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역사/해병대 전통·비화

5.16 군사정변 비화록 - 명예해병의 탄생

머린코341(mc341) 2016. 8. 23. 08:40

5.16 군사정변 비화록 - 명예해병의 탄생


  제5대 해병대 사령관 김두찬 중장 재임기간 중인 1963년 9월 28일, 해병대 사령부 광장에서는 해병대 역사상 처음으로 명예해병을 탄생시켜 화제를 모았었다. 9.2B 수복 13주년을 기해서 탄생시킨 그 명예해병 가족들은 6.25동란이 맺어 준 각별한 인연으로 해병대의 육성과 발전을 위해 성심 성의를 다해 이바지한 은혜로운 인사들이었으며, 이분들에게 명예해병증과 기념패 등을 수여하게 되었던 것은 이분들에 대한 은공을 기리고, 또 그들로 하여금 영예로운 해병가족의 일원이 되게 하려는데 그 뜻이 있었다.


  이 날 처음으로 명예해병가족이 된 분들은 당시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임중이던 일석(一石) 이희승 박사와 고려대학교의 김성식 교수 등 두 분의 석학을 비롯해서 여류작가 이명온 여사와 문산농고의 이경재 교장, 종군작가 김중희 씨 및 미국공보원장 리지웨이 씨와 또 한 분의 미국인 여성이었다.


  이들 가운데 이희승 박사와 김성식 교수는 피난지인 부산에서 만나게 된 고려대학교 총장 유진오 박사의 주선과 소개로 해병대사령부에서 편수업무를 돌보게 되었는데, 당시 유진오 박사는 제자들의 요청으로 해군본부의 일을 돕고 있는 중이었다. 사학자인 김성식(金成植) 교수와 국문학자인 이희승(李熙昇) 교수가 편찬한 도서는 1953년 3월에 발간된 해병전투사(海兵戰鬪史) <제1부)이다.


  장편소설 '애욕의 소상' 및 '흘러간 여인상 등의 저자인 여류작가 이명온 여사는 피난지인 부산에서 해병대 사령부 정훈감(정필선 소령)의 요청으로 당시 일선에서 소대장 근무를 하고 있던 장남 유철수 소위를 수신인으로 한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었는데 어느 여배우의 고운 목소리로 KBS의 전파를 타고 방송된 그 편지가 인연이 되어 그 후 일선 장병들을 격려하기 위해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부터 휴전 전후에 이르기까지 나약한 여성의 몸으로 동·서해에 산재한 절해의 고도와 중동부와 서부 등 해병들의 작전지역을 두루 찾아 다니며 따뜻한 모성애를 배품으로써 ’해병들의 어머니‘라는 존칭을 받았었다.


  휴전 후 해병대와 각별한 유대관계를 맺게 되었던 문산농고(금촌 소재)의 이경재 교장은 학생들을 동원하여 해병묘지(전쟁기간중의 임시묘지)를 돌보는 한편 현충일에는 전교생이 위령제에 참석하는 등 정성 어린 봉사활동을 했고, 전투단이 사단으로 승격된 후 부터는 매년 졸업기가 되면 졸업생들 중에서 1개 소대 규모의 지원병을 해병대에 입대시켜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고장(임진강변)을 지키게 하는 등 해병대와의 정신적 혈육적인 유대를 강화하는데 이바지한 공이 컸으며, '전몰장병의 수기' '순백의 비상선' 등의 편저자인 김중희 씨는 어느 누구 보다도 해병을 소재로 한 작품을 가장 많이 쓴 종군작가로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2명의 외국인 중 당시 미국 공보원 원장으로 있던 리지웨이 씨는 영화 제작기능을 갖추고 있던 공보원이 상남(창원군)에 위치하고 있을 때 해병교육단장 김두찬 장군의 구상에 따라 제작에 착수하게 된 '해병의 하루'란 이름의 문화영화 제작에 적극 협조해 준 일을 비롯해서 자신이 무척 좋아했던 해병대의 감투상을 선전하는 일에 있어 남다른 정성과 지원을 아낌없이 베풀어 준 유공자였으며, 나머지 한 분은 이름은 확인할 길이 없으나 한국전쟁때 전사한 어느 미국 해병의 어머니로서 도미유학한 해병대 장병들에게 자애로운 모성애를 베풀었을 뿐 아니라 한동안 한국의 전쟁고아들을 위해서도 자선의 손길을 뻗힌 일이 있었던 분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병대의 명예해병은 그 후에도 탄생이 되었다.


  청룡부대의 파월이 이루어졌던 공정식 사령관 재임시절에는 공 장군의 여단장 재임 시 여단과 자매결연을 맺었던 중앙대학교의 임영신 총장과 해병대의 발전을 위해 각별한 성원을 베풀어 준 국회 국방분과위원장 김용태 의원, 그리고 미국 정부의 토목 하청 업체로 월남에 진출해 있던 RMK 회사의 부사장 파킨스 씨 등 세 분에게 멍예해병증이 수여되었고, 강기천 사렁관 재임기간 중에는 당시의 외무부장관 김동조 씨와 숙명여대의 윤태림 총장이 명예해병으로 탄생되었다.


  이들 가운데 6.25 때 미 해병대의 전투폭격기 조종사로서 참전한 바 있었던 RMK 회사의 파킨스 부사장은 300명 이상의 해병출신자를 포함한 약 2만 명의 한국인 인력을 그의 회사에 취업시키는 등 해병대와 한국과 맺은 인연과 정분이 각별했던 외국인이었으며 청룡부대의 파월 시 청룡부대와 자매결연을 맺었던 숙명여대 윤태림 총장은 청룡부대의 교체병력 출국 시에도 단 한 차례도 그 현장(부산항 부두)에 나가지 않은 날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명예해병으로 추대된 분틀은 해병대 사령부에서 뜻깊은 행사를 거행할 때마다 초청이 되어 기쁨을 함께 나누어 왔었으나 1973년 10월 10일 해병대 사령부가 해체됨으로써 안타깝게도 그 인연이 단절되고 말았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傳統과 秘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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