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740기 김동훈

실무생활-1 찰나의 외박

머린코341(mc341) 2019. 9. 29. 08:04

실무생활-1


찰나의 외박을 마치고 복귀하였다.


이제 후반기 교육도 며칠 남지 않았고 동기들과도 정말로 헤어질 시간이다. 파라다이스진해의 생활도 종지부를 찍고 끔찍하다는 해병대 실무생활을 앞두고 있었다. 당시 교관이 나를 잘 봤는지. 어느곳으로 가길 원하냐고 물어봤다.


당연히 집과 가까운 포항1시단이라 대답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치장소가 나왔는데 원하던데로 포항1사단으로 정해졌다. 


진해에서의 마지막밤을 조용히 보내고 동기들의 연락처를 모두 적은 다음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대여섯명과 함께 배치를 받은 포항으로 드디어 출발을 할 시간이다. 인솔자에 의해 버스로 이동하여 훈단이 있는 포항으로 다시 왔다.


서문을 통과하여 사단 어디에서 대기를 하고 있으니 이제 소속 부대가 정해졌다. 각 소속부대에서 짚차로 인솔자가 온다.


난 포병연대로 정해졌고 짚차를 타고 연대로 가는데 천국의 생활을 맛 보았으니 지옥도 맛 볼것이다. 하지만 사람 사는곳이니 탈영할 생각말고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군생활 열심히 해라. 하는 조언인지 협박인지 모를 말을 해 주었는데 그 말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던지.. 짚차는 사단의 어느 구석을 돌고 돌아 포병연대 사무실 앞에 우리를 내려두고 돌아갔다.


연대 인사사무실에 앉아 있으니 각 대대의 인사병이 우리를 인솔하러 왔다. 하나 둘 팔려가는 동기의 손을 잡고 눈인사를 나눴다.


잠시 후 병장 계급장을 단 선임이 들어오더니


"김동훈! 김동훈이 누구야?"
-이병 김.동.훈!"
"따라와!"


인상 한번 더럽게 생겼다. 병장 계급장에 각잡힌 팔각모. 해병대의 화려한 츄리링을 입은 선임은 뒷짐을 지면서 앞서가기 시작했고

나는 더블백을 매고 허겁지겁 쫒아가기 바빴다. 앞서가는 선임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질문을 날린다.


"고향이 어디야?"
-"네 경북영양입니다."
"뭐하다 왔어?"
-"네 대학다니다가 왔습니다."


어둑해지는 길을 따라 도착하니 대대주임원사 실 이었다. 병장 선임은 돌아가고 일병 선임이 주임원사실에 있었는데 이 양반은 인상이 더 거시기 하다.  분위기 파악을 하려고 이리저리 둘러보고 선임을 쳐다보는 순간 바로 개썅욕이 날라왔다.


"씨**이 뭘봐"
"아.....아..아입니다"
"눈동자도 마음대로 굴리지 마라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소리 낮춰 개**야!


기합이 들어 소리를 지르니 일병 선임은  깜짝 놀라 소리 낮추라고 속삭인다.. 하긴 나와 같은 쫄병이니 쫄병이 쫄병 기합잡는다고 선임들한테 아구창 날아가는게 겁이 났다 보다.  그렇게 한참을 대기하다 다시 병장 선임이 들어왔다. 


"따라와"


선임을 따라 병사로 들어가니 입에서 "헉" 하는 소리가 절로 났다. 언제 지었는지 모를 병사. 구멍3개짜리 시멘트 블럭으로 쌓아 올린 낡은 건물! 게다가 천장은 얼마나 높던지. 숨이 막혔다. 이곳에서 남은 2년 수개월을 여기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날 것 같이 암담했다. 


순검청소를 하는 모양이었다. 쫄병으로 보이는 선임들은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딱 봐도 한눈에 떼고참으로 보이는 선임들은 나의 등장에 관심도 없이 tv에 열중하고 있었다.


중대 사무실로 가기전 몇몇 내무실을 지나가면서 힐끗 내무실 풍경을 보니 살벌함에 살이 떨려왔다. 왜 그리 하나같이 인상이 험하고 덩치가 크고 다들 한가닥 하는 것 처럼 보이는지...  또 눈물이 날뻔 했다.


병장 선임을 따라 중대 사무실로 들어가니 안전하사가 있었다.  안전하사의 지시에 의해 더블백을 모두 풀었다. 보급품이며 온갖 잡동사니가 쏟아져 나왔고 활동복으로 환복한걸 보더니 병장 선임이 기가 차서 웃는다.


"야 너 바지 옆에 그거 뭐야?"


활동복에 매직으로 크게 ROKMC를 적어뒀는게 눈에 띄었나 보다. 쫄병이 기합빠져가지고 활동복 하의 옆에 매직으로 큼지막하게 적어 놓은 모습이 기가 막혔나 보다.


"짐 다 들고 따라와"


중대 사무실을 나와 3내무실 이라고 적힌 곳에 들어가니 침상위에 길게 누운 선임(한눈에 봐도 떼고참 같이 보임)이 다짜고짜


"너 뭐야?"


하고 인상을 쓰며 묻는다.


