셔츠를 보고 어머니는 한참이나 우셨다 한다.


그 당시 제일 먹고 싶은게 뭐냐고? 음식이 아닌 물이었다.


94년 사상 유래없는 폭염에 가뭄에 포항은 바싹바싹 타들어 갈 정도로 더웠다.


그러니 군부대로 물 사용이 제한될 수 밖에 없었고 갈증을 참아야 하는 것도 훈련의 일환이다라고 주장하는 교관들은 우리들을 연병장세 두어시간을 그대로 세워 두고 사열대 앞에서 겁나 시원해 보이는 캔콜라를 따서 마시는 퍼포먼스까지 연출했다. 


어떤 음식도 아닌 물이 그렇게 마시고 싶어 배고품을 달래줄 식사시간에는 밥보다 츄라이를 닦으면서 몰래 마실 수 있는 수돗물이 우선이었다. 물론 지나치게 받아 먹다간 하얀색 장갑에 피가 튀기도록 귓싸대기를 맞는다.


하루는 총원이 어김없이 연병장에 도열해 있는데 연병장 옆 목욕탕 (이름은 왕자목욕탕 ㅎ) 근처에 있던 동기들이 목마름을 참지 못해 몰래 목욕탕으로 들어가 어제 수백명이 담궜다 나온 탕속의 물을 마시다가 교관에게 적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나도 참지 못해 목욕탕으로 질주할 기회를 찾는 순간 교관에게 동기들이 걸렸고 정말이지 처절하게 응징당하는 모습을 똑똑히 목격하게 된 사건이었는데 얼마나 갈증이 심하면 그 더러운 탕속의 물을 마실 생각을 할까? 하는 측은한 생각도 들었지만 나도 마실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 그때는 더러움 보다는 참지 못할 정도의 갈증을 달래야 하는 생존의 문제였을 것이다.


그리고 또 참기 힘든 것 중에 하나는 변비였다. 입대 하기 전에는 변비를 모르고 살았으나 훈단 입소 후 1주일이 지나도 대변을 보고 싶은 욕구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매끼마다 밥을 먹어 소화는 될 텐데 대변이 나오지 않으니 대장이 그 많은 대변을 어찌 품고 있는지 의문이 갈 정도다.


1주일이 지나면 교관이 하얀 알약을 몇알 씩 주는데 이걸 먹으면 신기하게 막혔던 대변이 푹발하게 되고 변비는 언제 그랬냐는듯 말끔하게 사라지게 된다.


훈단에서의 훈련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상이 가실 것이다. 사제의 물을 빼기 위한 훈련의 강도는 스무살 까까머리 초년생들이 받아 들이기 힘들 만큼 빡시고 한순간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 교관의 욕설과 귓방망이는 정신을 빼 놓기 충분하다. 6주의 기간동안 아래와 같은 훈련을 받았다.


1.제식훈련 (군가교육)
2.총검술 및 집총체조 국군도수체조
3.유격훈련
4.침투훈련
5.기본공수훈련 (막타워 타기 뒤질것 같은 11M)
6.수류탄 투척훈련
7.공용화기 사격훈련
8.개인화기 사격훈련
9.화생방훈련 (본인의 머리를 벽에 박으며 절규하는 동기를 목격했다)
10.천자봉 정복
11.완전무장 전술행군
12.상륙장갑차 탑승훈련
13.각개전투
14.참호훈련
번외. 물 안마시기 훈련


대략 이정도 쯤인데 여기서 단연 가장 처절하고 힘듦을 꼽자면 개인적으로 9번과 10,11번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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