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740기 김동훈

실무생활-17 대항군 1

머린코341(mc341) 2019. 10. 8. 10:54

실무생활-17


대항군 1


훈련의 D데이가 밝았다.


아침은 어제 저녁에 전달 받은 전투식량으로 (건조식) 내무실에서 해결을 하였고 (딱딱하고 그 맛 없는 것을 먹지 않은 고참들꺼까지 악기있게 먹었다 씨바..)


대대연병장에 집결을 한 병력들은 포차에 탑승하여 (포병은 3보 이상 승차다. ㅎㅎ) 내달리기 시작했는데 고참들은 포차의 맨 끝에 앉아 나름 사제의 광경을 충분히 즐기지만 쫄병들은 포차의 안쪽으로 앉아 자라목처럼 고개를 빼야 조금 보여지는 사제의 광경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다. 일단 사단 울타리를 벗어나 사제의 광경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아직 본격적인 출근 시간 전이라 도로는 비교적 한산 하였고 하나의 차선을 물고 이동하는 대대 병력와 장비가 많아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복잡한 시내를 벗어나 비교적 한산한 7번 국도를 따라 1시간 이상 달렸고 앞차의 속도가 줄어들더니 이내 우회전을 하여 들어가는데 보이는 모습이 이상했다.


바로 땅개들의 부대내로 진입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이바의 외피를 단정하게 꿔매지 않고 턱끈도 너덜 거리면서 하이바를 쓰고 있는 게 특징인 위병을 지나 땅개들 부대내에 진지를 잡는 것이다.  땅개들 조차 휘둥그런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재네들이 왜 우리 부대에?'  하는 놀라는 표정이었다.  당연히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험상궂은 표정을 하고 가파르게 깍아 올린 상륙돌격형의 머리를 뽐내면서 땅개를 노려보니 모두들 주눅이 들어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이 당시 선임,고참들의 포스는 대단했다.왜 땅개 부대내에 진지를 잡을까 하고 의아해 했지만 개쫄이 뭐 의아해 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무조건 까라면 까면 되니까 복잡한 생각은 집어 두고.. 멈춘 포차에서 내려 오와열을 맞추며 도열을 했다.


두시간 이상 포차에 타고 있다가 갑자기 땅에 뛰어 내리면 뒤질 것 같은 통증이 발바닥을 통해 올라오기 때문에 하차하기 전에 제자리 걸음이라도 해서 충격에 대비해야 한다. 


한번은 멋 모르고 악기 있게 뛰어 내렸다가 발바닥이 터져 나가고 다리가 부러지는 듯한 통증을  맛본 적이 있다.


포차에서 무사히 하차하여 도열을 하니 중대장도 히팅이 되었는지 잘 쓰지 않던 개썅욕을 날리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땅개 부대에서 해병대의 악기있는 중대장의 모습을 과시하는 듯 했다.


그 모습에 우리들은 땅개들에 대한 막연한 우월감으로 더 크게 구령을 붙히고 더 빨리 움직이고 더 절도있게 행동하였다.


물론 땅개들을 노려 보는 것과 소리나지 않게 개쌍욕 (뭘 보나 이 씨*넘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훈련시에는 인계사항으로 기습특공이나 해병유격대 공수 페치중에 하나를 오바로크 치도록 내려오는데..  공무원이나(간부들) 고참들도 이 기간 만큼은 뭐라 하지 않는다. 훈련이 끝나고 복귀하면 개쫄들은 바로 떼어냐야 하지만. (교육 이수자는 상관없다.) 말이다.


우리는 땅개 부대의 테니스 장 옆의 공터에 대대본부를 구축하고 GP를 쳤다. 그 공터 바로 옆이 부대 울타리고 울타리 앞으로 교통호가 나 있었다.


중대장 왈. 금일 부터 주둔시까지 야간에는 적을 가장한 대항군의 공격이 예상되니 진지 방어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우리 중대가 관할하는 지역이 뚤리는 날에는 하리마우부터 개박살 날 줄 알라는 지휘방침이 내려졌고 땅개와 불미스러운 일을 만들지 말되 해병으로서 자긍심도 잊지 말라는 주문도 함께 내려졌다. (이 자긍심이란 것은 땅개와 뭔 사단이 났을 때는 박살을 내어버려라 하는 함묵적인 의미를 닮고 있는 듯 했다.)


당연히 상말,일말로 부터 전해져내려오는 살벌한 인계사항에 두려움을 느꼈다.