"네.. 대기병입니다"
"대기병이면 다야?"
"아...아닙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제대를 불과 1주일을 앞둔 고참중에 떼고참이었다. 상륙돌격형의 머리는 온데간데 없고 상고로 이쁘게 머리가  깍여져 있고 복장은 마음대로 이며 순검청소를 하는 중에도 침상을 가로로 길게 누워 TV를 시청하는 걸 보니 속칭 해병대 5대 장성인 해병병장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가 새삼느끼게 되었다. 나를 인솔해 왔던 병장선임이 나를 보며 실실 웃더니


"니는 오늘 밤 죽었어"


하는 말을 날린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말로만 듣던 해병대 쫄병 생활이 시작되는 구나. 자대 배치 받자 마자 야음에 옥상이나 후미진 곳으로 끌려가 개 맞듯 맞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두렵기 그지 없었다.


한참 청소를 하던 이별,일병,상병 선임들은 침상 중앙에 앉아 있는 내가 걸리적 대는 듯 인상을 쓰며 눈짓으로 청소 방해되니 비켜 하는 눈짓을 계속 보내왔고 나는 어쩔 줄 몰라 똥마려운 강아지 마냥 나대는 꼴이 얼마나 웃겼을까..


내가 나중에 떼고참이 되어 앗세이(신병)을 받아보니 예전 내 생각이 나서 웃었던 적도 있다.


순검 청소가 마무리 되자 안전해병 완장을 찬 선임이 각 내무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사전 점검을 한다. 


안전해병 이란 타이틀은 당직사관(장교),당직하사(하사관),안전해병(병) 순으로 일과 후 병사 주위의 위험요소를 확인 및 제거 하고 야간 근무자 순찰들의 업무를 맡게 된다.


아침에 일과가 시작되면 밤새 안전해병 역할은 한 선임은 아침식사 후 내무실에서 오침을 취한다.  숨소리도 내기 힘든 해병대 실무 생활의 첫 순검. 훈단때보다는 덜 경직스럽지만 동기들과 함께 있는 곳과 중대 바닥(신병)인 내가 있는 곳은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긴장이 되어 주먹을 쥔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당직사관이 여러 내무실을 돌고 내가 있는 내무실에 들어와서 나를 유심히 보더니 당직하사에게 지시를 한다.


1.아침에 기상하자 마자 머리를 다시 깍아 줄 것.
2.내일 중대장님 신고 연습 시킬 것.


20~30분간의 순검이 끝나고 취짐을 알리는 구령이 들려오기 무섭게 내무실 제일 바닥(제일 후달리는 기수)이 앞으로 튀어 나가더니


"***해병님 소등해도 좋습니까?"
"그래 소등해~"
"악! 소등하겠습니다." 금일의 막걸리. 금일의 막걸리는 00,00 00,00 입니다. 
 (금일의 막걸리는 암구호를 얘기한다) 


"아우~~~~ (늑대 우는 소리 인듯 하다) ***해병님 중대 떠나 0일전 사단떠나  0전 입니다"
 *** 해병님 안녕히 주무십시오. ***해병님 안녕히 주무십시오 ***해병님 안녕히 주무십시오.


 (해병대는 병장님,상병님 이란 호칭을 쓰지 않는다. 계급을 부르는 대신 상대가 나보다 선임이면 김동훈 해병님 김상식 해병님 이렇게 뒤에 해병을 붙히게 되고 후임이면 이름만 부르게 된다. 쫄병이 다정다감하게 동훈아..상식아.. 이런  이런 호칭을 쓰다가 걸리면 그대로 죽통이다. 대대장님 및 모든 장교들도 동일하게 이름뒤에 해병 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게 된다.)


드디어 내무실의 불이 꺼지고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는 듯 했다.


잠은 오지 않고 작은 소리에 귀만 바짝 열려 있다. 누군가가 나직히 부르면 용수철처럼 튕겨나갈 준비를 하고 대기했다.


대기병이 첫날 부터 선임이 불러도 대답않고 쳐잤다가는 군생활 내내 꼬일 수 있으므로 몸의 온갖 세포를 다 열어 선임들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대가 얼마 남지 않은 내무실 오장,하리마후 (일본어 같다. 내무실의 서열 1위의 선임)은 작은 랜턴을 켜서 책을 읽고 나머지 인원들은 하늘을 보고 정자세로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눈을 감으니 남은 군생활이 막막하게 다가왔다. 잘 해낼 수 있을런지도 걱정이 되고 또 얼마나 두들겨 맞을까 걱정이 되고 언제 일병을 달고 언제 상병을 달고 언제 병장을 달아 제대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과 유년시절,중,고등학교 시절이 주마등 처럼 스쳐가고 입대하기전 엄청난 에피소드를 남긴 우리 지은이 (학번은 동기였지만 한살이 많은 여자애였다.


이름은 박지은 이다)는 지금쯤 뭘하고 있을까.. 마지막까지 미친듯이 술 빨았던 친구들은 뭐하고 있을까?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내 걱정에 한숨을 쉬고 계시지 않을까? 하는 오만가지 생각에 더욱더 정신이 또렷하게 돌아왔다.


눈을 감고 오만 생각에 휘둘리고 있을 때 나지막한 목소리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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